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진짜 이별했지만 그의 초대에 YES를 외쳤다

재결합이 우리 서사의 마지막 그림일까?

by 한궁인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했고, 생이별하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결별하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계획에 차질을 빚고, 인생의 방향을 바꿔야 했으며

누군가를 떠나보내기도 했고, 생업에서 손을 놓게도 되는 등

우리는 저마다의 위치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아픔과 상실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2020년을 송두리째 앗아간 그 변태적인 모습의 코로나를 만났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난 나름대로의 프로젝트를 일구어가며, 그와 만나지 못하는 설움과 씁쓸함을 어떻게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으로 메꾸곤 했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사실 많지는 않았다. 이력서에 추가할 수 있는 몇 줄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한국사 1급 및 스페인어 중급 자격을 따냈다. 단기적 목적을 두고 확고한 의지를 보이며 몰두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나의 번잡한 마음을 다스리는 나만의 출구이자 마음의 양식이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어둠의 시기를 지나며 내 연애 전선에도 흑역사가 차츰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고 삼재에 물린 듯 영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느낌이 나의 정신적 우울감을 키워만 갔다.


항공업에 종사하며 전 세계 사람들 간 연결의 편의성을 향상하고 그 폭을 증대하는 것이 내 시야를 확장시키는 데에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건 환상에 불구했다. 언제나 그렇듯 현실과 이상에는 아주 큰 격차가 존재한다.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아실현'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는 데 현장 서비스업의 단편적인 모습이 여실하게 체감됐기 때문이다. 주변의 질타는 제쳐두고 특히 부모님께 근심걱정이 될 사안인 나의 이직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또래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았고 외부 환경에 일찍 노출되다 보니 아무래도 불안정한 상태와 큰 변화의 폭에 적응하는 것과 현실세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 해결하는 자립감 또한 강한 성향을 보였던 나로서 주변의 시선이나 남들의 의견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성격도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큰 몫을 했다.


그렇게 난 또 한 번의 이직을 했다. 이번엔 제대로 내 진로의 방향과 속도를 설정할 수 있었다.

마치 딱 맞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기분 좋은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 일은 대관업무 및 정책조정업무 기업 및 조직의 주요 활동, 업무적 성격 및 특징에 따라 명칭은 달라지나 기본적인 요지는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됐다. 대정부업무로 쌓은 관(官)을 상대한 경험을 살려 사기업에 첫 발을 들이는 순간이었다. 공에서 사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커리어 변모의 초석을 다지는 일이기도 했다. 대관업무는 쉽게 설명하면 기업 활동에 필수적인 핵심 업무 중 하나로 특히 규제시장에서의 정부 정책, 규제 및 입법과 같은 공공정책 분야를 다루며 특정 산업군에 속하는 기업을 위한 우호적인 시장 환경을 조성하고 말 그대로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부처, 국회(입법기관), 기타 공공기관 및 행정기관을 상대로 기업 입장과 이익을 대변하며 이를 관철시키는 업무 모두를 포함한다. 한국 기업 사회에서는 대관팀 소속의 일원이지만 미국에는 이를 위한 전문 활동가인 로비스트가 존재한다. 그 이면을 살펴보면 업무의 폭이나 성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갑자기 영화 'Me Before You'가 생각나던 시점이었다. 순조롭게 업무를 이어나가며 성취감도 맛보고 다시 편한 신발을 신은 듯 하루하루 즐겁게 업무 소양을 발휘하고 있었던 그 시절, 인간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성장하며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는 그 말을 다시 되뇌며 깨달음을 얻었다. 결국 본인이 먼저라는 것. 이것은 단순하게 개인주의 및 이기심에 기인한 주장으로 끝나서는 안 될 함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일과 사랑이 인생의 대주제로 회자될 때, 나와의 관계 속에 있는 상대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게 꼭 나쁘기만 할까?라는 고심에 빠지게 됐다. 결국 내가 중심에 있어야 수많은 타인과의 관계가 형성되며,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그 관계가 지속되는 등 끝맺음이 있다면 그 또한 원만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일에 대한 적응과 오랜만에 발견한 나만의 능력으로 채운 자아 효능감을 잃고 싶지 않다는 집념으로 온갖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우리 관계도 점점 불균형으로 인해 기울기 시작했고 코로나와 겹쳐 강제적으로 멀어진 그와의 거리에 더불어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차츰 잊힌다'는 말을 호기롭게 이겨보고 싶었지만 결국 나도 그 싸움에서 지게 된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1년 반동안 우리 관계를 잘 지켜냈었지만 2021년 5월 난 이별을 선포하고야 말았다. 이별 또한 새로운 만남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고 다음의 좋은 만남을 위해서는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때 난 그동안의 성숙함이 무색한 듯 그에 대한 예의를 갖춘 구색 좋은 이별조차 해내지 못했다. 난 담담하고 잔인하기까지 했다. 궁색한 변명을 해보자면 교제 기간 내내 미련도, 후회도 없이 온 정성과 열정을 다해 그를 정말 열렬히 사랑했고 나의 모든 모습을 꾸밈없이 솔직히 보여줬으며(적어도 1인칭 시점에서는), 내 모든 것을 바쳐서 그에게 진심을 다했었기에 난 활활 타고 남은 것이 없었다. 다른 생각을 품을 어떤 공백과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장기간 연애 후에 헤어짐을 선택하고 그 후에 찾아오는 감정은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의 정확한 선을 그으며, 전자에게는 부인할 수 없는 후련함이 남기 마련이다. 나 또한 떠나는 자에 해당했다.


