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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Mar 07. 2021

봄이 창꽃으로 피었습니다.

바닷가 옆 산길을 산책하며


"진달래다" 반가운 마음에 소리치니

"저건 창꽃이다"라고 노모가 말하십니다.

"창꽃은 먹어도 된다"라고 큰언니가 거듭니다.


앙상한 가지에 사귀 하나 없이

분홍빛 창꽃이 봄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제 눈에는 봄에 피는 큰 분홍색 꽃은 진달래

작은 꽃은 벚꽃 같아 보입니다.



"이름이 뭐가 중요한가요?"

"봄에 피는 꽃이면 반가워 좋죠"라고 말해 놓고 보니

괜히 저의 아둔함을 들은 창꽃이 섭섭해할까 걱정되어

다시 "창꽃, 창꽃"이라고 이름을 새겨 불러 봅니다.


추운 한파에도 꿋꿋이

조금씩 조금씩 움을 틔우며 봄을 준비해온

창꽃이 분홍빛으로 봄을 알려주며 피어났으니

'네가 참 대단하다, 고맙다'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창꽃을 발견한 그 기쁨과 흥분으로

산길 산책로 한 바퀴 도는 내내

김소월 시인님의 진달래꽃을

노래로 부르며 걸어 다녔습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진~달래 진~달래 진~ 달래 꽃 피었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 꽃 피었네.


대학시절 금잔디 광장에서 울려 퍼지던

노래를 기억하며 한 시간 동안 부르다

김소월 시인님은 '창꽃 시도 써주시지'하는

정을 감히 마음속으로 주제넘게 품어도 봤습니다.


뒤 따르던 노모와 언니가

"저건 창꽃이다"를 몇 번 말합니다.

"알아요. 그래서 듣는 창꽃에게 미안해요.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창꽃 사촌인 진달래꽃이라도 불러야 했습니다.


오늘 노모 큰언니한 시간 내내

나의 뒤를 따라 걸으며 저의 행복함에 같이 웃으며

김소월 시인님의 진달래꽃 시를

노래로 완전 다시 외웠을 겁니다.


짙은 분홍빛도, 옅은 분홍빛도 가진 창꽃

창꽃 나무들이 산속 곳곳에서 보일 때마다

'창꽃이다'라고 소리치며 진달래꽃을 다시 부르길 반복하며 걸으니

산길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산책은 봄기운에 온몸을 푹 담그고 봄욕을 즐긴 것 같습니다.

영동 할미가 불어오는 바람으로 꽤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산책길 내내 즐거웠도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에 다른 봄꽃을 발견하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도 웃긴 쥐똥나무 꽃이라 했습니다.


가지에 조롱조롱 피어있는 쥐똥나무 꽃을

처음에는 꽃인 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가 발견하고 보니

작은 송이, 한송이가 참으로 소담하고 곱게 생 꽃송이였습니다.

작은 꽃송이에 소박하게 봄을 담아내고 있어 바로 사랑에 빠졌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와 걸어본 산책길이라 그랬는지,

봄꽃 발견에 그랬는지 흥이 한껏 올라 걷는 내내

걸음걸음에 싱그러운 초록과 분홍 그리고 노란 봄빛까지 가득 담으며

감사하고 즐거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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