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들 커플과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아들 파트너 데즐레이가 아들에게 만들어준 노트북 케이스가 너무 특별하고 이쁘다며 부러워해서 슬쩍, 아주 슬쩍 ‘너도 원하니?’ 스치듯 가볍게 물었는데 너무 진지하게 갖고 싶다는 답을 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을 하자 나의 머릿속은 어떤 디자인을 넣을지, 어떻게 만들지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내가 그린 그림과 매칭 시키면서 구상을 끝내고는 바로 데즐레이를 위한 노트북 케이스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4시간 걸려 웻펠팅으로 모양을 만들어냈고 3일 동안 형태를 잡아가며 말린 후 니들 펠팅으로 나의 아크릴 그림을 넣기 시작했다.
데즐레이는 현제 고등학교 정규직 영어교사로 4년째 일하고 있지만 올해 들어 진지하게 직업에 대한 변화를, 자신의 열정과 꿈을 찾아보고 싶어 했다. 교사라는 직업은 안전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꿈과 열정으로 선택한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나의 아들과 살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 모양이었다. 그래서 데즐레이는 자신의 꿈과 열정을,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 데즐레이를 백 프로 격려했고 응원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노트북 케이스에도 응원의 의미를 담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미리 생각했던 나의 그림 두 개를 조금씩 노트북 케이스에 새겨 넣으면서, 아름다운 넓은 들판에 자리 잡은 한그루 건강한 나무처럼 이미 좋은 환경에서 튼튼히 뿌리내렸으니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새로운 꿈과 열정을 찾아 뻗어가라는 의미를 담았다.
지금 데즐레이이게 전해주고 싶은 나의 마음을 오래전 가볍게 그린 디자인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니들 펠팅 첫날에는 노트북 케이스에 전체적으로 그림을 넣다 보니 9시간도 넘게 걸려 겨우 전체적인 아웃라인을 만들었다. 다음날부터는 디테일 작업을 2주 동안 했다. 두 번째 날에도 니들 펠팅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다가 이틀 연속 오랫동안 작업하는 날 기다리다 결국에는 멈출 수 있은 행동을 하는 우리 집 개 바디를 보고 웃으며 작업을 멈출 수 있었다. 이날도 9시간도 넘게 하루 종일 니들 펠팅에만 집중했다.
이틀 동안 열심히 한 보람으로 꽤 선명하게 그림들이 드러났고 계속 니들 펠팅을 해서 디테일하고 단단하게 굳혔다. 그렇게 2주 동안 40시간 넘게 투자해서 또 노트북 케이스를 만들어 냈다.
모든 것이 나의 창작물, 세상에 하나뿐이겠지만 데즐레이 이니셜 D를 새겨 넣어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물로 주기 직전에 희망을 찾아 떠나는 길에 방향을 잃지 말라는 뜻을 담아 생각의 하늘에 달과 별을 넣었다. 없을 때보다 달과 별을 넣으니 좀 귀여워졌다.
이렇게 두 개의 노트북 케이스를 웻 펠팅과 바늘 펠팅을 함께해서 만들어보니 펠팅으로 노트북 케이스를 만들지 않는 이유는 상업성이 전혀 없다는 이유인 것 같았다. 하나 만드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노트북 케이스를 만들어내는데 그 정도의 시간쯤은 마땅히 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시간에 많이 만들어 이윤을 얻는 상업적인 마인드가 아니라 예술가가 작품을 하나 만들어낸 것처럼 그 작품의 가격보다는 다른 귀한 가치를 가질 거라 믿는다. 왜냐하면 이렇게 오래 걸려 만들어 선물하면 받는 이의 모습에서 놀라움과 기쁨과 소중함 등 복합적인 감정을 읽을 수 있어 그들의 표정과 표현을 보는 즐거움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다 만든 두 번째 노트북 케이스는 데즐레이에게 주기 전에 직조와 방적 클럽에 먼저 가져가서 보여주었다. 회원들은 입을 모아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케이스를 사진 찍어가며 이들도 많았고 그들은 만드는데 얼마나 걸렸는지, 디자인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개인적으로 팔 생각이 있는지, 주문 제작할 생각이 있는지 등 정말 많은 질문들을 물어왔다. 아직은 결정하지 않았지만 팔면 결코 싼값은 아닐 거라고 웃어넘겼다. 나의 답에 모두가 예술 작품이니 당연하다며 나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이것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려고 했지만 다 만들었는데 숨겨두었다가 나중에 주는 그런 인내심이 전혀 없는 나는, 나의 생일에 찾아온 데즐레이에게 노트북 케이스를 선물로 주었다. 선물을 받아 든 데즐레이는 마치 자기 생일 같다며 어쩔 줄 몰라하며 좋아했고 몇 번씩이나 예쁘다, 고맙다는 말을 하며 나를 껴안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니들 펠팅을 하고 나면 나의 손가락이 불쌍해진다. 수차례 바늘에 찔린 상처로 얼얼하게 아파서 아픔이 가라앉도록 당분간 펠팅은 쉬어야 한다. 쉬면서 나는 다음 도전할 작품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손가락이 가라앉으면 또다시 노트북 케이스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그때는 바늘 펠팅을 전혀 하지 않고 온전히 웻 펠팅으로만 나의 그림을 장식해서 만들어 볼 생각이다. 세심하게 그림을 그대로 장식해 넣고 웻펠팅을 하면 어떻게 나올지, 성공적으로 그림이, 디자인이 그대로 나올지, 시간은 또 얼마나 걸릴지 궁금해서 실험적으로 해 볼 생각에 설렌다. 이렇게 나는 펠팅을 쉬면서도 펠팅을 생각하니 당분간 나의 외도는 지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