이별은 아름답지 않다. 아무리 좋은 이별이라 해도 결국 인연을 끊어버리는 것이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도 내 가치관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나라면 어떻게든 지킬 것 같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만남을 이어가는 쪽을 선택할 내 모습이 그려진다. 사랑했던 남녀가 한순간에 남남이 된다는 것은 놀랍도록 얄팍한 관계의 또 다른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의 인생을 어디선가 잘 살아오다(그는 망각하면서도 나를 계속 기다렸다고 하지만) 간간히 손에 꼽히는 정도로 연락이 닿은 적도 있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돌아선 건 이처럼 긴 시간을 두고는 처음이었다. 이미 가슴 아픈 이별을 한 번 겪어봤던지라 절망은 없었다. 내 마음은 이미 여러 번의 기다림과 그간의 혹독한 정신 훈련을 받으며 굳은살이 생겨 있었기 때문 웬만한 상처는 상처로 인식되지 않았다. 2021년 11월, 2022년 1월 그리고 8월 그는 나에게 어떻게든 닿으려고 했었던 그때를 기억한다. 항상 내가 그의 그림자를 쫓았다면 이번엔 완전 그 순서가 뒤집힌 것이다. 이때 그의 깊은 감정을 헤아릴 방법은 없었다. 나는 소진됐고 이미 떠난 배를 멀찍이서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쉬워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뒤돌아보면 나도 잊지는 않았었다. 그와 나눈 추억, 행복한 기억, 남겨진 사진 등 그 흔적을 모두 지우지 않았다. 지독한 악연으로 헤어짐을 맞이한 것도 아닌 우리는 가끔 서로를 생각할만한 순간들이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 보고, 비행기가 머리 위로 지나가고, 공군에 대한 소식을 듣거나, 인도 관련 뉴스를 접하거나,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인도 친구들의 연락을 받거나 할 때면 줄곧 그를 떠올리곤 했다. 실제로 그로 이어진 나의 생각들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그도 약간은 감정을 털어버린 듯한, 서로의 앞날에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정도로 기운을 회복한 듯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도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의 친한 인도인 친구가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데 암환자인 여동생의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유일한 지인이었던 나에게 한 번 살펴봐줄 수 있겠냐고 도움을 요청해 온 것이다. 항상 배려심이 깊었던 그의 성품이 내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다. 나는 흔쾌히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연락하라고 그에 대한 연락의 문을 한동안 열어 두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인간상은 아니었기에. 아프고 병든 사람에게 등질 수 없는 기본적인 연민과 측은지심은 인류애의 일종이다. 그리고 몇 달 뒤(후문으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고), 그는 아무렇지 않게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게 일반적인 친구 사이인 마냥 한국 분단 상황에 대한 발표를 맡게 됐다며 그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자료 검토를 내게 부탁해 왔다. 한국인으로서 익숙한 팩트 체크 및 한때 정부업무를 했던 나로서 대외업무용 한국 소개 자료에 포함된 내용이 상당수 있었기에 그다지 성가신 부탁도 아니었다. 단번에 검수작업을 해줬다. 그리고는 다시 잊고 지냈다.


