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동안을 회상하며
고3 때 엄마의 손에 끌려 유명하다는 철학관에 가서 관상, 사주팔자 그리고 입시운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유명한 집이라 그랬는지 사람들이 넓은 방안에 가득 앉아 있었고 안쪽으로 연결된 작은 방은 상만 놓여있고 비어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철학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을 거라는 짐작이 됐다.
그 사람, 철학관 주인, 지금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중년이 넘어 보이는 한 남자가, 사람들을 가로질러 작은 방안 상 앞에 앉더니 사람의 인상에 대한 말을 꺼내었다. 좋은 인상이란 이렇고 저렇고 말을 하면서 앉아있는 사람들을 기웃기웃 살펴보다가 그 사람이 손가락으로 나를 지적했다. 방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손가락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 사람 말에 따르면 코 중간으로 선을 쭉 그어 반으로 나눠보면 나의 얼굴형과 모든 이목구비가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어 아주 좋은 인상이라고 했다. 거기에 앉아 있는 자체도 불편했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목을 받자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그 사람은 인상에 대한 말을 마친 후 한 명씩 작은방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문을 닫지 않았기에 기다리면서 먼저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남의 이야기는 전혀 관심 없었지만 들여오는 소리에 가끔 웃었던 기억도 난다.
한참을 남의 이야기만 듣다가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고 엄마는 그 사람 앞에 앉자마자 핸드백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주었다. 입시운을 본다고 굳이 나를 끌고 오더니 엄마는 가족들 한자 이름을 적어 준비해왔고 가족 사주팔자를 보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그때 그 사람이 엄마에게 말한 우리 가족들의 전체운은 “남편에게는 재물운이 전혀 없고 직업만 좋고 하지만 자네가 금이 많은 재물운으로 재산을 모았어. 이 집엔 큰딸이 시집가면 친정 집안 재산을 다 가져가겠어,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그런데 다 줘도 되겠어. 재산을 막내가 다시 다 채워주는군.” 그렇게 시작했고 엄마는 뭔가가 궁금했는지 질문을 했고 그 사람은 우리 가족 개개인의 사주팔자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보고 열심히 일해서 엄마에게 주라는 말인가?' '내가 엄마 옆에 앉아있어서 그런 말을 하나?'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속삭였다. 끝으로 막내인 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 말에 따르면 나의 사주에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금이란 금을 모두 가지고 있어 평생 재물 떨어질 날이 없으니 따로 금 장신구는 몸에 지니지 말라했다. 사주에 나무가 부족한데 이름 성씨가 숲을 이루니 성씨 덕을 가족 중 내가 가장 많이 본다고 했고 더욱 놀라운 것은 내가 35살부터 평생운이 들어와 있다고 했다. 사람에게 운이 들어와 이렇게 오랫동안 평생운으로 들어있는 사주팔자는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그리고 사람 덕, 인덕도 아주 많고, 남편으로 누굴 데려 와도 내가 남편을 성공시키는 운이라고 했다. 그 사람은 나의 사주를 이야기해주며 신나 보였다. 그러고 나서 작은 통을 상위에 올리더니 나보고 뽑으라 했다. 통에는 나무젓가락 같은 막대기들이 가득 들어있었고 시키는 데로 몇 개 잡아서 꺼내니 뭔가 그 서람을 난처하게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 신난 사람처럼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하던 사람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일어나 어디로 가더니 책을 들고 와서 읽다가 눈을 감고 뭔가를 외우기도 아주 난처해하며 땀을 흘렸다. 그러다 잠시 쉬자며 중단해서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을 술렁였다.
한참 시간을 끌다가 그 사람은 엄마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당신 딸은 공부를 엄청 잘하고 관직도 주어지는 운인데 문제는 당신 딸이 거부를 하고 주는 관직을 스스로 때려 부수고 있어. 그래도 당신 딸은 부모들이 절대 간섭하면 안 돼. 딸이 하는 데로 가만히 두고 봐. 그래야 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그 사람의 말이었다. '공부 잘해봤자 소용없으니 하지 말라는 말인가? 뭐지?'라는 생각을 하며 어색하게 그 자리를 일어났다. 앞서 학생들에게는 된다 안된다로 답을 하며 끝을 냈는데 나는 이상한 말로 끝이 나서 엄마와 나는, 둘 다 찜찜한 표정으로 그 집을 나왔다.
그때 엄마 손에 끌려가듯 가서 관상과 사주팔자를 듣고 보고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경험이 되었다. 나는 솔직히 사주팔자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정도 들어본 경험도 나쁘진 않았다. 재미있었다.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태어난 시간으로 뭔가를 풀어낼 수 있다는 자체가 한 번은 재미 삼아 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싶다.
나는, 인생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그에 대한 책임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선택에 따라 인생의 길을 걸으며 성공, 실패, 고통과 기쁨을 느끼며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한다.
