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연애 시작 후 두 번째 여행. 그리고 마지막이 됐다.
콜카타에서의 만남이 끝이 아니었다. 디왈리까지 흥겹게 즐기고 남자 친구 친구들과도 급속도로 친해졌다. 시내의 여러 유명한 식당에서 벵골인들의 음식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진하게 느끼고 왔다. 우리의 두 번째 여행은 콜카타를 벗어나 인도인들에게 인기 있는 신혼여행지이자 겨울철 휴양지인 외국인들에게 생소할 수도 있는 인도의 연방 직할지에 해당하는 안다만 & 니코바르 제도(Andaman & Nicobar Island)로 갔다. 이곳으로 가는 비행 편은 델리에서 직항으로 3시간 30분 소요되며, 콜카타에서는 조금 더 가까워서 2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행정 중심지인 포트블레어(Port Blair)로 들어가게 된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인도 관광 비자가 있어도 따로 여권 검사가 이루어지는 보안 지역이기 때문에 여권을 항시 지참해야 한다.
지리적으로 북부의 안다만 제도와 남부의 니코바르 제도로 크게 나뉘며, 인도 본토로부터는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것 이상으로 아주 멀리 무려 1,000km 가까이 떨어져 있다. 깨끗한 공기와 터키색의 푸른 바다가 있는 제주도와 그 느낌이 비슷하다.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일본 제국이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의 일부 지역을 침략했으며, 인도 독립 이후에 현대로 접어들며 본 제도가 인도령으로 귀속됐다는 것이다. 영국 식민 통치 하에 반 식민주의 및 자주독립운동을 벌였던 인도의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탄압하고 투옥한 곳 또한 인도와 멀리 떨어진 이 섬이었다. 완전히 고립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비친다.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200년이 넘는 식민 시절의 고통을 짐작해 볼 수 있는 The Cellular Jail은 현재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에서 필수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역사를 알고 다시 본 판옵티콘 감옥은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며 매우 쓸쓸하고 서늘하게 다가왔다.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는 일상을 벗어나 진정한 쉼을 발견할 수 있는 목가적인 안식처로서 맑은 하늘, 편안하게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최적의 온도,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산호초, 적당한 강수량, 자연 그대로의 때타지 않은 백사장 그리고 우거진 자연의 아름다움에 둘러싸인 지상낙원과 같은 곳이다.
하벨록 섬은 안다만 제도의 남쪽 행정 구역이 있는 리치 군도에서 가장 큰 섬 중 하나이다. 수백 개의 섬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인도네시아 섬들과 비슷한 지형이다. 포트블레어에 내리자마자 관광 가이드가 호객행위를 하며 유명 관광지로 가는 방법을 제시하며 동행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것 없다. 물론 인터넷으로 조사만 해도 관광 섬을 찾기는 수월하다. 첫 번째로 향한 섬은 하벨록으로 '스와라즈 드위프(Swaraj Dweep)'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Swaraj는 힌디어로 '자치' 및 '독립'을 Dweep은 '섬'을 뜻한다. 가장 큰 섬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이곳은 '코끼리 해변(Elephant Beach)'으로 불리는 눈부신 백사장이 매력적인 여행지이다.
산호초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다이빙을 하거나, 요트 및 제트 보트 등의 수상스포츠로 모험을 즐기거나, 맹그로브 숲에 아주 가까이 갈 수 있는 카약을 타거나, 섬과 섬 사이를 오고 가며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을 관찰하거나,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해변에서 따스한 태양의 온기에 몸을 맡기거나, 생물발광이 발생하는 랙스맨퍼 해변(Laxmanpur)에서 해양세계의 신비로움에 감탄하거나, 시타퍼 해변(Sitapur)에서 서핑을 경험할 수도 있는 다채로운 휴식과 대자연의 경이로움이 맞물리는 천혜의 보고와 같은 곳이다.
우리도 안다만 니코바르의 보물을 체험하러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낚시도 겸하는 요트를 대여해서 전문 낚시인과 현지인 가이드와 그 여정을 함께했다. 한국에서도 해보지 못한 낚시를 안다만 니코바르까지 와서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새로운 도전과 이색적인 경험을 잘 받아들이는 편으로 한 번 대어를 잡아 보겠다는 도전 의식을 품었다. 그림 같은 바다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 두어 시간 정도 망망대해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낚시가 가능한 지점에 도착해서 미끼를 장착하고 낚싯대를 풀었다. 생각보다 무거운 장비에 초심자로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Beginner's luck, 초심자에게 찾아오는 행운이었을까?
