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기억이 새겨진 사진은 현대 국가에서 아주 중요한 매체다
현실적으로 사진 기록들은 필름이라는 물질의 숙명처럼 낡아가고 있다. 대다수는 폐기되어 영원히 사라진다. 아쉽게도 우리에겐 이런 사진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고 정리하는 국가 기관이 부재하다. 민간의 언론사는 그들의 몫으로 남겨야 하겠지만 독립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나 일반 시민들의 소중한 기록들이 발굴되고 수집되야 한다.
지난 2016년 초겨울부터 2018년 초봄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80년대를 통과한 이들에게는 감동이, 밀레니엄 세대들에게는 흥분이 지배했을 법하다. 우리로서야 두 번이나 최고 권력을 상대로 시민들이 대항한 경험이 있지만, 이는 전 지구적으로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지역을 좁혀 동아시아만 해도 그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거나 시도도 해보지 못했다. 나는 이 격동의 현장을 혼자 보기 아까워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광화문으로 갔다. 그곳은 민주주의의 거리 학교였고 머리 속 공부를 몸으로 실천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명색이 서른 해를 사진가로 살아왔지만 카메라는 그저 이 역사적인 순간에 내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할 도구 이상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제 세상이 바뀌어 그 곳에 선 모든 이들이 카메라를 한 대씩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고 발터 베냐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 지적한 것처럼 아우라를 벗어내고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매체이자 예술이 되었다. 사람들이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은 실시간으로 SNS에 올라왔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됐다. 구호와 연설을 대신해 사진은 사람들을 모았고 토론하게 했고 변화를 갈망하게 했다. 아마도 사진 역사상 가장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는 시대를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민주화 시대의 민주화
거리에서 문득 30년 전이 떠올랐다. 광주의 참상을 오직 사진을 통해 확인했던 그 깊은 트라우마. TV는 땡전뉴스이고 신문은 광주의 진실을 외면했었다. 그저 대학가를 은밀하게 떠돌던 사진들이 골방에서 확인되었고 우리는 눈물을 흘렸다. 그해 86년 초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나는 건대 옥상에서 사흘째 농성 중이었고 캠퍼스엔 경찰과 기자들만 존재했다. 그곳에서 폭력난동에 건물을 점거한 불온 학생으로 사진 찍혔다. 그리고 서대문구치소에서 수인복을 입고 치욕스런 머그컵 사진을 찍었다. 당시 사진은 내게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나의 존재 증명이 국가의 탄압 빌미였을 뿐이니 말이다.
90년대를 들어서면서 세상은 조금씩 변했다. 87년의 시민항쟁은 정치권력을 바꾸지 못했지만 사회전반에서 변화의 물결이 몰려왔다. 민주주의는 단지 권력을 몰아내는 것뿐 아니라 우리 삶의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어느덧 내게 카메라가 왔다. 나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그 변화의 현장을 사진으로 포착하고 있었다. <한겨레신문> 창간 후 언론은 자유를 획득했고 수많은 사진기자들이 시민들이 외치는 진실을 기록하고 내보였다. 노동자들과 도시빈민의 생존권과 민주화 양심수들의 외침은 물론이고 안산의 어두운 골목을 맴도는 어린 아이들의 시선까지 카메라는 목격했다. 과거 좁은 계조의 하이라이트와 암부만 강조되던 사진에서 디테일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디테일들 속에서는 과거 우리 민주화에서 돌아보지 못했던 수많은 상흔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태원의 클럽에서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숨어 살아야 했던 성소수자들이 있었고, 공장에서 회사에서 다른 이름표를 달고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이 있었다. 사진은 민주화 속의 민주화를 들여다보았고 그것을 세상에 증거로서 내보여야 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었다. 종이매체는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인터넷이 메웠다. 필름은 한구석에 처박혀 먼지를 쓰고 있다. 바야흐로 디지털 세상이 도래했다.
국가차원의 사진 아카이브가 필요
지난 시기 사진의 특징은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이라는 배경적 요소를 간과할 수 없다. 이 둘이 한국 다큐멘터리-저널리즘 사진의 탄생과 발전의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대 기존 담론들을 거부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를 소망했다. 이전 사진계가 학맥과 인맥으로 구성되었다면 이후 등장한 세대들은 민주와 진보라는 이념적인 배경으로 뭉치고 헤어졌다. 사진의 형식 보다는 내용의 구성에 더 치중했으며 사회적 윤리에 더 민감했다.
민주주의는 언어다. 생각이 상징화 된 민주주의는 때로 모호하다. 그것이 문서화 된 것을 우린 제도라 한다. 그런데 우린 그 제도화된 민주주의를 어떻게 떠올릴까? 이한열의 죽음과 시청 앞 광장의 거대한 인파, 광화문 가득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담은 사진으로 연상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이렇듯 무의식중에 사진 같은 구체적 이미지로 작동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의 기억이 새겨진 사진은 현대 국가에서 아주 중요한 아카이브로 취급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기록들은 필름이라는 물질의 숙명처럼 낡아가고 있다. 대다수는 폐기되어 영원히 사라진다. 아쉽게도 우리에겐 이런 사진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고 정리하는 국가 기관이 부재하다. 민간의 언론사는 그들의 몫으로 남겨야 하겠지만 독립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나 일반 시민들의 소중한 기록들이 발굴되고 수집되야 한다. 국가기록원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수행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