30년도 훨씬 지나서 그때 처음 들었던 나의 사주팔자를 어떤 작가님의 글을 보고 다시 떠올려보며 나의 삶에 끼워 맞춰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해 나는 그 철학관 사람의 말처럼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다. 부모가 간섭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늘 간섭하셨다. 결국엔 아버지가 원하는 사범대학으로 입학했고 유학을 가고 싶었으나 또 아버지 반대에 부딪혔고 재미도 의욕도 없이 대학을 다니며 아이들 가르치는 알바에 열중하며 졸업했다. 오직 한번 아버지가 반대해주길 바라면서 그 당시 나를 좋아한다는 남자, 남편을 소개했지만 반대하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내 인생은 아버지와의 기싸움으로 더 많이 꼬이기 시작한 것 같다.
남편은 나를 좋아했지만 무척 힘들게도 했다. 남편의 첫 번째 사업을 내가 권했다. 남편이 열심히 하면 우리 가족 안정적으로 살 것 같아 좋았지만 첫 번째 사업을 노력 없이 그저 얻게 되니 사람이 달라졌다. 툭하면 다른 사업을 오픈하기 원했고 첫 번째 사업 외엔 모두 반대했지만 남편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어쩔 수 없어 5개의 사업을 오픈했고 그 뒷감당은 모두 나의 몫이 되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남편은 힘들면 피했고 도망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다시 호주에서 한국으로 혼자 도망을 친 것이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그때까지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흑역사로,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살았던 10년의 시간인데, 남편이 호주를 피해 한국으로 도피하는 바람에 아무런 결과도 없이 보낸 헛된 시간들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매일 힘들었고, 매일 밤마다 혼자 울며 털어낸 기억들뿐이다. 싸움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기에 나는 그저 혼자 울며 삭혔던 기억들만 가득하다. 충분히 인내하며 참고 버텼던 웅녀처럼 지낸 시간이었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 추억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 철학관 사람이 말한 35살부터 들었다는 나의 평생운에 관한 이야기를 끼워 맞춰보려 한다. 나의 나이 34살에 남편은 호주에서 다시 한국으로 혼자 돌아갔고 나는 아들과 단둘이 호주에 남게 되었다. 남편은 모든 사업을 포기했기에 그때부터 나는 아들을 키우며 살아 남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나도 너무 지쳐있었기에 급하게 아무 직업을 찾기보다는 아들 학교에 자원봉사를 하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고 운 좋게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학교에서 능력을 빠르게 인정받았고 시범적으로 진행한 영어 캠프를 아무 잡음 없이 성공시키면서 교장에게 전적으로 신임받아 학교에서 진행하는 모든 영어캠프 총책임자가 되었고 교육청 영어캠프 관련 회의에도 종종 초대받아 참석하게 되었다.
34살, 그때부터 결정한 나의 모든 선택들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순탄하고 단 한 번도 후회를 한적도 없고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때부터 나는 남편 뒷바라지가 아닌 나의 일을 하게 되었고, 남편 친구들은 털어내고 나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나의 뜻과 의지로 흘러갔다. 그래서 보면 그때 그 사람이 말한 35살부터 평생운이 들었다는 말에 끼워 넣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는 34살부터 떨어져 지냈지만 남편이 주는 스트레스는 나의 몸을 갈아먹었고 그러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심한 출혈로 응급실을 종종 찾다 보니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고서는 나의 건강 이상과 연관성이 무엇인지 알아내고는 나에게 충분하다며 이혼을 권했다. 10년을 훨씬 넘게 떨어져 살면서도 이혼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음에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결국에는 아들의 설득으로 내 몸을 먼저 살피기로 했다. 그러면서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안정되고 편안해지니 건강도 차츰 좋아지게 되었다. 진즉에 그때 그 사람이 차라리 넌 남편복 없다, 넌 결혼하지 마라, 혼자 성공하며 살아라고 했으면 완전 소름 돋을 뻔했다. 그런 소리를 했었다면 아빠와의 기싸움으로 엉뚱한 짓을 벌이지도 않았을 거고 나의 인생의 흑역사도 만들지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편을 선택하고 비록 나의 인생에서 흑역사를 만들었지만 후회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 선택을 했기에 다정하고 든든한 아들이 생겼고 착하고 예쁜 미래 며느리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34살부터 시작해서 찾아온 나의 평생운은 현제에도 진행 중이다. 경호를 담당하는 11살 먹은 개 한 마리와 환하고 편안한 집에서 아무 걱정 근심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고, 지나칠 정도로 넘치는 사랑을 아들과 미래 며느리에게 받고 있고, 아침이면 산책과 운동을 하고, 텃밭도 일구고, 취미생활에 빠져 즐기며 살고 있으니 평생운이 들었다는 말은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사주팔자를 보러 다니는 것도 전적으로 개인 선택, 취향일 것 같다. 어쨌든 사주팔자를 봤다면 좋은 것은 그 길로 가려고 노력하고 나쁜 것은 조심해서 이겨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노력은 하지 않고 괜히 헛돈 들여 여기저기 그런 말에만 의존하고 다닌다면 문제가 될 것 같다. 뭐든지 적당한 것이 좋을 것 같다. 인생은 한방에 오는 로또 당첨금일 수는 없다. 작고 어리고 거친 나라는 인간을 오랜 시간 노력과 인내로 갈고 다듬어가며 최대한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내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한다. 내 사주팔자는 내가 직접 만들어 가며 살아내자고 말하고 싶다.
PS
페르세우스 작가님의 글을 읽다 떠오른 추억으로 써 봤습니다. 글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