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매일 찾아 오지만 같은 아침은 하루도 없다.

- 2025년 7월 23일 수요일 -

by 최용수

♡ 알렉산드르 보로딘(Alexander Borodin, 1833~1887)

<오페라『이고르 공』 2막 중 '폴로베츠인의 춤' / 'Polovetsian Dance' from the Opera『Prince Igor』 Act II>


https://www.youtube.com/watch?v=KWJ7R0IcywM

이 곡은 원래 대규모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로의 연주로 익숙한데, '사람의 목소리만큼 훌륭한 악기는 없다'라는 말을 증명하듯 아름다운 소프라노와 테너의 노래가 이 곡을 사랑스러운 아리아로 만들어 버렸다. 원곡이 갖고 있는 신비스럽고 서정적 선율을 잘 살려낸 두 가수에 찬사를 보낸다.


여전히 뜨거운 아침, 오늘은 이국적인 선율의 아름다운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공』 2막 중 '폴로베츠인의 춤' 으로 아침 더위를 식혀보자. 앞서 소프라노와 테너, 그리고 피아노 반주로 매력적인 '폴로베츠인의 춤'을 감상했다면, 장대한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오페라 실황연주 버전으로도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ADJzzBR0qzg&list=RDADJzzBR0qzg&start_radio=1

'이고르 공(Prince Igor)'은 서막이 있는 4막의 러시아 오페라로, 12세기 '폴로브치(Polovtsy)라고 알려진 타타르 족'의 침략을 막아낸 키에프 루스(Kievan Rus, 현재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일대)의 통치자 이고르 스브야토슬라비치(1150~1202) 공(公)의 영웅적 서사를 담고 있다.(Polovtsy는 터키 동부지역의 유랑민족으로 현재는 흑해 북쪽 볼가강 유역에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곡의 작곡자 알렉산더 보로딘은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부분이 흥미로운 이력으로 가득 차 있다. 보로딘은 183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귀족이었던 62세의 아버지 '루카 시모니스 제 게데바니쉬빌리(Gedevanishvili son of Luka Simonis, '루카 시모니스의 아들 게데바니쉬빌리'라는 뜻)'와 25세의 유럽계 어머니 '예브도키야 콘스탄티노브나 안토노바(Evdokia Konstantinovna Antonova)'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이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그를 농노인 '포르피리 이오노비치 보로딘(Porfiry Ionovich Borodin)'의 아들로 입적시키고, 그의 어머니가 양육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그의 '보로딘'이란 성은 친아버지의 성이 아니라 농노였던 양아버지의 성이다.

사생아라는 멍에는 있었지만, 귀족이었던 아버지의 지원으로 보로딘은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으며 9살 때부터 피아노를 포함한 다양한 악기들을 배우며 일찍부터 폴카 형식의 곡이나 풀루트 연주곡들을 작곡하는 등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그런데 정작 대학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의과대학을 선택해 화학과 의학을 전공하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온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의무외과학교(Medico-Surgical Academy)에서 평생 화학과 교수로 활동했다.


그런데,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보로딘은 1862년 러시아 5인조의 리더격이었던 밀리 발라키레프(Mily Balakirev, 1837~1910)를 만나 작곡을 배우면서 취미생활로 음악 활동을 재게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인 1863년에는 피아니스트 예카테리나 프로토포포바(Ekaterina Protopopova)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다. 당시 피아니스트였던 예카테리나는 폐결핵으로 하이델베르크에서 요양 중이었던 상태였으나 음악을 통해 사랑을 나눈 두 사람에게 그녀의 병은 문제되지 않았다.(그러나 결혼 후에도 예카테리나의 건강은 계속 좋지 못했다.)

