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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Dec 06. 2017

First Stranger in HK

처음 홍콩에 다녀오다


한 번도 직접 말 걸어본 적은 없지만, 늘 같은 반에서 수업을 함께 들었던 친구처럼. 안다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모른다기엔 너무 익숙한 홍콩에 들어섰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까지 내게 홍콩은 여전히 왕가위의 그림자가 숨쉬고 있는 중경삼림 속의 엘리베이터와 낡은 고층아파트 사이의 골목이 전부였고, 절대로 모두가 사진을 찍어오는 빅토리아 피크만은 피하리라 생각했었던가. 해외를 다녀오는 기분을 만끽하기에 홍콩은 여전히 심리적으로 가깝고, 2%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다. 


원래 실물을 만나는 것에는 힘이 있다. 누군가의 렌즈로 여과되지 않은 이 도시의 민낯을 만날 수 있으려나 조금 설렌다. 결국 무엇을 보고 다닐것인가. 혹은 나는 이 도시의 어떤 모습에 눈길이 끌리는가. 그 끝에는 어떤 기억이 남게 될까. 실은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것도, 이렇게 순간을 기록하는 것도 익숙한 방식은 아니다. 그저 보고, 걷고 그리고 그 날 밤 한 잔 하면서 다시 떠오르는 장면을 추억하고. 같이 일하는 누군가가 내게 말했었다. 그래도 처음이니 낯선 배경 속에서 영감을 받아오라고 했던가. 





2층버스를 처음 타 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묘기에 가까운 2층버스 탑승은 처음인 것이 맞았다. 일단, 영국에서는 이렇게 고개를 꺽어가며 올려다 볼만한 고층 건물을 시내에서 발견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홍콩의 트레이드 마크같은 붉은 네온간판들은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버스의 머리 위를 지난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쉴새없이 간판들을 지나치자면 혼자 움찔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건물의 컬러. 홍콩의 옛 거리 구룡반도의 뒷거리를 지날때면 온통 살색같은 오묘한 빛깔의 건물들과 맞딱드리게 되고 만다. 오래된 도시의 빛바랜 색감은 촌스럽지만 정겹고, 낯설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첫 눈에 만난 홍콩의 거리, 그 오래 된 색감에 온통 둘러쌓였다. 





홍콩의 먹거리를 찍어 온 사진은 꽤 여러장 있었지만, 이보다 더 강렬한 사진은 없었다. 먹거리를 대하는 이들의 놀랍도록 개방적인 자세를 생각하면, 카페인 줄 알고 들어간 집 옆 테이블에서 볶음면을 게걸스럽게 드시는 아줌마 정도는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온통 거리를 붉게 물들이는 핏빛 고기의 거리. 상해의 어느 마트에서 머리채 튀겨진 치킨을 발견했을 때, 혹은 머리에 눈까지 붙어있는 채로 거꾸로 튀겨놓은 반건조 오리와 눈을 마주쳤을 때와 비슷한 심정인 걸까. 지금 이 심경을 표현하기엔 딱히 어울리는 말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원색적인 장면이 길거리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고는 36년 동안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여기가 아마도 지금까지 이 도시가 가장 적나라하게 비춰진다 싶었던 장소이지 않았을까.





여행자의 하루는 길다 싶어도 여정은 짧게 지나가고 만다. 여전히 삶의 단상들은 생각보다 복합적이고, 그 이유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내 눈에만 이렇게 초면인 세상이 이들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일상이겠지. 블로그에서 유명하다는 곳도, 그저 지나던 길의 뒷골목도 다 열심히 걸어다녔건만 지난 몇 밤을 지나며 구경한 홍콩이란 이런 곳이었다. 아직은 나와는 조금 다른 그림, 이들에게 익숙한 것이 어색한 사이. 친해지려면 몇 번은 더 들러야 하지 않을까. 어딘가부터 흘러 나오는 홍콩다운 향신료 내음이 섞인 공기마저 푸근하게 느껴지는 날이 올 때까지. 여전히 낯선 홍콩을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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