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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궁인 Dec 07. 2024

Ep. 7 장거리 연애 할만했다

이때까지는... 카운트다운 가능한 날짜만 있다면

2년을 덜 채운 인도 살이를 끝내고 돌아온 한국은 무엇하나 바뀐 것이 없었다. 

인도에는 없는 인도(人道)를 아슬아슬하게 차량을 피할 것 없이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이맘때쯤 불어왔던 호흡기를 자극하는 대기오염에 물든 바람 없는 자연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그 무엇보다 걷는 거리마다 내 눈길에 닿는 한강을 둘러싼 서울의 탁 트인 경치가 홈커밍을 실감하게 했다.

내 달력은 앞으로 한 달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과 친구들과의 일정으로 가득 찼다. 

그 첫 번째 퀘스트는 한강공원에서 야경을 보며 피크닉을 즐기는 것. 

유독 이 날따라 선선한 바람에 실려오는 서울의 야경을 탐미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도 이 마음에 적극 동조하여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오늘 만난 친구는 대학생 때 한국유네스코위원회에서 후원하는 세계문화유산 보존활동 및 외교부 주관 독도지킴이 대외활동을 같이 했던 후배였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세월이 지나도 어떤 이유로든지 간에 연락이 계속 유지되는 사이가 있다.

연락을 주기적으로 하진 않아도 만났을 때 항상 기분 좋은 그런 관계도 있다. 원이도 그중 하나였다. 그녀는 나의 변화, 나의 성장 궤도, 그리고 나의 열정과 에너지에 격려와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날 마주하고 앉아 그윽하게 바라본 서울의 밤은 내게 찾아온 변화의 바람만큼이나 특별하게 느껴졌다.


몇 주 정도는 집콕을 하면서 취준생 모드를 장착하고 열심히 구인 사이트를 탐독했다.

마음속에 품고만 있었던 항공업계에 종사하고자 하는 꿈을 실현할 차례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적기이자 한식의 세계화에 기여한 대한항공을 목표로 삼았다. 

이 당시 항공산업의 발전 전망은 그린라이트였으며, 갓 졸업한 취준생들도 항공업계 준비를 위해 따로 스터디를 꾸릴 정도였다. 공항은 다양한 문화, 언어, 그리고 전통이 어우러진 수많은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멜팅 팟 그 자체다. 나 또한 그 설렘의 분위기를 느끼며 축제의 장에 함께하고 싶었다. 

내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원만한 대인관계, 언변능력, 그리고 외국어 회화실력을 갈고닦아나가는 데 제격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러, 인천공항의 대한항공 여객운송업무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다시 취업의 목표를 이뤘고 목록에서 크게 사선을 긋는 쾌감을 맛봤다.  

본격적인 업무는 11월 시작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두 번째 목록에 아른거리던 취직 이전에 확정해 뒀던 10월 단기 프로젝트차 유럽방문에 차질이 없을 타이밍이었다. 행운의 여신은 이때 내 편에 있었다. 


물론 이 계획에는 이제 막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우리들의 배경이 작용했다.

간간히 통번역 프리랜서 업무를 하고 있던 때라 좋은 기회를 얻어 모 기업의 콘퍼런스 한-영 통역건으로 스위스에 가게 된 것이다. 이 기회는 남자친구의 대통령 스위스 해외순방 일정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난 뛸 듯이 기뻤다. 굳은 다짐과 결연한 의지로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막막한 장거리 연애인데 한 달 만에 다시 얼굴 볼 우연찮은 일이 생긴 것이다. 여행 짐을 빈틈없이 한국 간식, 전통소품, 그리고 남자친구 선물로 채웠다. 

9월 12일, 대한항공 제네바 향발 여객기에 탑승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그런 기분. 

일과 사랑을 모두 지킬 수 있는 그 성취감은 어떤 말로도 고스란히 표현할 수가 없다. 여행길 내내 내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펌핑질을 해댔다. 

베른 중심가

3시간에 걸친 콘퍼런스 일정을 마무리하고 대학수능이 끝나고 떠난 첫 유럽여행의 두 번째 종착지였던 

추억의 장소, 제네바에서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하루를 천천히 자유여행으로 머물렀다.

그리고 다음 날, 기차를 타고 로잔을 지나 스위스의 수도, 그가 있는 베른으로 이동했다. 

람 나트 코빈드 인도 대통령의 유럽 해외순방은 스위스에서 첫 문을 열었다.

대통령이 머물던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베른 시내 중심가에 있는 3성급 버젯 호텔 방을 예약했다. 

