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 22일 화요일 -
♡ 앨런 호바네스(Alan Hovhaness, 1911~2000)
<'교향곡 2번 '신비로운 산'' Op. 132 / Symphony No. 2 'Mysterious Mountain', Op. 132>
■ https://www.youtube.com/watch?v=zQZBrJmzsrc&list=RDzQZBrJmzsrc&start_radio=1
후덥지근했던 밤이 지났다. 아침 6시 무렵인데도 책상의 온도계는 아직 섭씨 27도에 머물러 있다. 인터넷을 타고 들어오는 뉴스들을 살펴보니 중국에서는 태풍 '위파'의 위력에 무려 67만 명이나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미국에서는 '엡스타인 스캔들' 역풍에 휘말린 트럼프 대통령이, 그와 엡스타인이 함께 있는 사진을 공개한 월스트리트 저널(WSJ)(정확히는 발행사인 다우존스)과 월스트리저널 기자 2명, 그리고 WSJ의 모기업 격인 뉴스코퍼레이션과 뉴스코퍼레이션 창립자 루퍼트 머독을 상대로 무려 100억 달러(약 13조 9350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단다... 장관 인사청문회 소식이며 민생회복 쿠폰 소식 같은 매일 아침 쏟아지는 뉴스거리들은 내 눈과 귀를 어지럽히지만, 당장 내게 중요한 것은 아침 산책을 나서는 일.
결국 세상은 돌고 돌아 내가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뉴스들이 내 일상의 시간들을 좌지우지하는 일들도 생기겠지만, 직접 내가 부딪혀 해결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어쩔 도리도 없는 일들이다.
어제 태양이 뜨겁게 달군 대지는 해가 사라진 밤에도 충분히 식혀지지 못했는지 뜨뜻미지근하고 지난주 폭우는 땅 속에 스며들었다 마치 피부 틈을 뚫고 흘러나오는 땀방울처럼 습한 기운으로 아침 대기를 끈적거리게 만든다. 연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동네를 돌고 있는데, 아파트 단지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니며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는 환경미화원 아저씨(?! 20대 청년의 얼굴 같아 보였다)의 노란 조끼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 그 조끼 속에는 호박 같은 땀방울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마치 시간이라도 맞춘 듯이 우리 아파트와 옆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은 함께 부지런히 길가를 쓸고 계신다. 내일은 박카스라도 몇 병 챙겨 나와야겠다.
매일 아침 지난밤의 기억이 지워지고 새로움으로 채워질 수 있는 건 다 이분들의 덕분인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땀으로 얼룩진 면티가 피부에 달라붙을 때쯤 평소보다 짧았은 산보를 마치고 선풍기 앞에 앉았다. 브런치 글쓰기 화면을 열어놓고 어떤 음악을 올려놓을까 고민하다가 모처럼 현대 클래식 작곡가 앨런 호바네스의 작품을 골랐다. 유튜브로 음악을 재생시키자마자 눈이 감겨오고 잠시 내 마음은 이 번잡한 세상을 벗어난다.
신비롭고 장엄한 산의 능선을 따라 흐르는 명상적인 선율, 앨런 호바네스의 '교향곡 2번'은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앨범 그림 속 산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하다.