결혼 후 보로딘은 그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인지 예카테리나의 병 때문인지 그녀 이외에 다른 여자들과 교제도 했지만, 예카테리나에 대한 사랑과 음악에 대한 애정도 커서 그녀와 음악적으로 많은 교감을 나누었고, 그가 작곡한 사랑스러운 현악 4중주곡(2번 D major 중 특히 3악장 '녹턴(Nocturn)') 작곡해 선물하기도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RKsCxvT8e8Y&list=RDRKsCxvT8e8Y&start_radio=1)


그는 음악가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6세에 비로소 그의 교향곡 1번을 초연할 기회를 갖게되었는데, 그런데 이 곡의 발표로 그는 의외의 호평과 함께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교향곡 2번과 오페라 '이고르 공'의 작곡에 착수하게 된다. 하지만, 보로딘은 결코 그의 본업인 화학과 교수로서의 역할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화학 연구와 강의 뿐만 아니라 여성 의학 교육기관 설립과 같은 사회 활동에도 헌신적이었던 보로딘은 이때문에 <이고르 공>의 작곡에 무려 18년이란 시간이 걸렸음에도 결국에는 완성하지 못했다.

오페라 <이고르 공>은 당시 러시아 5인조의 멤버였던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알렉산더 글라주노프가 완성하여 보로딘 사후 3년 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했다.

사실 보로딘은 음악가로서보다 화학자로서 더 주목을 받았는데 '알돌 반응(Aldol Reaction, 작은 알데하이드의 자가 축합 반응)과 '보로딘-훈스디커 반응(Borodin-Hunsdiecker Reaction, 은염을 이용해 유기 화합물을 합성하는 방법)'등은 현대 화학에서도 그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그의 연구성과들이다.

보로딘은 1887년, 그가 재직 중이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의무외과학교(Medico-Surgical Academy)에서 열린 무도회 중 갑작스럽게 사망했는데, 사인은 대동맥류 파열(rupture of aortic aneurism) 또는 심장마비로 알려졌다.(국내에 보로딘을 소개하는 일부 기록들은 '콜레라'로 잘못 설명하고있으나 러시아에 남겨진 기록들을 찾아보니 화학 연구로 인한 과로, 그리고 비록 취미생활로 시작한 음악이었지만 러시아 5인조와의 교류와 작곡에 쏟은 열정, 그리고 아내에 대한 헌신적인 병구완 등 보로딘을 죽음으로 이끈 원인은 매사 헌신적인 그의 삶에 대한 태도였다.)




보로딘이 <이고르 공>을 작곡하게 된 계기는 민족주의 비평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의 영향이 컸다. 1869년, 스타소프는 보로딘에게 "광활한 서사, 민족주의, 다양한 인물, 열정, 드라마, 그리고 동양적 요소" 등 그의 재능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주제라며 <이고리 원정기>(러시아의 대표적인 민족 서사시로 평가받는 고전으로 러시아의 역사와 정체성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다)를 오페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마침 오페라 작곡을 구상하던 보로딘은 이 제안에 그만 매료되어 원전 연구에 몰두하며 작곡을 시작했다.

사실 이 시기는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로 영토를 확장하던 때와 맞물려 있다. 오페라가 작곡되기 직전, 러시아는 튀르크계 국가인 부하라 칸국을 정복했는데, 오페라 <이고르 공>은 러시아 제국 형성기의 서사를 통해 당시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정복을 정당화하고, 튀르크계 민족을 '문명화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함으로써 제국주의적 명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작품의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오리엔탈리즘 ㅠㅠ)

오페라 <이고르 공>은 189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초연 당시 민족주의에 열광한 젊은 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러시아어 대본과 방대한 무대 규모 때문에 해외 무대에서는 자주 상연되지 못했다. 이 작품이 다른 나라들에서는 상연되기 힘들었던 또다른 이유는 보로딘의 사후 그의 동료들이 작품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구성이 산만해지면서 극적 통일감과 함께 무대의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비판때문이었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하렘의 소녀, 교회 종소리, 노골적인 민족주의가 뒤섞인 '보르시(borscht,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즐겨먹는 비트가 들어간 빨간 수프형태의 국민음식)'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작품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201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은 기존의 순서를 바꾸고 보로딘이 작곡했지만 이전 판본에서는 빠졌던 부분을 복원한 새로운 버전으로 재창조해 무대에 올렸다. 특히 이 공연은 그동안 이 오폐라가 비판받아 온 민족주의 서사를 넘어, 패배 후 깊은 우울에 빠진 이고르 공의 내면을 파고드는 '심리 드라마'로 작품을 재해석하여 "계시적이고, 가슴을 울리며, 본능적으로 연극적"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오페라『이고르 공』을 현대적 정서에 맞게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다. 비로소 이 작품이 단순한 애국주의 찬가 이상의 예술적 의미로 재평가받게 된 것이다.


