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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Dec 09. 2020

호주에서 받은 첫 번째 비싼 레슨

도둑맞다.

호주 도착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하숙집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방하나 욕실 하나인 아파트는 깨끗하고 좋았다. 나는 처음부터 성급하게 모든 것을 장만해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먼저 주를 알아가는 적응기를 가지며 차근차근 준비하고 싶었다. 그러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는 듯했고 만족스러웠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와서 제일 먼저 전기와 전화가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했고 연결되었음을 확인하자 그제야 공중전화기를 붙들고 혼자 쩔쩔맸었던 그 시간들이 뿌듯함으로 변해왔다. 전화가 연결된 첫 기념으로 제일 먼저 한국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집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려 드렸다. 드디어 호주에서 나의 연락처가 생겼다.


아파트와 함께 지하 주차장과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창고가 하나 주어졌다.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는 지금  아파트에서는 당분간은 소모품 외에는 크게 사야 할 것도, 필요한 것도 없었기에 나는 가져온 짐들 중에 겨울 옷들만 빼내고 모두 창고에 그대로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창고에 짐을 넣다 보니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온 것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엄마가 챙겨 주셔서 거절도 못하고 들고 오다 보니 엄청난 양이었다. 거기에다 호주는 겨울이었지만 새벽과 밤이 아니고는 겨울의 날씨가 아니었고 심지어 낮에는 뜨거운 태양으로 덥기까지 해서 한국에서 준비한 부피가 큰 겨울옷들도 창고에 일단 모두 보관해 두기로 했다.


6개월 후 살게 될 집으로 옮겨가면 그때 유용하게 쓰일 것들이라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한국에서 가져온 여행용 가방 그대로 창고에 넣어 두었다. 주변 창고들을 보니 보통 자물쇠를 두 개 이상 달아 놓았기에 나도 두 개의 튼튼한 열쇠를 사서 달아 놓았다.


이사한 그날 집 정리는 할 것도 없이 싱겁게 끝이 났고  슈퍼에서 주방에서 쓸 소모품 몇 개와 냉장고 안을 채워 넣고 나니 아파트 생활은 불편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뭐지? 이 허전함은?


그렇게 잘 적응하며 지내던 어느 날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가다가 뭔가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시 뒤로 돌려 내려갔다. 그 당시 차를 주차하던 곳이 한층 아래였기에 차를 가지고 다닐 때면 가끔 고개를 쭉 빼내어 창고를 확인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날은 뭔가 이상했다. 눈 끝으로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나의 창고 모습이 뭔가 허전했다. 그래서 차를 돌려 다시 내려 가보니...


창고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층을 잘못 내려왔나 싶어 걸어서 아랫, 위층을 다니며 확인하고 다시 나의 창고 앞에 돌아와 섰다. 황당한 기분이었고 '뭐지?' 하는 생각 들었다. 내 눈앞에는 텅 빈 창고가, 조금의 흐트러짐 없는 상태로 처음부터 비어 있었다는 듯이 있었다. 아니 처음 창고를 받았을 때보다, 짐을 넣기 전보다 더욱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훔쳐간 거야? 통째로?


한동안 말도 잊은 채 허탈감으로 텅 비어있는 창고 앞에 서 있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은 없었지만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에서는 보통 도둑이 들었다면 어지럽혀진 흔적이라도 남아 있어서 도둑이 들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었는데 '이건 뭐지?' 하는 의문만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창고 문을 부순 흔적이라도, 부러뜨린 열쇠 조각이라도, 창고문이 열려 있기라도 제발 뭔가를 조금이라도 눈치채게 남겨 놓았다면 '아하 도둑이 들었구나' 하며 알아채기라도 했었다면, 훨씬 빨리 사태를 파악하고 진정했을 텐데 그런 흔적 1도 남겨 놓지 않았기에 언제 도둑이 들었는지 조차도 예측할 수 없어서 그저 황당했었다.