호바네스는 자연, 특히 산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작곡가다. 그는 '산'을 "신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을 담은 피라미드와 같은 상징"으로 여겼으며, 평범한 지상의 세계와 영적인 세계가 만나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수많은 작품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며, 그는 산과 가까이 있기 위해 미국 동부에서 활동하다 시애틀로 거처를 옮기기까지 했다. 그의 음악은 아르메니아의 종교 음악, 르네상스 시대의 다성음악, 그리고 그의 후기 작품들은 인도, 일본, 한국 등 아시아의 음악적 요소까지 아우르며 시대를 초월하는 영적인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만 교향곡 2번의 '신비로운 산'이라는 부제는 사실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제안으로 붙여졌다고 한다. 1955년, 스토코프스키는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 취임 연주회를 위해 호바네스에게 새로운 곡을 의뢰했다. 처음 호바네스는 '신비로운 산에게(To a Mysterious Mountain)'라는 짧은 팡파르 곡을 스토코프스키에게 보냈는데, 스토코프스키는 연주회를 위한 좀 더 규모가 큰 작품을 원했다. 이에 호바네스는 3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을 완성하여 보냈는데, 그 작품이 오늘 소개한 교향곡 2번이다.(3악장이라 전체 연주시간이 17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스토코프스키는 호바네스가 보내온 작품에 작품번호가 붙어있지 않자 "사람들은 작품 번호를 좋아한다"며 작품 번호(Opus)를 붙일 것을 권했고, 호바네스는 그동안 자신의 작품 목록을 정리하지 않았다고 하자, 호바네스와 음악적 교류를 계속해왔던 스토코프스키는 그의 이전 작품들을 감안하여 '132번'을 즉석에서 제안했다고 한다.(보통은 작품번호는 곡을 써서 악보가 출판된 시기를 기준으로 매겨진다는 걸 감안하면 호바네스는 꽤 많은 곡을 썼던 모양이다.) 이 곡은 1955년 10월 스토코프스키의 지휘로 휴스턴 심포니에 의해 초연되었고, NBC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교향곡은 총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악장 안단테 콘 모토(Andante con moto)는 찬송가풍의 서정적인 선율로 시작해 첼레스타의 장식적인 음형이 더해져 천상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2악장 이중 푸가(Double Fugue)는 르네상스 시대의 모테트를 연상시키는 느리고 장엄한 주제로 시작한 뒤,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빠르고 격정적인 두 번째 주제가 이어진다. 이 두 주제는 정교한 대위법으로 결합하며 장엄한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낸다. 3악장 안단테 에스프레시보(Andante espressivo)는 조용한 오스티나토(반복 악구)가 거대한 파도처럼 점차 고조되었다가 다시 잦아드는 형태로 전개된다.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차례로 경건한 선율을 노래하며 고요하고 평온하게 끝을 맺는다.
'신비로운 산'은 발표 직후부터 대중과 평단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오늘날까지 호바네스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시카고 트리뷴의 한 비평가는 "거의 40년 앞서 아르보 패르트, 존 태브너 같은 작곡가들의 영적 미니멀리즘을 예견했다"라고 평하며 그 선구적인 가치를 높이 사기도 했지만, 호바네스는 당시 미국의 주류 음악계에서는 큰 인정을 받지 못했다.
호바네스는 1911년 3월 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서머빌에서 태어나 아르메니아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계 미국인 어머니라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호바네스의 아버지는 터키 아다나 출신의 아르메니아인 하루티운 호바네스 차크마크지안(Haroutioun Hovanes Chakmakjian)으로, 터프츠 칼리지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의 어머니 매들린 스콧(Madeleine Scott)은 웰슬리 칼리지를 졸업한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이었는데, 매들린은 남편의 아르메니아 문화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겼고, 이로 인해 호바네스는 1931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앨런 스콧 바네스'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했다.(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년 뒤 그는 친할아버지의 이름을 기려 성을 '호바네스(Hovhaness)'로 바꾸었다.)
그가 다섯 살 때 가족은 서머빌에서 알링턴으로 이사했는데, 이는 당시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차별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호바네스는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다. 4살 때 프란츠 슈베르트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 첫 작품인 칸타타를 작곡할 정도였으며 7살 무렵에는 이미 자신만의 기보법으로 즉흥 연주와 작곡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피아노 레슨을 주선해 주었고, 이는 그의 음악적 여정의 발판이 되었다. 14세에 작곡에 전념하기로 결심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 두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여 학교에서 공연하기도 했다.(이 기록은 그의 회고록에 따른 것이고 당시 그가 쓴 곡들은 남아있지 않다.)
