寫眞의 사전적인 의미는 “물체를 있는 모양 그대로 그려 냄. 또는 그렇게 그려 낸 형상”이다. 이는 오래된 동양의 언어이고, 근대 서양의 헬리오그래프(heliograph)나 포토그래피(photography)는 좀 더 구체적이다. 그 기원이 빛, 광자에 있음을 알려준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포토그래피’는 19세기 영국의 천문학자 존 허셜이 ‘광자(photon)가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로 이름 붙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진이라고 명칭하는 그 어떤 물체에 대해 자연과학적인 서술로 간명하게 기술한다면 다음 같다.
사진은 할로겐 원소와 은을 화학적으로 결합시킨 할로겐화은(AgX) 분자가 광파와 만나 화학적인 변성을 일으킨 이미지 상태이거나, 광센서(CMOS)가 광자와 만나 전자를 방출하는 광전효과를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만들어진 픽셀의 모음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같은 자연과학적인 서술은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정의’ 치고 꽤 강퍅해 보여도, 딱히 다른 정의로 다수의 동의를 얻어내기 힘들어 보인다. 사진에 대한 여타의 정의는 우리 인간의 상상적 산물이다. 우리가 사진을 보며 느끼는 감정과 이성적인 성찰 역시 사진을 볼 때 뇌가 만든 잉여의 잔존물이다. 우린 그것을 동의할 수도 거절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것이 사진에 대한 최대한의 정의이고, 사진은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 사진과 나 자신을 표현할 때 ‘기록의 힘을 믿습니다!’라는 문장을 즐겨 사용했다. 아마도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기록으로서,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고 싶다는 욕망의 아이덴티티를 내세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따져보면, 기록은 사진만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사진이라는 기록이 시간을 영속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저 기자의 대지 위에 솟은 대 피라미드가 ‘기록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선지 나이 들수록 원리주의자가 된다. 저 위대한 모든 기록들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아마도 그건 ‘언어’였다. 우리가 다른 자연들과 구별되는 그 힘, 사유할 수 있게 만든 그 힘 말이다. 언어는 인류 최초의 추상적인 상상력을 가능케 한 도구였고, 예술의 시초였다. 낯에 하늘에 떠 있는 둥글고 빛나는 저것을 보고 ‘해’라 말하고, 밤에 뜬 밝고 둥근 것을 ‘달’이라 한 것이다. 규약이 생기고 이를 통해 소통했으며 종국에는 언어로 사고하게 됐다. 인간의 언어를 음소 단위로 쪼개 들어간 러시아의 형식주의자들부터 ‘언어가 생각이고, 생각이 언어’라 설파했던 소쉬르는 종국에 구조주의를 쌓았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사진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언어다”라고 이야기 하곤 한다.
그런데 사진이라는 언어는 정말 있는 것일까? 본다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같고 어느 정도 다를까? 오래전 뇌 과학자들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좌·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이 손상된 환자에게 왼쪽 눈에 누드 사진을 비추자 부끄러운 듯 ‘풋’하고 웃었다. 그리고 뭘 봤냐고 묻자, 그는 ‘모른다’고 했다. 감정이 지배하는 우뇌는 사진을 보고 반응했지만 언어를 관장하는 좌뇌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오른쪽 눈을 통해 좌뇌가 반응했다면 “이것은 여성의 알몸을 찍은 사진이다”라 감정없는 언어로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두 눈을 통해 보는 (사진)시각 언어에는 분명 ‘주어+목적어+술어’ 이상의 무엇인가가 더 첨부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직관적인 동시에 이성적인 서술이 가능한 언어, 원인과 결과라는 목적론이 아닌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존재하는 언어, 어느 때는 문자보다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다가도 완전하게 알 수 없는 상징과 기호로 모호해지는 언어. 그러하니 사진을 통해 오직 선명한 주장만을 전달하려는 의지도, 모호하게 관객들과 게임을 하겠다는 치기도 ‘사진이 무엇’인지 온전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나 역시 이 둘 사이를 오가며 방황하고, 실험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아마도 사진의 언어적인 속성을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한 장의 사진을 다시 본다. 29년 전, 처음 봤던 사진이다. 두 명의 청년이 서 있다. 사진 속 앞의 청년은 머리와 코에서 하염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두 발은 지면에서 떨어진 채 축 늘어져있다. 그를 뒤에서 강렬하게 두 팔로 껴안은 또 한 청년의 시선은 자욱한 최루탄의 안개 속에서 안타까움과 함께 전방에 있는 무엇인가를 주시한다. 그 청년이 손목에 찬 시계는 방금 1시 반이다. 사진 속, 죽어가는 청년의 모습은 연민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변연계 깊숙한 곳의 감정을 소용돌이치게 하며 곧 그 것을 정리할 대뇌 좌반구의 언어를 찾는다. 우리는 곧 이 사진이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에서 벌어진 전두환 정권 반대 시위에 나섰던 이한열’이라는 청년이 ‘전경이 쏜 직격탄에 머리를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문자 설명을 통해 감정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로이터 통신의 정태원 사진기자가 연대 정문 앞 현장에서 촬영한 이 사진은 원본이 아님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인쇄 복사본이지만, 아주 독특하며 미술과 구별되는 사진의 언어적 정체성을 발견한다. 명징성, 우연성, 폭발성. 제어할 수 없는 사진 언어만의 에너지는 베냐민이 언급한 것처럼 무수히 복제되어 예술의 아우라를 벗은 채 우리 앞에 존재한다. 부연 할 필요 없이 이 한 장의 사진은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였다. 나는 생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강렬한 언어를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그로부터 세월이 흐른 오늘, 이 밤에 사진을 페이스북에 걸었다. 이런 댓글이 있었다. “저는 이때 시골 촌에서 중학교 다니던 학생이었어요. 신문에서 보았던, 이 사진의 의미를 중학생이었던 저는 정확하게는 잘 모르고 어렴풋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땐, 시골에서 민주화 운동에 대해 왜곡되고, 정보가 잘못 전달되는 경우도 많았어요. ‘시골에서 등골 휘게 부모가 농사짓고, 소 팔아서 기껏 서울로 대학 보내놨더니 대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빨갱이 데모질 한다'라는 시골 노인들의 발언. ㅠㅠ”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우리 사회 얇디얇은 민주주의는 그들의 피로 얼룩져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이 한 장의 사진 언어를 통해 죽음, 민주화, 혁명, 역사, 기억, 죄책감 등 무수한 감정과 이성적 성찰을 떠올린다.
인간의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는 다양하다. 아프리카 쿵족의 구어는 100개가 넘는 음소를 사용하며, 중국인들의 문어는 총 7만자에 달한다. 3만 년 전 인간은 잘 다듬은 돌도끼로 상아 조각상을 만들었고, 100년 전 아름다운 라이카로 사진을 만들었다. 모두다 언어의 다른 형태들이 뿐이다. 내게는 여러 언어가 있다. 말하는 언어, 쓰는 언어, 몸짓의 언어…. 사진은 그저 내 생각을 표현하는 무수한 언어 중 하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