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룸메이트를 내가 할게
1. 할아버지의 룸메이트는 31살 손녀
할머니가 쓰러지고 이모들은 혼자 삶을 살아가야 할 할아버지까지 걱정해야 했다
할머니는 너무 많은 걸 해왔어서 입원과 함께 그 빈자리가 너무 컸다. 병 때문에 목소리가 안 나와도 할아버지 밥을 차려줬는지를 항상 물었다
이런 모습은 딸들을 가슴을 치고 울게 만들었다
할아버지의 식사는 할머니의 챙겨야만 하는 숙제였다.
이제 그 숙제 검사를 누가 해줘야 하는 걸까.
나한테는 이모인 할머니의 딸들은 가정이 있고 일이 있다. 잠깐 들렀다 가는 건 되지만 장시간 있기엔 무리가 있었다.
물론 손녀인 나도 똑같지만,
당장에 할아버지 집에서 출근을 하겠다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월요일 퇴근해서 할아버지 저녁을 챙기고 목요일까지는 숙식하는 것이다. 단시간과 장시간의 중간으로 보인다. 할아버지가 혼자 계시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회사까지는 30분 내외로 걸리는 위치는 내게 부담이 없었다.
할머니가 아프기 전, 월세를 드리고 살고 싶다고 했었다. 당시 할머니의 완강한 반대에 깨갱하고 마음을 접었었다. 신경 써야 할게 많고 방을 더럽게 쓸까 봐 싫다고 했던 할머니. 아마 할아버지 한 명만 신경 쓰고자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없는 자리에 할아버지가 괜찮다 해서 손님 방은 내 차지가 되었다.
오기 전날은 여행지에 가는 것처럼 출근용 정장과 화장품들을 챙겼다. 언제든 두고 나와도 괜찮은 것들로 구성했다. 300ml의 바디젤과 샴푸. 새로 산 칫솔 치약. 화장솜 한 무더기가 내가 입주했다는 신호였다.
첫날.
하늘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장대비가 쏟아졌다.
중환자실에서 할머니가 이 빗소리가 들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시 정각이 되자마자 회사 앞 유명 설렁탕집에서 수육을 샀다. 한 손엔 가방과 우산. 다른 한 손은 수육과 설렁탕.
비 때문에 손님이 없어 그런지 사장님이 선짓국을 서비스로 주셨다. 몸이 무거워 낑낑대며 지하철을 타고 움직였다.
도착하니 셋째 이모가 와서 밥을 하고 있다.
수육을 렌지로뎁히고 앉아서 먹으니 할아버지가 고기를 열심히 잡순다. 비싼 거니까 많이 드시라고 했는데 문득 이 자리에 할머니가 옆에 없음이 느껴진다.
할아버지는 막걸리. 나는 싱가포르 맥주 한 캔.
밥 먹다 한숨 쉬고 울고 불쌍하다를 연신 말하는 할아버지를 나와 이모가 혼낸다.
좋은 말을 해도 모자른데 할아버지는 왜 자꾸 할머니 앞에서 우냐고. 할아버지가 우니까 할머니도 병상에서 울기만 하면 회복에 안 좋을 거라고.
할아버지가 다시 또 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할머니가 돌아와도 예전 같지 않을 거라는 걸.
많은 것이 지금과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