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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추임새 Aug 05. 2020

할아버지의 데이트 신청

저녁식사는 6시 반.


주말에 할머니 병문안을 다녀왔다. 기다리는 사람 대부분은 5~6명이 함께 모인 대가족들이었다.

나랑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유일한 방문객이었다.

할아버지는 면회시간이 가까워지자 또 울기 시작했다.


<... 어떡하 너네 할머니 불쌍해서 어떡하니>


드라마를 보다가도 잘 우시는 할아버지는 눈물이  많다.

할머니를 만나자마자 얼굴을 부여잡고 이젠 둘이 같이 운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 할머니가 '밥'이라고 말하는 걸 입모양으로 알아차렸다.

<할아버지 밥 먹었냐고? 오늘 동태찌개 끓여서 아침 먹었어. 내가 이제 평일에 할아버지랑 지내서 챙길 거야>


할머니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울고 있는 할아버지를 계속 쳐다보는 할머니.

떠나 있는 사람보다  남아있는 사람의 빈자리가 크다.


면회가 끝나고 이모들한테 할머니 상태를 바로 보고한다.

- 할머니가 물리치료를 잘 받는지 다리를 움직이더라.

-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더라.

- 할아버지가 할머니 볼을 쓰다듬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인 줄 알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표현에 이모들의 웃는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업무 하다가  5시쯤 문자가 왔다.

카톡을 해도 되는데 문자가 온다.

뭔가 중요한 메시지를 받은 느낌이다.

그리고 오늘도 문자가 왔다.


엄마는 이 상황을

 너 할아버지한테 데이트 신청받는구나라고 표현했다.


우리의 식사시간은 6시 반.

이 데이트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6시부터 지하철로 냅다 달려야 한다.

집에 가자마자 습한 날씨에 몸은 땀범벅이 되었지만 밥을 바로 먹는다.

내가 손 씻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상을 피고 있기 때문이다.


서랍식 냉장고 한 칸은 술장고인데 왼쪽은 맥주 오른쪽은 막걸리가 있다. 할아버지의 저녁상에 막걸리 1병은 필수고 내가 목이 타는 날은 맥주도 저녁상에 추가된다.


우리 둘이 짠하고 식사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짠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할 뿐이다.


는 몰랐는데 할아버지는 김치를 잘게 잘라줘야 하고

고기든 회든 잘게 잘라줘야 드신다.

큰 거는 잘 안 넘어간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가위로 반찬을 자르던 일을 내가 하고 있다.


밥을 다 먹고 할아버지가 약봉지를 세더니 약 먹을 준비를 한다. 약발이 꽤 많다.

주말에는 약을 먹지 않았는데?

약봉투에서 뭐라고 쓰여있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무슨 약을 먹고 있는 걸까.

혹시 갑자기 어디가 아픈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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