10분이 지났을 때였나. 손 끝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을 감지했다. 그리고 내 몸무게를 초월하는 강력한 힘의 반동과 요동치는 괴어의 파닥 거림에 전율이 일었다. 이때다 싶어 난 있는 힘껏 두 발바닥에 힘을 주고 코어에 중심을 잡고 낚싯줄을 감아올리기 시작했다. 나름 체력에 자부심을 느끼는 작은 고추가 매운 나였다.
몇 분 간 사투를 벌인 끝에 드디어 어마무시한 대어와 마주할 수 있었다. 처음 접한 물고기 종류였다. 괴상한 형상을 한 '무명갈전갱이'가 그 주인공이다. 전갱이는 한국에서도 익히 먹는 고기로 회, 조림, 구이 등의 다양한 요리로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일반 전갱이 보다 훨씬 더 큰 크기였다. 이리저리 세상 본 적 없는 특이한 얼굴에 몰두해 있을 때쯤 어부가 물어왔다. 놓아주는 것과 잡아서 요리해 먹는 두 가지 방법이 있으니 "Catch or Release" 전자냐 후자냐 하는 것이었다. 첫 낚시 경험이기도 하고 우리의 소소한 성취감을 만끽하고자 캐치를 선택했다. 뿌듯한 마음을 안고 조금 더 요트 위에서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그 끝을 모르는 수평선을 멀리한 채 해변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묵고 있던 리조트는 하늘을 찌르듯 높이 솟아있는 열대 야자수와 코코넛 나무가 머리 위로 캐노피를 드리운 자연과의 경계가 허물어진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인도의 건축양식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수세기에 걸친 영국 식민 시절과 포르투갈 및 프랑스 등 서구권의 지배에서 영감을 받은 식민지 양식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환경친화적인 자연주의를 내세우는 수목 배치 디자인이다.
우리가 머문 리조트 또한 자연의 품 안에서 인간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구조의 전형적인 모습을 띤다. 지역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Vernacular 양식을 따라 지어진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의 주거지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억센 잔디를 엮어 초가지붕을 올린 뒤집힌 분지와 파이 접시 사이의 모양을 하고 있다. 지형의 특징을 돋보이게 함과 동시에 섬의 기능적인 역할과 의미를 살려 조화로운 디자인을 추구한다.
옅은 어둠이 깔린 리조트 내 부지를 저물녘의 석양빛에 기대어 가벼운 산책을 즐겼다. 따스한 해풍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걸었다. 해먹에 잠시 누워 바다의 풍광에 그윽하게 빠져들었다. 산책로 양옆으로 영롱하게 타오르던 촛불은 우리의 동행자였다.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났다.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우리가 잡은 생선으로 만든 전갱이 스테이크였다. 전갱이가 기본적으로 지니는 자연 피시 오일이 풍부하기 때문에 특히나 이 정도 크기의 대어는 살짝 기름을 두르고 너무 퍽퍽하지 않게 잔잔히 중간불에서 익혀나가야 한다고 배웠다. 농어 같은 살이 연한 흰살생선과는 다르게 조금 더 씹는 맛이 있고 단단하면서도 밀도 있는 질감이 인도 마살라 향과 훌륭한 밸런스를 이뤘다. 서구권에서는 어떻게 요리할지 다른 스타일의 전갱이 맛도 기대되는 그런 맛이었다. 인도에서 먹는 만큼 인도 스타일로 전갱이를 즐겼다. 검은 후추로 간단히 간을 한 생선 튀김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남인도 출신 셰프의 손맛을 음미하고 싶었다. 인도 남부의 기본기인 코코넛 오일, 말라바르 지역(지금의 인도 남서부, 뭄바이 부근)에서 나는 타마린드, 머스터드 씨, 인도 음식 특유의 향을 내는 커리 잎, 인도식 고춧가루(Ral milichi), 호로파 가루, 생강 그리고 마늘을 넣고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익혀가는 요리법으로 완성된 대왕 전갱이 스테이크는 빈틈없는 성찬이었다.