201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 의해 재탄생한 <이고르 공>



알렉산드르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공>은 서막과 4개의 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185년 키예프 루스의 이고르 공이 폴로베츠인을 상대로 벌인 원정 실패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각 막별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서막: 푸티블의 성당 광장

- 이고르 공은 아들 블라디미르와 함께 폴로베츠인에 맞서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원정을 준비한다. 갑작스러운 일식(日蝕)이 일어나자 그의 아내 야로슬라브나와 백성들은 불길한 징조라며 출정을 만류한다. 하지만 이고르는 명예를 지켜야 한다며 아내를 그녀의 오빠인 갈리츠키 공에게 맡기고 원정길에 오른다.


1막: 푸티블 궁전

1장 (갈리츠키의 저택): 이고르를 대신해 푸티블을 다스리게 된 갈리츠키는 폭정을 일삼으며 왕좌를 찬탈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그는 병사들을 선동하고 젊은 여인을 납치하는 등 악행까지 저지른다.

2장 (야로슬라브나의 궁전): 남편의 소식이 없어 걱정하던 야로슬라브나에게 갈리츠키에게 약탈당한 여성들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이때 이고르의 군대가 폴로베츠인에게 대패했으며, 이고르와 아들 블라디미르가 포로로 잡혔다는 비극적인 소식이 궁으로 전해진다. 설상가상으로 폴로베츠 족의 군대가 푸티블을 향해 공격해오고 있다는 전령이 도착한다.


2막: 폴로베츠인의 진영

이고르와 그의 아들 블라디미르는 폴로베츠의 칸(Khan)인 콘차크의 포로가 되었다. 블라디미르는 콘차크의 딸인 콘차코브나와 사랑에 빠진다. 이고르는 패배의 치욕에 괴로워하지만, 콘차크는 그를 포로가 아닌 귀한 손님으로 대우하게된다. 콘차크는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 자유를 주겠다고 제안하지만, 이고르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거절한다. 이에 콘차크는 이고르를 위로하기 위해 화려한 '폴로베츠인의 춤'을 선보인다.


3막: 폴로베츠인의 진영

폴로베츠 군대가 푸티블을 함락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고르는 탈출을 결심한다. 기독교도인 폴로베츠인 오브루르의 도움으로 이고르는 탈출에 성공하지만, 아들 블라디미르는 사랑하는 콘차코브나 곁에 남기로 한다. 콘차크는 이고르의 용맹함을 존중하여 그를 추격하지 않고, 대신 블라디미르와 자기 딸의 결혼을 허락한다.


4막: 폐허가 된 푸티블

남편과 아들을 그리워하며 슬픔에 잠겨 있던 야로슬라브나는 멀리서 돌아오는 두 기사를 발견하고, 그중 한 명이 이고르임을 확인하고 기쁨의 재회를 하게된다. 이고르의 귀환 소식에 백성들은 종을 울리며 환호하고, 이고르는 다시 군대를 모아 적에게 맞설 것을 맹세하며 막을 내린다.


■ '플로베츠인의 춤'은 여러 버전으로 편곡되었는데, 아침 분위기에 어울리는 플루트 버전도 감상해보고,

https://www.youtube.com/watch?v=-iWyrUKM99s


■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합창이 없는 오케스트라 연주버전으로도 감상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sAMIimzqvW4&list=RDsAMIimzqvW4&start_radio=1



♡ 히말라야에서

- 백무산


죄 없는 자들일수록 더 많이 참회하고

적게 먹는 자들이 더 많이 감사하고

타락하지 않은 자들이 더 많이 뉘우치고

힘들여 사는 자들일수록 고행의 순례길을 떠나고

적게 살생한 자들이 더 많이 속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러한 감사와 참회가 낡아빠진 문화라는 사실 때문에

그리하여 이곳에 감사와 참회 따위가 입에 오르는 일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래전에 그 낡은 체제를 혁명하고

또 혁명에 혁명을 거듭했기 때문에

더 혁명할 것이 없을 즈음에

마침내

어떤 진리에 이르렀기 때문에

많이 누리고 가질수록 죄가 줄어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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