가족들(특히 어머니)은 호바네스가 어린 시절 밤늦게까지 작곡하는 것을 비정상적으로 여겨, 그는 화장실에 숨어 작곡을 하고 악보를 욕조 밑에 숨겨야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호바네스는 터프츠 칼리지에서 레오 리치 루이스에게 잠시 배운 뒤 뉴잉글랜드 음악원(New England Conservatory of Music)에 입학하여 프레더릭 콘버스(Frederick Converse) 밑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1932년에는 음악원의 작곡상인 새뮤얼 엔디콧 상을 수상하며 그 재능을 인정받기도 했다.
1942년, 그는 탱글우드 음악 센터의 장학금을 받아 작곡가 보후슬라프 마르티누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그는 음악가로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당시 미국의 주류 음악계는 레너드 번스타인, 애런 코플런드 등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는데, 이들은 호바네스의 음악을 경멸(!?)했다. 특히 번스타인은 호바네스의 교향곡 1번 '추방'을 듣고 "싸구려 게토 음악(cheap ghetto music)" 또는 "더러운 게토 음악(filthy ghetto music)"이라고 공개적으로 조롱했고 코플런드 또한 번스타인에 동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모든 동시대 작곡가가 그를 비판한 것은 아니어서 존 케이지(John Cage)와 루 해리슨(Lou Harrison) 같은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은 호바네스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며 오히려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특히 루 해리슨은 호바네스의 피아노 협주곡 '루사드작'을 듣고 "우아한 단순함과 확고한 선법적 무결성"을 지녔다며 극찬하는 평론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어떻든 이 사건은 호바네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수백 편에 달하는 초기 서양식 작품들을 파기하고, 아르메니아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며 접한 아르메니아 전통 음악과 동양적 신비주의에 깊이 몰두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의 교향곡 2번은 바로 그 전환점을 지나 그만의 스탸일이 다듬어지고 태어난 곡이다.
우리는 서양음악사의 획을 그은 정말 뛰어난 작곡가와 연주자들만 기억하지만, 사실 음악사에서 그들은 늘 극소수였다. 사실 그 극소수의 천재들이 뛰어난 명작들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후세에 작품과 이름 한 번 제대로 남기지 못했지만, 수많은 대중들에게 음악을 삶의 일상으로 만들어준 수많은 작곡가와 연주자들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호바네스처럼 주류세계로부터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자신만의 독창성으로 음악세계의 경계를 꿋꿋이 넓혀 준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여전히 음악을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 호바네스의 대중적이면서도 독특한 '그리고 신은 거대한 고래를 창조했다'(And God Created Great Whales, Op. 229, No. 1)도 감상해 보자. 실제 고래의 소리를 녹음하여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ANao42ATgcY&list=RDANao42ATgcY&start_radio=1
■ 호바네스의 동양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마림바(Xylophone)와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된 '일본 목판화에 의한 환상곡'(Fantasy on Japanese Woodprints, Op. 211)도 함께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fSTX4nTEN8k&list=RDfSTX4nTEN8k&start_radio=1
■ 호바네스의 음악적 전환점을 만들어 준 작품, 교향곡 1번 '추방'(Symphony No. 1, 'Exile', Op. 17, No. 2)! 과연 당시 미국 주류 음악계의 혹독한 비평을 받을 만한 작품일지 2악장만 먼저 직접 한 번 들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0yj9uiyw2c4&list=RD0yj9uiyw2c4&start_radio=1
■ 번스타인과 코플런드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를 지지했던 작곡가 루 해리슨이 "우아한 단순함과 확고한 선법적 무결성"을 지녔다며 극찬했다는 피아노 협주곡 '루사드작'도 함께 들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EFL7b3GdECU&t=2s
♥ 성공은
- 최종천
어떠한 고역도 시련도 없이
성공한 사람들이 나는 두렵다
특히 그가 지도자가 되려 한다거나
굳이 예를 들자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다면
그의 당선에 반대하리라
사람의 털을 벗겨버린 신의 뜻은
상처를 입으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땅마저도
상처가 아니라면 어디에
사랑을 경작하랴
성공하는 모든 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정의(定義)를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