우리 모두가 알지만 스위스 물가는 살인적이다. Ibis 같은 세계적 호텔 체인은 유럽에서 3-4성급 수준이지만 1박 객실료는 아시아 국가의 웬만한 5성급 호텔가와 맞먹는다. 체크인을 하고 협소한 방에 들어섰다. 

전형적인 물가 높은 서유럽 호텔 방의 모습이었다. 이중창 바로 밑에 위치한 작은 난방기는 이만큼 작은 방에 온기를 불어넣기엔 모자람이 없었고, 내 한 몸 누일만한 작고 귀여운 싱글침대 옆으로는 간단한 업무만 볼 수 있을 정도로 간간히 붙어있는 간이 책상, 딱 그 정도만 있는 룸이었다. 

방이 어떤지는 내게 중요치 않았다. 나의 목적은 그저 딱 하나였다. 그를 있는 힘껏 안아주는 것.

인도 대통령 스위스 해외순방 공식 환영식

완연한 가을의 모습을 한 스위스 베른은 한 낮, 인도 대통령 환영식을 준비하는 분주함과 그에 열기를 더하는 인도 교민사회의 발검음과 아우성으로 더욱 무르익었다. 그때의 그도 날 만날 생각을 하며 업무 버전인 시종일관 같은 얼굴 표정을 해도 그 뒤에 숨긴 설렘과 환희가 있었겠지 싶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시계탑 아래에서 만나기로 한 저녁 7시가 됐다. 추가 업무가 있어서 약간 시간이 지체됐지만 난 마냥 행복했다. 온통 세상이 장밋빛이었던 시간들이었기에.

우리 둘은 거의 동시에 그 장소에 도착했다. 사실 난 들뜬 마음에 숙소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구경도 할 겸 유럽 감성에 푹 젖어 시계탑 주변 쇼핑가와 유럽 특유의 코블스톤 길을 구석구석을 탐방했다. 

저 멀리서 너무 익숙하고 반가운 훤칠한 실루엣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내 두 뺨은 순간 발그레해졌다.

8월 12일 인도를 떠난 그날 이후, 딱 한 달만의 마주함이었다. 세계 뷰티 트렌드를 선도하는 명실상부한 K-코스메틱과 K-장인들의 힘을 빌려 한 껏 꾸미고 간 번지르르한 내 겉모습만 제외하면 우리 둘은 그대로였다. 

그날은 웬일인지 거리에 행인들이 없었다. 시계탑 사거리는 우리 둘 만을 위한 우아한 만남의 무대였다.   

스위스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홍합요리 그리고 '우리'

중심 식당가 방향으로 걷다 보니 알프레스코, 야외 공간을 참 좋아하는 유럽피안들의 다이닝 컬처를 엿볼 수 있는 삼삼오오 모여 식사하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알프레스코 자체는 이탈리아어로 '신선한 공기 속'을 뜻한다. 날씨가 춥거나 더워도 유럽인들은 식사할 때만큼은 사방이 막히지 않은 공간을 선호하는 듯하다. 항상 야외석은 대기줄이 길다. 햇빛이 잘 드는 화창한 날은 더욱 그 인기가 치솟는다. 

이 날은 간소하게 저녁 데이트를 즐겼다. 베른에 오면 필수 미식코스인 홍합요리를 우리도 주저 없이 골랐다. 알프레스코 테이블에 앉아 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홍합을 입 안 가득 베어 물며 쌀쌀한 기운을 달랬다. 

벨기에의 국민요리이기도 한 프리츠(감자튀김)를 곁들인 머슬(홍합) 요리를 넘어설 수는 없었지만 그와 함께한 홍합탕은 추위를 물리는 칼칼함과 우리를 감도는 달콤함에 그 감칠맛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식사를 끝내고 1분 1초가 아쉬운 우리는 모든 근심걱정을 뒤로하고 베른 시내의 아름다움을 잠시 감상하기로 했다. 무려 291km에 달하는 알프스 산맥에서 그 줄기를 내린 베른을 에워싼 아레 강 위를 건너며 스위스의 위대한 자연을 배경 삼아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의 어쩌다 보니 첫 해외여행이 된 지금의 시간을 만끽했다.

그 날밤 그는 대통령이 잠든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VIP 룸을 지키는 경호원 그리고 다른 ADC 친구에게 귀띔하고 그렇게 대통령과 난 하룻밤을 맞바꿨다. 난방을 켜지 않았다. 밤새 우리가 나눈 온기로 충분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다음 날은 그의 OFF였다. 같은 교대 근무조에 있던 동료와 딜을 했다. 대통령 보조 업무 순서를 바꾼 것이다. 우리는 과감 없이 베른을 벗어났다. 대통령은 수행원이 많다. 

