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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Dec 26. 2020

크리스마스 체험기

호주에서 아들과 함께한 보낸 크리스마스들

아파트로 이사가 초창기에는 아파트 강가에 있는 바베큐장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었다. 아파트 매니저, 나 그리고 몇몇 가족들이 동참해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만들었다. 내려갈 고향이, 찾아올 가족이 없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석해서 크리스마스날만이라도 외롭지 않게 함께 보내자는 취지였고 특히 건강이 좋지 않은 노부부 2쌍과 연세 많은 독거노인들을 위해 만들었다. 56세대가 사는 우리 아파트에서는 일 년 동안 자주 파티를 열였고 누구의 파티든지 상관없이 아파트 사람들끼리는 쉽게 함께 어울려 지내다 보니 가족 같은 분위기가 생겼고 그래서 크리스마스 파티까지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파티 참석하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집에서는 크리스마스 음식을 만들어 내려오고 특히 할머니들은 고맙게도 자신들만의 크리스마스 전통 음식을 하나씩 만들어 오셨다. 그리고 아파트 매니저는 우리 아파트 중에서 15집을 소유한 가장 큰 부자라 술과 음료 그리고 바베큐 할 모든 재료를 담당했고, 나는 호주 한여름 크리스마스에 먹어야 하는 삶은 새우와 체리를 가장 큰 사이즈로 보통 2-3 킬씩 준비해서 내려갔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특히 매니저 아이들과 나의 아들은 크리스마스 아침에 강가로 내려가 크리스마스 장식을 나와 함께하고 아이들은 하루 종일 파티에서 생기는 자잘한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그리고 참석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움직일 경우 살펴보는 도우미 역할도 담당했다. 그러며 수영장에서 수영도하고 강가 선착장에서 할아버지들 도움을 받아 낚싯대를 던져 낚시하는 법을 배우며 낚시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남녀노소를 떠나 크리스마스날은 하루 종일 다 함께 어울려 가족처럼 지냈다.



그러다 나에게는 호주에서 엄마와 아빠 같은 분이 생겼다. 오랜 기간 알아온 스페인 할머니인 마리아와 영국 할아버지 그레함 부부였다. 두 분이 나의 부모님과 연세도 비슷했다.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되자 매해 크리스마스 파티에 오라는 초대를 받았지만 가족들만의 모임에 민폐를 끼칠 거라는 생각으로 가지 않았었다. 그러다 어느 해 마리아의 강력한 초대에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 참가하게 되었고 그 후 몇 년 동안 마리아집에서 유럽 가정식 크리스마스를 경험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크리스마스 음식을 손수 다 준비를 했다. 처음에는 뭔가 음식을 사거나 준비해서 들고 가려했었지만 스페인 할머니인 마리아는 당신의 집에선 그런 법은 없다며 극구 반대해서 우리는 마리아와 그레함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 선물을 장만해서 들고 10시까지 마리아 집으로 갔다. 10시에 마리아집에 모여 선물을 서로 교환했고 그러고 나면 뒷마당에 차려진 치즈 플레이트와 올리브, 훈제연어, 하몽과 같은 간단한 안주와 함께 우리는 크리스마스 펀치나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뒷마당 수영장 근처에서 이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시작했다. 물론 호주는 한여름이라 무더울 때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수영도 하면서 자유롭게 파티를 즐겼다.


렇게 놀다 시간이 12시 반쯤 되면 집안으로 들어와서 모두가 함께 마리아를 도와 크리스마스 점심상을 차렸다. 그레함은 오븐에서 잘 구워진 칠면조와 햄을 꺼내어 썰기 시작하면, 젊은 우리는 식탁 플레이팅을 하며 완성된 음식을 옮겼다. 그해 몇 명을 초대해서 누가 오는가에 따라 식탁 크기를 조절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음식은 매년 비슷했다. 칠면조 통구이와 통햄을 오븐에 구워서 내고 빵가루에 칠면조 고기와 햄을 썰어 넣고 만든 Pate를 만들어서 내고 신선한 샐러드와 구운 야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전체요리로는 주로 새우 칵테일을 만들어 멋진 컵에 담아 개개인인에게 주었다. 그리고 디저트로는 스페인식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아몬드가루로 만든 여러 가지 모양의 쿠키들이 그날의 디저트였다. 모든 준비가 끝이 나고 식탁에 사람들이 둘러앉으면 제일 먼저 Bonbon(Christmas Cracker)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먼저 본본을 터트렸고 그 속에서 나온 운세 같은 행운의 글을 각각 소리 내어 읽고 작은 선물까지 챙기고 나면 그제야 크리스마스 점심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끝을 내면 서로 도와 간단히 식탁을 치운 다음 다시 모두 뒷마당으로 나가 뒷마당 식탁에 둘러앉아 본격적으로 디저트와 남은 음식 및 안주로 느긋하게 술을 마시며 밤까지 보냈다. 한마디로 놀고먹고 마시는 것도 체력전이었다.