마지막이라며 그가 다시금 용기를 내 전한 마음은 인도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인 중매결혼(arranged marriage)의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홀연히 떠난 나로 인해 커진 하나뿐인 아들의 혼사에 대한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던 전형적인 인도 부모님의 입김에 그도 위태로운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까지도 그의 마음은 일편단심 나를 향하고 있었고 중간에 나를 잊으려고 수많은 시도를 하고 분노의 단계를 거쳐 수용의 수순까지 밟으며 다른 여성분들도 많이 만나봤지만 그때서야 깨달았다고 한다. 나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음을. 나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그가 어떤 인생의 난관을 겪더라도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고 본인을 그대로 인정해 주며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었노라고. 이런 고백을 들은 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서였다. 왜 인간은 곁에 있을 때 주고받는 사랑에 대한 감사함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고 소중함을 알아채지 못할까. 떠나고서야 느껴지는 그 사람의 진가를 함께할 때는 왜 그토록 헤아리지 못하는 것인지. 어쩌면 어느 정도의 거리와 끝이 있어야 소중함과 가치를 파악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에서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뿐 논리적인 생각의 흐름 따위는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나도 감성으로만 했던 연애였기에 활활 타오르는 사랑이 가능했다. 너무 현실적인 생각에만 집중했다면 우리의 헤어짐은 더 빨랐을 수도 있다. 이때의 나는 이성을 앞세워 감성에 자리를 내준 그의 마음을 짓밟는 거절의 대답을 선택했다. 2022년 8월까지 그는 어둠의 긴 터널로 자취를 감췄다.

IMG-20241220-WA0045.jpg 해외 대학원 석사 준비를 위해 노력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IMG-20241220-WA0032.jpg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회사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같은 해 8월, 대관업무 실무를 경험하며 새로운 영역에 대한 열망이 커졌고 내 꿈은 한 번 더 꿈틀거리고 있었다. 규제시장에서의 첨예한 기업활동과 이를 둘러싼 정부 정책과 더 나아가 법규에 대한 이해 그리고 업무 특성상 중대한 역할을 하는 관련 기관 및 관계자와의 네트워크 확장이라는 패기 있는 목표를 세우고 공공정책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폭넓은 범위의 전문 지식을 함양해서 더 넓은 무대로 진출하고 싶었다. 대관팀에 들어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처럼 신입으로 처음부터 업무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했고 내 위치에서 현실을 직시한 채 더 공부해야 할 것들,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이다. 학사 때 기본 과정으로 공부했던 행정학을 좀 더 면밀하게 파고들기로 했다. 정부조직의 공공 영역뿐만 아니라 민간기업과의 유기적 관계, 그리고 급변하는 사회환경에 대한 경영까지 광범위한 부분을 포괄해 사회 혁신을 위한 전문 컨설팅 회사 및 국제기구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기 위한 향후 진로 방향에 맞는 석사 프로그램 중 Master of Public Administration(MPA)를 운영하는 영국제 및 유럽 유수 대학원 몇 군데를 후보로 선정해 둔 채 가을 학기 입학전형에 따라 상이한 필수 자료들을 취합하고 기타 문서들을 정리해 두고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난 앞으로 또 한 번 불어닥칠 변화와 도전으로 가득 찬 항로를 정한 채 잠시 쉴 곳이 필요해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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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파리향발 비행기에 앉아서

