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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piration Feb 05. 2019

데이비드 호크니와 바라보기

LA의 LACMA에 다녀오다

"전시를 보고 나와서 미시간 에비뉴의 덤불을 좀 더 주의깊게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모네도 그렇게 주의를 기울여 주변 환경을 살펴보았기 때문입니다. 모네는 당신이 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만듭니다. 반 고흐 역시 그렇습니다. 그는 당신이 주변 세계를 보다 열정적으로 살피도록 만듭니다.
나는 언제나 바라보기로부터 강렬한 즐거움을 얻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상 그들 앞에 놓인 땅을 대충 훑어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길이 분명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한 사람들은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

"화가는 단순히 캔버스나 종이에 점점 더 많은 물감을 덧칠하는 것이 아니다. 참신한 생각과 관찰을 계속하면서 각각의 생각과 관찰을 통해 이전의 것들을 조정해나가는 것이다. 주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면서 이전에 쓴 것들을 수정하고 추가해나간다는 점에서 글쓰기 과정 과도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많은 경험은 층쌓기다. 층 위에 또 하나의 쌓이는 것 처럼 우리는 과거와 비교하면서 현재를 이해하고 그 이후로 더 많은 층을 더해가면서 현재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우리의 관점은 변해간다. "

David Hockney



지금 LA의 날씨는 너무 좋다. 낮에는 30도 가까이 오르지만 습기가 전혀 없어서 쾌적하게 더운 날씨. 심지어 아침저녁에는 선선하다. 이렇게 해가 좋은 날이면 여느 필터를 적용한 것보다 예쁜 색과 예쁜 그림자를 볼 수 있다. 날씨의 노예인 나에게 이런 날은 아무리 침대가 끌어당겨도 어디든 나가야 하는 날.


전부터 가고 싶던 LACMA에 다녀왔다. 입구부터 두근두근. 오길 잘 했다는 생각 10번 정도 하고.
가장 먼저 들른 아티스트 북 샵에서 작게 흘러나오는 재즈에 진열된 표지들만 봐도 너무 좋았다.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직원과 나와 고요함 뿐이라 어색하게 인사하고 눈으로만 룰루랄라.

사진으로만 보던 명작들을 가까이에서 붓터치까지 보니 작가의 손길마저 느껴지는 기분. 심지어 피카소. 그러나 오늘 나의 목적은 호크니의 전시이므로 휙휙 지나쳤다. 난 항상 편식하는 관람자다.


호크니라니. 실제로 보니 미친 색감이다. 어떻게 색을 이렇게 쓰지? 이 곳 La 여름날의 햇빛을 조명으로 만들어 그렸을 것만 같은 색. 채도 높은 색들이 진짜 LA스럽다.(는 내 생각. 사실 엘에이에서 처음 나와 봄)

전시장에 들어서니 붉은 벽의 색이 압도적이었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 그 이상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색이 공간에 주는 힘이 이렇게 컸나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 만큼.

전시 주제는 82명의 초상화, 1점의 정물화. 본인의 일생에 만나온 83명의 사람들을 불러 그렸다. 한 명은 오지 않아 정물화를 그렸다고 한다. 위트있는 귀여움까지 갖췄다. 그림 한 점은 보통 3일만에 그려냈다고. 대단하다. 시각적인 일기인 셈이다. 노년이 되어 여태 만나온 사람들을 직접 그려내는 프로젝트라니. 그의 붓에 나는 알 수 없는 많은 의미들이 담겨 캔버스에 닿았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멋지다.

작품이 좋으면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까지 궁금해진다. 전시관 한 켠에서 보여주는 영상물이 작가의 팝아트 작업 시절부터 현재 작업들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그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 영상이 너무 좋아 연달아 두 번을 봤다. 그리고 지금 누워서 호크니가 쓴 글도 찾아 보는 중. 그게 바로 맨 위에 붙인 글.

신기하게도 요즘 하고 있던 생각과 같은 글이 있었다. 하나하나의 층들이 겹쳐져 여러 겹이 되어, 또 다시 새로운 겹을 만들어내며 살아간다는 얘기. 한 장에 끝내겠다는 건 욕심이고 구시대적이라고, 나는 여러 겹의 풍부한 과정을 담겠노라고 생각했다.
또 작업 그 이상의 것을 주는 예술가의 힘에 대한 이야기. 글이든 그림이든 사람이든, 멋진 작업(사람)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준다. 작가의 시선을 빌려 다각의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것. 작업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많은 것들을 바라보고 관찰할 여유를 잃지 말자. 호크니의 그림이든 길가의 돌멩이든 Inspiration은 내가 다가가 보는 것에서 시작되므로.

표시해 둔 다른 스팟들도 가고 싶었지만, 시차부적응과 풀지 못한 일의 피로 때문에 입맛도 없고 머리까지 아파왔다. 사실 나올 때부터 졸려서 눈물 닦으며 걸어다님. 내가 입맛이 없는 정도면 심각한 체력저하라고 결론 짓고 결국 좋은 날씨와 아쉬움은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체력의 여유가 되어야 뭐든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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