하루쯤이야.


알프스 산맥을 따른 우거진 산과 여러 호수가 천혜의 자연경관을 이루는 스위스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적 관광도시인 루체른행 기차를 탔다. 스위스는 이번으로 세 번째 방문이었다. 

그 어떤 때보다 매 순간이 그와 함께여서 더욱 눈부셨던 스위스의 풍경들. 

유럽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목조 다리, 카펠교에 다다랐다. 

몇년 째 카톡 프사가 된 카펠교에서 찍은 사진, 루체른 시내 중심

스위스는 지리상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독일과 접경하고 있어 다양한 언어가 혼재한다. 

독어권에 해당하는 루체른은 '빛의 도시'라는 뜻을 갖는다. 서구권, 특히 독일에서 발명된 유명한 길거리 간식 프레즐 한 봉지와 볼록볼록 튀어나온 동그란 모양이 특색인 스위스 전통 빵 조프(Zoㄹ)를 먹으면서 길거리를 활보했다. 카펠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니 신경 쓰이던 울퉁불퉁한 간식 봉지를, 맛있게 먹을 때는 언제고 서로에게 미루며 옥신각신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카펠교 근처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의 발길에 호응하는 강변을 따른 멋스러운 식당들이 즐비해있다. 

우리도 한 자리 잡고 스위스 국민음식에 해당하는 전통 감자요리 뢰스티(Rosti)와 송아지 고기로 만든 부드러운 소시지 요리(Bratwurst)를 주문했다.  

루체른 카펠교 근처 식당, 뢰스티와 브라트부어스트 요리

이태원 독일 식당에서 먹었던 소시지 요리와 크게 차별화된 맛은 아니었다. 

도쿄, 뉴욕, 밀라노 그리고 런던과 견주어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서울 다이닝신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단지 단순한 맛을 조금 달리하며 매력을 더하는 것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부드럽게 으깨지는 감자덩어리가 완벽히 녹아 목으로 넘어가기 전, 조금 더 이보다는 씹는 즐거움이 있는 간이 잘 베어든 육즙의 고기와 살짝 데친 sautee 채소들을 곁들이면 그 맛이 딱 일품이다. 

식사를 마치고 마침 근처에 열린 벼룩시장에서 스위스 기념품, 전통 공예품, 그리고 각 지방에서 공수한 장식품을 둘러봤다. 남자친구는 ADC 2년 차에 벌써 15개국을 돌았다. 그의 잦은 해외출장 덕분에 여러 나라의 특색 있고 신박한 아이템을 수집하는 취미가 생겼다고 한다. 그의 컬렉션에 스위스 산악지대에 자생하는 야크의 뿔이 추가됐다. 벼룩시장의 매력은 가격 흥정에 있다. 나보다도 더 고수인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나 모든 진열대를 비워낼 지경이었다. 미련 남은 그의 시선을 돌리는 미끼로 젤라토 한 컵을 대령했다. 


오후 두 시쯤이 되자 그가 내 발검을을 재촉했다. 루체른 중앙 기차역 대합실에서 영문도 모른 채 우두커니 서서 그를 기다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가 내게 Alpnachstad 역이 적힌 기차표를 내밀었다. 

알프스 산맥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우리의 생명과도 같은 자연이다. 빛의 방향과 각도에 따라 그 모습을 변화무쌍하게 달리하는 푸르른 자연의 신비를 온몸으로 느꼈다. 여기서부터는 스위스여행의 대표 격인 산악열차를 타고 우리의 호텔이 위치한 산 봉우리로 시시각각 다른 자태를 뽐내는 알프스의 풍경을 담으며, 서서히 올라갔다. 광활한 산악지대에 듬성듬성 널려 있는 스위스인들의 안락한 휴식처인 샬레를 따라 산 중턱에 걸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하룻밤 머물러 갈 Pilates-Kulum 호텔에 도착했다.

스위스의 대자연이 선사하는 탁 트인 전망과 필라투스 산 정상에서 맛보는 특별한 평온함이 매혹적인 호텔. 

그가 준비한 깜짝 여행이라 내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특별했다. 

따뜻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원목 가구, 세련된 우아미가 돋보이는 현대적인 인테리어의 조화가 호텔 전면을 감싼 채 산맥 너머로 뉘엿뉘엿 저무는 붉은 석양과 어우러지며, 이곳에서의 시간을 낭만적으로 물들여갔다.   