영원히 내 인생의 판도를 바꾸어버릴 거대한 운명의 길에 들어서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여기까지 와서 그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연락한 탓에 존재감이 제로는 아니었던 전 남자 친구. 리옹에 있던 내 가족을 통해 전해 들은 어느 때보다 가깝게 느껴지던 그에 대한 그들의 사사로운 의견들. 그의 식지 않은 열기, 잠들지 않은 여운과 행복, 거절이라는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와 굽히지 않는 노력에 난 더 이상 고개만 떨구고 있을 수 없었다. '하늘은 용기 있는 자의 편'이라 했다. 난 결국 여러 번의 거절 끝에 영원불변에 가까웠던 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거의 1년 만에 목소리를 들어본 것 같다. 이상하게 마음이 떨렸다. 첫사랑과의 데이트에 나서는 설렘과는 다른 성격의 두근거림이었다. 각자 서로의 시간을 잘 보내오다 그간의 어떠한 변화나 혹은 성장, 그의 달라져있을 근황과 모습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찰나의 어색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알던 그의 목소리에 담긴 장난기 섞인 에너지를 감지함과 동시에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언제나 그렇듯 대화를 풍성하게 이어가는 내 천성인 호기심 위에 나만의 친화력과 교감능력을 얹어 4년 전 그때로,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는데 두 눈이 반짝이며 총명했던 그때로 회귀한 듯 다시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채 속절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는 같이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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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이모와 이모부와 함께 샴페인을 터뜨리며 '옛 연인과의 재결합'이라는 주사위를 던졌다

나를 사로잡은 그의 한마디는, "서울에 한번 와. 나 만났을 때 한 번도 못 와봤잖아. 지금이 적기 아니야? 그때만큼은 너 안 바쁜 거 같은데. 나랑 통화할 시간도 다 있고 말이야. 인도처럼 크진 않지만 우리나라도 아름다운 볼거리가 무지 많아."라며 시답잖지만 친근한 어조의 말 뒤에 숨긴 그를 향해 조금은 자라고 있던 내 마음에 살포시 응하던 딱 그만이 내게 보일 수 있는 달콤함인 "I could perhaps go to Korea, but I'm sure there's nothing more beautiful than you over there and I've already seen it."이 말은 즉슨, 한국이야 갈 수 있지. 하지만 그곳에서도 너보다 아름다운 건 없을 거야. 그리고 난 이미 보았는걸.

그의 육성으로 전해진 잊을 수 없는 깊은 울림이 있던 고백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로 콜카타행 티켓이 도착했다. 해외 대학원 진학을 위한 IELTS 어학시험을 마치고 세 곳에 지원서를 넣은 후 다시 한 달이 흐르고 10월, 그의 고향인 서벵골(West Bengal)의 중심지 콜카타에서 열리는 벵골인은 물론 인도 전역의 다른 문화권에 속하는 온 국민이 함께하는 드루가 푸자(Durga Puja)의 뜨거운 열기 속으로 우리는 용감하게 뛰어들었다. 자신의 뿌리가 숨 쉬는 곳에서 최후의 한 수를 두는 그의 결연한 의지가 돋보이는 '대면'하자는 그의 초대에 흔쾌히 응했다. 콜카타로 가본다. 나만큼이나 용감함을 보여준 그에게 존경심을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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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one-Aples 지역의 포도밭 일대를 지나며 마주한 햇살 가득한 풍경, 프랑스의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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