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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Nov 26. 2021

엄마표 김밥을 떠올리며


오늘 문득 엄마표 김밥이 먹고 싶다. 나에게 엄마표 김밥은 묘한 매력이 있다. 뜬금없이 갑자기 먹고 싶고, 누가 김밥 먹었다는 말만 들어도 엄마표 김밥이 떠올라 먹고 싶어 진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오 남매 중 한 명이라도 소풍이나 운동회가 있는 날이면 엄마는 김밥을 만드셨고, 그날 아침은 모든 식구가 어묵을 썰어 넣은 계란탕에 김밥을 먹었다. 


엄마가 김밥을 만드는 날에는 평소보다 이른 새벽부터 부엌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압력밥솥에서 나는 기차 소리가 제일 먼저 들려왔고 그 후에도 기차 소리는 몇 차례 더 들렸고 그러면서 간장 조림과 참기름 냄새가 집안을 채웠다. 


부엌에서 소리는 사라지면 엄마가 김밥을 만드시는 중이었고 탑처럼 가득 쌓인 김밥을 엄마가 썰기 시작하면 우리 남매는 그때부터 부지런히 주방을 들락거렸다. 오고 가며 김밥 꽁다리를 얻어먹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도시락을 10개 이상 준비하며 식구들 아침 식사용 개인 접시에 김밥을 담으셨고 틈틈이 찾아와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는 우리들 입에 꽁다리를 넣어 주시며 정신없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엄마도, 가정부 언니도 국 끓여놨으니 제대로 식탁에 앉아서 차분히 먹으라고 한 번씩 소리쳤지만 우리들은 오고 가며 꽁다리 얻어먹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가 입에 넣어주는 첫 번째 김밥 꽁다리는 맛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최고의 맛이라 추억한다. 김밥 꽁다리에는 밥보다 재료가 더 많이 들어가 있어 짠맛이 더 있지만 지금까지도 김밥 꽁다리를 좋아하니 아들은 자신의 김밥 꽁다리를 나에게 양보해준다.


엄마는 김밥은 밥도둑이라고 하셨다. 보통 때는 밥을 한 번만 지어도 아침 먹고 도시락 싸주고도 조금 남는데 김밥을 만드는 날에는 그런 밥을 두세 번 지어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김밥을 가져갔던 날은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평소보다 배가 더 고팠었다. 김밥 도시락이라는 것을 안 친구들이 몰려들어 순식간에 김밥이 사라졌고 나는 아침으로 김밥을 먹었기에 도시락은 친구들에게 거의 양보했었다. 그때는 김밥이 특별했기에 친하지 않던 친구들까지 찾아와서 한두 개 먹을 정도로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음식이었다.


김밥 도시락에 얽힌 슬픈 추억도 하나 있다. 나의 인생에서 최악이고 가장 힘든 시기를 맞은 국민학교(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내내 반장을 해왔던 내가 6학년 들어와서 또 반장으로 추천되자 이젠 하지 않겠다 했다. 그러자 엄마 모시고 오라는 선생님 요구에 제주도 가셔서 올 수 없다는 대답을 해서 6학년 담임은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고 싫어하는 일을 강제로 시키면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엄마가 싸준 김밥 도시락을 가지고 간 날 담임은 점심시간에 잡곡밥 검사를 하면서 쌀밥으로 만들어진 나의 김밥을 집어 들고 물 만난 사람처럼 소리치며 혼냈고 나는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6학년 첫 시험에서 2개 틀려 반에서 일등을 했는데도 2개 틀렸다는 이유로 막대 걸레 자루로 6대를 때려 나는 엉덩이에 짙은 보라색 피멍이 들었었다. 처음 맞은 거라 아픔보다는 정신적 쇼크가 컸었지만 그때 시험 평가 시간이라 아이들 모두가 막대 자루에 맞아 반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었기에 수치심을 잘 참을 수 있었다. 그 일로 학교에 오시겠다는 엄마를 혼자 해결할 수 있다고 오지 못하게 했고 초등학교 다니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학교에 오지 않았던 일 년이었다. 덕분에 나는 일찍 자립성을 키웠고 성숙해졌고 어른을 알아보는 눈을 얻게 되었다.


그 사람은 교육자라기보다는 자신의 성격을 감당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욕설을 했고, 성적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반장들 학부형으로부터 돈 받기를 당연시했던 성숙하지 못한 나쁜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나는 커서 사범대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되고 호주에 와서도 학교에서 일을 했지만 어린 아들에게 어른이라고, 학교 선생님이라고 다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진즉에 설명해 주었다.


엄마표 김밥을 떠올리면 어릴 적 많은 좋은 기억들 속에 울었던 기억 하나 추가되어 추억거리 다양하게 있어 좋다. 그렇다고 엄마표 김밥에 특별한 식재료가 들어가거나 화려한 것은 전혀 아니었고 아주 기본적인 재료로만 만들어진 전형적인 옛날식 김밥이다. 노란 단무지와 노르스름한 계란지단, 녹색의 시금치 무침과 간장에 볶고 조린 당근, 어묵, 우엉이나 유부였다. 가끔 다진 소고기를 볶아 넣기도 하셨는데 그때는 엄마식 유부초밥을 만들려고 소고기를 다져 넣으면서 가끔 김밥에도 넣어 싸주셨다.


이렇게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표 김밥을 사랑하고 길들여져 가끔 시장 가서 줄기 긴 시금치가 눈에 뜨이면 엄마표 김밥이 생각나서 만들어 볼 생각에 시금치 한 단 장바구니에 담게 된다. 그리고 뭉게구름 많은 하늘을 보면 소풍 가기 딱 좋은 날이라는 생각에 엄마표 김밥이 떠올라 먹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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