장렬한 붉은 노을, 알프스 산맥의 설경, 자연동굴

높은 산 중턱에 위치한 호텔의 특성상 full board를 제공한다. 객실료에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세끼가 모두 포함된다. 왔다 갔다 하기 어려운 산악지대인만큼 투숙객에게 그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호텔방에 짐을 깔끔히 정리해 두고 밖으로 나와 호텔 부지 근처를 거닐며 이제 막 넘어가려는 해의 끝을 붙잡고 그림 같은 풍경을 사진 몇 장에 담았다. 

한창 오붓한 식사를 즐기는 다른 투숙객들, 그리고 우리의 저녁 상차림

어느새 저녁시간이 다 되어 호텔 본건물 옆으로 나란히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고전미가 있는 참나무로 만든 바닥재를 사뿐히 지나 예약석에 앉아 창밖으로 전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멀티 코스요리를 기다리며 우리는 특별한 날을 기념할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알코올 해독능력이 극히 떨어지는 내 몸과 마음에도 가끔은 와인에 기댄 낭만 한 스푼, 그 무드가 필요하다.

프랑스 남동부 론 알프스 지역의 가장 귀족적이며 품위 있는 와인인 '샤또네프 뒤 파프' 최대 와인 생산지 주변에 정착한 이모와 이모부 덕분에 난 와인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어릴 적부터 프랑스 문화를 일찍이 경험하며 와인에 대한 남다른 경험과 애정을 쌓았다. 스위스 알프스와 그 산맥과 공유하는 론(Rhone)을 기억하며, 오늘 밤의 와인으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맛이 감도는 이맘때 더욱 생각나는 '마시 코스타세라 아마로네'를 간택했다.

와인의 기운은 온 혈류를 타고 퍼져 이내 내 볼에 생명력 강한 핑크빛 홍조를 드리웠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그의 장난기 어린 눈빛과 익살스러운 미소가 생생하다. 해발고도 7,000 피트에서 먹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에 더해 그와 또 다른 추억을 만드는 즐거움으로 환희가 흘러넘치던 밤이었다.

카펠교 다리의 중간에 서서, 루체른 시내 조각상 앞에서

일찍 잠에서 깨, 조식장으로 향했다. 이미 산 위로는 그 대지를 따스하게 덮은 햇살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다양성이 빛을 발하는 유럽피안 컨티넨탈 조식.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건강식을 추구하는 나에게 샐러드 바는 천국이다. 퀴노아 바질 샐러드부터 식이섬유와 무기질 등 영양가 좋은 비정제 통곡물과 잘 어울리는 호텔의 라이브 에그스테이션은 딱 내 집으로 옮겨 놓고 싶은 다이닝신이다. 

무지 짧게만 느껴졌던 우리의 하룻밤에 아침이 밝으며 그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분 좋은 정적을 깬 것은 때마침 울린 그의 전화 벨소리였다. 이제 근무지로 복귀해야 하는 그와 다음 파리행 기차 편을 타야 하는 나는 가는 길이 홀연히 갈렸다. 타고 올라왔던 스위스의 대표적인 관광신에 등장하는 선명한 빨간색 산악열차를 타고 우리는 기차역까지 함께 되돌아갔다. 마지막까지 남김없이 가슴속으로 그와 보낸 스위스에서의 모든 추억을 다시금 되새겼다. 황홀환 광경을 등진 채 떠나는 길도 어렵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시간을 추억하며 돌아서는 길은 더욱 가슴 시리다. 기차역까지의 거리는 20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시간이 마냥 아쉽기만 했다. 

장거리 연애 4년이라는 이력을 가진 내가 장거리 연애의 길을 겪고 있는 동병상련의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이러하다. 자신을 독립적으로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떨어져 있는 시간을 인내하고 계속해서 둘만의 프로젝트(짧은 방문이 됐든, 여행이든, 서로의 공동 목표)를 계획하고 무사히 완료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작은 성취를 이루어감으로써 신뢰를 쌓고 정서적 유대감을 길러가야 한다고. 그리고 만남을 고대하는 것으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면 사랑의 불꽃을 유지할 수 있다고. 우리는 그렇게 계속 서로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계획들을 실행에 옮겨 나갔다. 같은 시간 속의 '너와 나'로 살아갔다. 


곧 볼 것이라 약속하며. 그때까지 또 가만히 날짜를 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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