치매 할머니는 손녀가 지켜줄게요
나의 할머니에 대해 글을 써보려 한다. 할머니가 날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기 전에 말이다.
한 유튜브 채널에서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OECD 1위인 데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여 '빈곤하게' 오래 산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1930년대,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난 우리 할머니는 20대 초반에 시집을 가 아들 넷을 줄줄이 낳고 평생을 아내로, 엄마로, 그리고 나를 포함한 손주들의 할머니로 살아왔다. 아들들이 한 명씩 장가를 들어 출가하고, 할아버지는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암으로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언제부턴가 혼자가 되셨다.
할아버지와 함께 두 분이 오손도손 사셨던 단독주택은 겨울이 되면 너무 추웠다. 그래서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항상 아궁이에 불을 때며 놀았다. 가을엔 감나무에서 잘 익은 홍시를 땄고, 여름엔 마당에서 자라던 상큼한 앵두를 똑 똑 따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마당이 넓어 쉴 틈 없이 고추나 깻잎 같은 온갖 채소들을 키우는 재미로 지내셨던 우리 할머니. 닭장에 닭도 여러 마리 있어 매일 달걀을 꺼내와 아침으로 후라이를 해서 드셨다. 집을 지켜주던 검은 강아지, 쫑이도 있었다.
그렇게 항상 복작복작하던 집에서 바쁘게 사셨던 할머니가, 10년이 흐른 지금 주택연금이 나오는 낡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그 15평짜리 마당도 없는 삭막한 아파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삶을 이어가고 계셨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다.
그동안 할머니를 내 인생에서 아예 지우고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 지역으로 대학을 가면서 한 달에 한 번 가던 할머니 댁을 일 년에 두 번, 명절 때만 가게 됐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서는 일 년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명절 때마다 연차 붙여가며 해외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거의 몇 년 동안 할머니를 완전히 잊고 나의 젊음을 즐겼다.
"할머니, 치매 초기란다."
갑자기 듣게 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에, 당장 할머니를 뵈러 갔다. 오랜만에 본 할머니의 동글동글했던 얼굴은 볼이 패일 정도로 살이 없어졌고, 주름살이 깊어졌고, 체구가 한없이 작아져서 보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내가 젊음을 한창 즐길 동안 할머니는 무미건조하게 늙어갔던 것이다. 기쁨도, 슬픔도,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러셨다.
"네가 누구지?"
할머니는 아파트로 이사한 뒤에도 다니던 성당은 꾸준히 나가셨고, 경로당에도 오가며 나름의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셨지만, 재작년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해 꼼짝없이 집에만 계셨다. 친척들이 다 모이는 즐거운 명절에도 이젠 더 이상 다 함께 모일 수 없다. 손주들의 방문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게 할머니는 최근 2년 동안 급격하게 세상과 단절되어 갔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 건지, 기억을 점점 잃어가셨던 것이다.
"할머니, 저에요. 큰손녀에요."
그때부터는 매일매일 할머니 댁에 얼굴을 비추고 이야기를 나누러 갔다. 당시에는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났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당신을 잊고 살아서 죄송해요.
직장으로 출근해서 할머니 댁으로 퇴근했다. 같이 저녁도 먹고, 할머니와의 추억을 같이 더듬어주며 대화를 나누고, 돌침대에 함께 누워있다가 9시쯤 집으로 갔다. 처음엔 내가 누구냐고 열 번은 물어보셨는데, 이제는 내 목소리와 얼굴을 기억하신다. 치매 초기였어서 사소한 것 빼고는 정상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기본적인 건 다 기억하고 계셨다. 내가 할머니의 첫 손녀딸인데, 설마 날 잊을까 싶지만 혹시 몰라 마음의 준비는 해 두려고 한다.
할머니 나이는 현재 86세. 친구도, 형제도 다 돌아가시고 남은 가족은 아들 넷 뿐이다. 다행히 둘째 삼촌 빼고는 다 근처에 살아서 마음만 먹으면 번갈아가며 언제든 찾아뵐 순 있지만, 다들 각자의 삶이 있어 쉽지 않다. 최근에 은퇴하신 우리 아빠 정도만 매일매일 가서 약을 챙겨드리고 있다.
하루는 할머니 당신이 너무 오래 산다고 푸념하듯이 이야기하셨다. 나는 "오래 살면 좋지 왜~" 라며 할머니를 달래주었지만, 괜히 생각이 깊어졌다. 할머니에게 있어 건강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철저히 고립되어 남은 여생을 매일매일, 똑같이 살아내야 한다는 게 얼마나 무료할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그렇게 벌써 반년이 흘렀다. 치매 증상은 조금씩 심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방금 전에 뭘 했는지 금방 잊어버리신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른다. 아침에 뭘 먹었는지 모른다고 하시고, 누가 할머니 댁에 왔었는지 전혀 기억을 못 하신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기억을 못 하는 건지 구분이 어렵다.
그리고 자주 엉뚱한 행동을 하시기도 하는데, 수세미를 베란다에 널어놓고 말린다거나, 냉장고를 반복해서 열고 닫으며 "뭐 먹을래?" 하는 수준이라 가볍게 넘어갈 순 있다. 그런데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질 수 있어서 위험한 사고라도 날까 무섭다.
희망적인 점은 웃음이 많아지셨다는 것이다. 사소한 것에도 입을 크게 벌리며 하하하 웃고,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면 예전엔 아무것도 기억 안 난다고 하시더니(기억하기 싫은 건지 아니면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건지), 지금은 "그랬나?" 하면서 받아주시기도 한다.
그리고 표현을 아끼지 않으신다. 가끔 날 좋은 주말에 드라이브 겸 바깥 구경을 하고 돌아오면 나에게 꼭 해주시는 말이 있다.
"오늘 너 덕분에 행복했다."
그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있는 이 말 앞에서, 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할머니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은 어쩌면, 좋은 게 아닐 수도 있어. 행복하게 오래 살아야지.
매 순간 기억을 잃어가며 현재만을 살고 계시지만, 나는 할머니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할머니 댁으로 간다. 그렇게 서서히, 할머니와 이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