태어나서 도둑맞아 본 것이 처음이었고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 나라, 호주는 슈퍼에서 지갑을 흘려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서 주인이 돌아와 다시 찾아간다는, 너무 살기 좋고 안전하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숙집에 며칠 지내면서 자주 들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에 놀랐고,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아파트 매니저를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매니저와 이야기하다 경찰에 신고하면 범인은 잡을 수 있는지, 물건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매니저가 자신의 경험으로 보아 이런 도둑을 경찰이 잡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몇 년 전 매니저 여동생 집에 도둑이 들어 경찰을 불렀는데 경찰이 집에 도착한 시간만도 8시간이 넘었고 현관문 열쇠를 부수고 들어왔기에 경찰이 지문을 채취해서 갔지만 그 후로는 감감무소식이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Second Hand Shop (중고품 가게)


그렇게 알게 된 사실들이 있었다. 호주는 중고품 가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남이 쓰던 물건이나 옷, 신발 심지어 속옷까지도 판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는 중고품 가게는 골동품 가게로만 연결 지어 생각했었고 그런 곳에 가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분명 내 물건들이 그런 중고품 가게에 약물 중독자들이 팔아넘겼고 거기에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아파트가 아니라 개인 집에 살 때는 좋은 신발 같은 것도 밖에서 말리지 말라는 충고도 들었다. 약물 중독자들이 약기운이 떨어지면 뭐든지 훔쳐 간다는 말을 해 주었다.


울고 싶자 매 때린다.


딱 그랬다. 그동안 가끔 혼자 힘들어서 울고 싶었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일에 함부로 눈물을 보이며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참고 참아왔던 눈물이었는데 도둑맞은 사건이 나에게 완벽한 핑곗거리를 주었다.


그날 저녁 참 많이도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은 가족들이, 엄마와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고 다시 막내딸로 당장 내일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다 힘들게 다가왔다. 그날 너무 많이 울어 두꺼비가 형님하고 부를 정도로 다음날까지 눈꺼풀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나의 물건들과 선택한 인생에 대한 반성들이 눈물 되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것 같았다.


반성


다 내 잘못이었다. 나의 미숙한 판단으로 심약한 도둑님을 불렀던 것이었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창고를 받았는데 물건들을 천으로 덮어두지도 않았고, 쉽게 운반도 가능한 튼튼한 여행용 가방에 잘 넣어 뒀으니 유혹을 느꼈을 만도 했을 것이었다. 분명 '날 가져가시오'하며 유혹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빠르게 인정했다. 그리고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남의 물건에 손을 됐을까 싶은 측은지심도 생겼다. 훔쳐간 사람에게 보탬이 되었기를 바라며 제발 약물이 아닌 식량으로 돈을 썼길 바라면서 나는 나의 우울한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나는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되었고 그전부터 크게 없었지만 물욕이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물건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런 일로 울지 않았다. 호주에 살면서 골드코스트에서 한번 더 도둑을 맞았고 경찰도 불러봤지만 8시간 이상 걸려 집을 찾아와 지문을 채취해갔지만 그게 다 였다. 그래서 나는 '호주 경찰은 도둑은 잡지 못하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호주에는 자잘한 도둑이 많다


호주에는 지갑이나 돈이 들어있을 만한 작은 주머니 조차도 차에 두고 주차를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지갑을 가져가기 위해 차 유리창을 깨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주 공원이나 해변가 주차장에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차 안에 중요한 물건들을 두지 말라고 그리고 차문을 잘 잠그라는 표지판이 많이 붙어있다.


그리고 나의 경험에도 차에 얽힌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그 당시 나는 도요타 타라고라는 8인승 차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 운전석 옆 중간에 아주 작은 동전 지갑을 차에 항상 두었다가 한 뼘 정도 되는 작은 삼각형 차 창문을 오백 불 주고 갈아 끼운 적이 있다. 그때 나의 동전 지갑에는 센트와 달러짜리 동전 몇 개만 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가끔 거리 주차를 하면 동전이 필요해서 항상 차에 넣어 두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나의 나쁜 습관으로 몇 불 들어있지도 않은 작은 지갑과 오백 불이나 하는 차 창문을 맞바꾸는 비싼 레슨을 또 받은 날이었다.


비싼 레슨


호주에 살다 보니 가끔 의도치 않았지만 비싼 레슨비를 주고 인생 공부를 받게 되는 경우들이 몇 번 있었다. 이런 경우들이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비싼 가격만큼 큰 공부가 되니 잊히지도 않고 조심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되어 글로 쓰고 있으니 나의 비싼 레슨들은 한참 후에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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