Christmas cracker와 어제 마리아에게서 온 문자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우리는 마리아와 그레함과 집에서 하는 길고 긴 크리스마스 파티는 그만 참가하기로 정했다. 마리아의 건강상태도 나빠졌다는 이유도 있어 부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쯤에 Early 크리스마스 점심을 마리아와 그레함을 초대해서 함께 미리 즐겼고 계속 그렇게 해 오고 있다. 호주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여러 곳에 초대를 받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가족들 간의 모임을 주로 하기 때문에 회사나 친구들끼리는 크리스마스 전으로 미리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며 친목을 다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마리아 집을 가지 않고는 우리는 색다른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크리스마스날에는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집에서만 하는 줄 알았다가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도 크리스마스날에 크리스마스 점심 파티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음식 하기 싫은 자칭 게으른 친구들과 아파트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 호텔에서 진행하는 일인당 300백 불 하는, 극장식 크리스마스 점심을 예약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큰 테이블에 12명이 앉아서 같이 어울려 지내는 것이었다. 물론 친구들끼리 같은 테이블에 모두 앉지만 인원수가 터무니없이 모자라면 다른 가족들이 합석하기도 했다.


파티 내내 노래와 함께 쇼가 진행되었고 각종 신선한 해물과 차가운 음식부터 뜨거운 크리스마스 전통 음식 그리고 디저트까지 뷔페로 이루어졌고 거기에 모든 음료 및 샴페인과 술까지 포함되어 크리스마스 날 음식 장만으로 피곤할 필요 없이 일찍 예약하기만 하면 크리스마스날엔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예약된 명단에서 아이들에게는 산타클로스가 나와 이름을 불러 선물을 직접 주는 시간도 있었다.


호텔식 크리스마스 파티를 보여 드리기 위해 매년 한국의 여름만 피해서 오셔서 호주의 겨울을 항상 보내셨는데 어느 한 해는 호주 여름, 한국의 겨울을 피해 오시라고 했었다. 그래서 나의 엄마는 호주의 크리스마스를 우리와 함께 모든 변천사를 즐기셨다.


파티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Gingerbread man cookies (진저브레드 사람모양 쿠키), 가운데 사진은 디저트바 집 모양도 진저브레드로 만들어짐



3년 정도 호텔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보니 아들과 나는 이 방식도 우리 것이 되기엔 뭔가 몸에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10학년이 되자 우리는, 가족 크리스마스 전통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에 뜻을 모았다. 그래서 그해 처음에는 크리스마스 되기 한 달 전부터 우리는 무엇을 할지 서로 의논을 하며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다. 첫 번째 우리 둘 가족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다음 해의 크리스마스를 이야기하며 아이디어를 내며 미리 의논하기도 했다. 어떤 해는 크리스마스 츄리 만들고 그 밑에 서로의 선물들로 가득 채워보기도 했었다. 서로에게 비밀스러운 선물을 많이 해서 크리스마스날 츄리 밑에 앉아 선물들을 하나씩 같이 풀며 웃음과 행복한 시간을 나누기도 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크리스마스 파티 음식은 미리 만들지 않았고 아들과 나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각자 미리 준비하고 계획한 음식들을 같이 만들며 부엌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아침에는 선물을 확인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우리는 크리스마스 점심 파티를 위한 음식을 함께 만들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음식과 디저트를 시도하며 만들어냈다. 이렇게 우리는 나름의 크리스마스 전통을 만들었고 9년 동안 차츰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2018년까지 진행이 되었다.


우리 둘의 가족 크리스마스를 위해 만들어졌던 음식들



2019년, 아들에게 파트너가 생기면서 우리는 조금 달라졌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는 바다 스포츠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게 되었다. 아들은 서핑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나는 스탠드업 패들 보드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년 크리스마스 때에는 나는 건강이 따라 주지 않아 보는 것으로 참가를 했었다.


그렇게 나와 아들은, 작년 아들의 파트너를 통해 우리 둘이었던 가족이 한 명 추가되어 셋이 먼저 되었고 그렇게 일 년 동안 그녀의 가족을 만나면서 오직 우리 둘만이 가족이었던 호주에서 우리는 이제 대가족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2020년 크리스마스를 우리는 한국과 호주에서 따로 보내게 되었다. 아들에게서 크리스마스 아침 6:28분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아들은 크리스마스 서핑을 하고 파트너 가족 집에서 아침을 먹고 그날 파트너 친할머니가 사시는 선샤인 코스트로 캠핑차를 가지고 파트너 가족들과 함께 올라간다고 했다. 어제 크리스마스 하루 종일 아들은 아침에 강아지 데리고 아침 산책을 하며, 파트너 가족들과 아침 식사하며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게 해 주었고, 캠핑차를 타고 가며, 할머니 집 도착해서, 잠자기 전 이동식 캠핑카에서 무려 5차례나 나에게 영상전화를 걸어오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마 호주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제일 큰 명절이지만 한국은 그러지 않은데 특히 할머니 집은 더더욱 밍밍할 텐데 내가 허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준비 못하니 더 허전하게 보낼 것 같아 아들은 나를 걱정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무 걱정 말라고 아들을 다독이며 아무것도 준비는 못했지만 나도 나름 즐겁게 지낸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며 안심시켰다.

    




그리고 2021년

나는 내년부터는 계속 호주에서 나의 아들뿐만이 아닌 연장된 가족들과 다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것 같다. 내년에는 어떤 크리스마스를 맞이할지 미리 생각해보면서 나는 벌써 설렌다. 가족이 많이 생겨서 그럴 것도 같고 다른 스타일이라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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