든든한 단백질로 배를 두둑하게 채우고 그날 밤 우리는 단잠에 들었다. 우리 만난 날의 2년째 되는 날에 결혼할까라는 달콤한 속삭임으로 진지한 논의의 틈은 남기지 않고 잠의 블랙홀에 빠져버렸다. 다음 날, 충전된 에너지로 뻐근한 어깨와 약간 시큰하게 아프던 손목의 고통을 치유하고 다른 해변으로 향했다. 맹그로브 숲이 형성된 해안가. 우리나라에서는 기후상 존재할 수 없는(열대 및 아열대 위도에서 자생) 맹그로브는 거대한 숲을 이루며, 생태계에서 포식자로부터 물고기를 보호하며 피난처를 제공하고 다양한 생물종에게 풍부한 먹거리와 보금자리를 내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생명력 그 자체로 환경 보호에 크게 기여한다. 생태학자들에 의해 알려진 바로는 영양분과 폐기물의 저장 및 재활용, 경작 및 에너지 전환 그리고 홍수 예방의 역할까지 한다고 한다.
남부 안다만 쪽의 행정구역인 네일(Neil) 섬은 인도명으로는 'Shaheed Dweep'이며 해석하면 순교자의 섬을 의미한다. 보트나 카약을 타고 울창한 맹그로브숲 사이 곳곳을 누비며 자연 친화적인 경험의 정점을 누릴 수 있다. 맹그로브숲을 지나갈 때면 빽빽하게 시야를 메우는 맹그로브와 땅 깊숙이 뿌리내린 우거진 몸통의 광경에 압도됨과 동시에 티 없이 맑은 그대로의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지극히 평화롭고 고요한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는 저녁쯤 야경도 볼 겸 야간 카약을 타기로 했다. 안내원이 탄 카약을 따라가며 맹그로브 숲의 일정 구간을 지나는 체험이다. 잔잔한 물결 위에서 바삐 움직이는 건 우리 둘의 상체뿐이었다. 사방이 고요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에 묻힌 맹그로브숲과 독대하는 것만 같았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는 이미 수만 개의 별 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노를 저어야 한다는 사실도 순간 잊어버리고 그저 한 줄기의 빛처럼 어둠 속에서 고개를 내민 찬란한 밤하늘에 넋을 잃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홀로 떨어져 나와 세상과 단절된 듯 오롯이 느긋하게 흘러가는 자연의 흐름만이 느껴질 뿐이다. 청정 해변과 열대우림은 호캉스와 같은 럭셔리함을 선호하던 나에게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경험이었다.
인도에서는 굳이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경험할 것이 무궁무진하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 항상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며, 무한한 놀거리를 제공하는 참 매력적인 나라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울창한 야자수가 펼쳐지는 해변가, 깊은 산속에서 나만의 고요한 휴식, 설원에서 즐기는 겨울철 스포츠, 무엇보다 화려하고 웅장한 럭셔리 호텔에서 즐기는 인도식 환대, 마음의 안정을 찾아 떠나는 명상과 요가 아슈람 체험, 금강산도 식후경 실크로드부터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발전해 온 인도 마살라의 풍미 넘치는 미식, 전통과 현대의 미묘한 조화, 세계적인 랜드마크와 유서 깊은 건축, 디자인, 예술 및 문화 그리고 춤과 노래가 빠지지 않는 흥을 즐기고 싶다면 인도는 훌륭한 여행지 후보가 될 수 있다.
인도에 대한 나의 사랑이 더 깊어질 때쯤 이번 여행은 당분간의 오랜 헤어짐을 예고하며 끝이 났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인생을 힘차게 살아가기 위해 두 갈래로 나아가는 시간.
걷는 길은 다른 방향이지만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며.
다음 만남에는 더 성숙하고 무르익은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훗날 묵직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오늘의 하루는 누군가가 고대한 내일이라고.
이 말의 의미를 천천히 곱씹게 된 것은 코로나라는 천재지변을 겪으며 생이별했던 우리의 상황을 포용하면서.
2019년 11월 2일, 인디라 간디 공항(델리) 여객 터미널 밖에서 헤어졌고
2022년 10월 12일, 수바스 찬드라 보스 공항(콜카타) 여객 터미널 밖에서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