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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워리 Mar 17. 2022

프라하는 동화 속 세상이었지

나의 첫 유럽여행 회상기 07








  베를린에서 출발한 기차가 프라하에 가까워져 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모습은 마치 중세도시를 연상시키듯, 고풍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중앙역에서 숙소까지 걸어서 10분이라고 들었는데, 체감시간은 30분이었다. 프라하의 길은 울퉁불퉁 돌길인 데다, 오르막 경사였으니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에 힘들 만도 했다. 바퀴가 슬슬 갈라지기 시작했다.



  프라하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내 숙소는 신시가지에 있었다. 벌써부터 지치면 안 되는데,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니 늦은 오후였다. 점심도 못 먹어서 배가 많이 고팠다. 같은 숙소를 쓰는 친구와 통성명을 하고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구시가지로 진입하자 어디선가 익숙한 언어가 들렸다. 그랬다. 프라하는 어디를 가도 한국인들이 정말 많았다. 여기가 유럽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식당은 만석이었고 기다리기 싫었던 우리는 바로 그 옆 식당으로 들어갔다.



  앤틱한 가구들로 꾸며진 실내는 일단 사람이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한국인은 우리 둘 밖에 없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체코의 전통 음식인 꼴레뇨 하나를 주문해 둘이 나눠 먹기로 했다. 거대한 족발이 가니쉬와 함께 나왔다. 술도 빼놓을 수 없다며, 체코 맥주인 코젤 다크 두 잔도 함께 주문했다. 체코에서의 첫 식사라는 설렘과 함께 한 모금 쭉 들이켰다. 보리차, 혹은 결명자차 느낌이 나는 구수하고 달달한 맛에, 거품이 풍부해서 목 넘김이 아주 좋았다. 식당 한편에서는 손님들을 위한 라이브 공연도 하고 있었다. 팁까지 포함해서 당시 우리 돈으로 2만 원 정도 낸 것 같다. 이렇게 배부르고 맛있는데, 물가도 저렴하니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을 수밖에 없지.




구시가 광장의 틴 성당



  기분 좋은 마음으로 식당을 나와 구시가 광장에서 꼭 보고 싶었던 천문시계를 보고, 틴 성당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베를린에서 한번 소매치기당할 뻔 한 이후로 너무 많이 경계하고 다닌 건지 잘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찍은 프라하의 모습들은 정말 예뻤다.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느낌이었나. 그렇게 기억이 조작되는 걸까? 남는 건 사진뿐이라더니, 그 말이 정말이다.



까를교의 야경



  산책 겸 구시가지와 프라하 성을 이어주는 까를교에 왔다. 해가 다 진 초저녁의 푸르스름한 하늘. 양 옆 곳곳에 있는 조각상과 저 멀리 보이는 프라하성, 하나둘씩 켜지는 가로등과 거리의 사람들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이런 풍경을 매일매일 볼 수 있다면. 그렇게 설레는 맘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며 나갈까 말까 망설였다. 4월의 유럽은 비도 자주 오고,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나는 하루 이틀씩 도시를 이동하는 배낭여행자였기에 어김없이 숙소를 나와 일정대로 움직였다. 가끔 그런 정해진 일정이 버겁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떠나는 유럽 여행이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춰 후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당시에는 더 중요했다.



까를교의 악사들


  저 멀리 보이는 프라하 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까를교를 건너야 한다. 궂은 날씨였어도 까를교는 활기가 넘쳤다. 이날은 악사 분들이 계셨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감상을 했다. 클래식이 가미된 재즈의 선율이 다리에 울려 퍼졌다. 100년 뒤에도 이 모습은 왠지 그대로일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갖고 있던 동전을 탈탈 털어 팁을 드렸다.


  

프라하의 구시가지



  까를교 다리 끝자락엔 탑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그 아래엔 아치 형 통로가 나 있어서 마치 중세시대로 들어가는 타임머신의 입구처럼 보였다. 이곳은 다른 세계인가? 싶었지만 조금 걷다 보면 맥도널드가 나오고 거기서 더 올라가면 그 유명한 프라하 성 스타벅스도 있는, 똑같은 21세기이다. 다국적 거대기업의 무료 와이파이를 빌려 쓰며 지도를 보고, 밀린 카톡을 했다.


  프라하 성은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계속해서 경사진 돌길과 계단을 번갈아 올라야만 했다. 전날 숙소 찾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쪽에 숙소를 잡았다면 내 다리와 캐리어는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무조건 숙소는 교통이 편한 역 가까이에! 여행하며 생긴 나의 철학이다.




프라하 성에서 바라본 전경



  그렇게 성 위로 올라가면서 바라본 풍경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붉은 지붕들이 비슷한 높이로 오밀조밀 모여있는데, 흐려도 멋지다는 느낌은 이걸 두고 하는 말인 것이었다. 구름도 낮게 깔려있어서 더 돋보였달까. 프라하 성과 웅장했던 성 비투스 성당을 지나 '프란츠 카프카'가 작업을 했다는 황금소로를 구경했다. 아무리 유명하다는 건축물을 봐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전체의 모습이 내겐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아름다운 프라하 전경



  다시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이번엔 오스트리아로 간다.


  런던을 벗어나서는 계속 하루, 이틀마다 짐을 싸고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찾는 고된 여행이 반복되고 있었다. 게다가 브뤼셀, 쾰른, 베를린... 세 도시 전부 흐린 날씨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프라하에서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었기 때문에 재미도 없었을 뿐더러 몸이 점점 지쳐감을 느낀 첫 도시였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도시를 돌다 보니 욕심이 너무 많았던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짐이 너무 많았던 걸 수도 있고.



  아무리 아름답고, 동화 같다고 하더라도 몸이 지치고 힘들면 온전히 여행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때 이후로, 다음에 다시 떠날 여행에서는 좀 더 느긋하게, 한 도시에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여유롭게 커피도 한 잔 마시는 여행을 해보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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