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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Dec 19. 2017

Table Hours

그 도시, 그 카페에서.


#1. All New Helsinki


누군가의 매일의 그림 속에 불쑥 들어가 관찰자의 위치로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관찰의 대상에게는 다소 폭력적인 상황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최대한 예의있게. 배경처럼 그 풍경속에서 함께하고 싶다. 원래 이 마을에 돌아다니는 할 일 없는 동양인 처녀마냥.


최근 그토록 간절했던 것은 이런 풍경이었을까. 예전 기억을 되살려 코펜하겐을 떠올려보지만 어림 없다. 완전히 다른 그림이네. 더 모던하고 군더더기 없어보이는 건물과 길가의 느낌 어디에서도 편견처럼 굳어진 '마리메꼬'스러룸은 찾을 길이 없다. 거리의 풍경이 나직하고 안정적이고 큼직하고 멋스럽다. 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느낌이 안정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냥 목적없이 이 거리를 걷기만해도 좋겠다. 걷는 것만으로 모든 복잡한 생각들이 하나하나 정리될 것만 같은 기분. 어딘가 자작나무 향기가 머릿속을 타고 들어오는 것만 같은 착각. 원래 여행 첫날은 이리 과한가보다. 감정과 감동 그리고 흥분같은 이 모든 것이. 새롭다는 것은 이리도 가슴뛰는 기분이었나 보다. 처음 맞는 핀란드의 바람이 불어온다.


Helsinki. Robert's Coffee


영하 10도를 운운할 정도로 매섭던, 딱 어제 오늘 서울의 날씨 같았다. 3월의 헬싱키는. 공항버스는 불과 30분도 안 되어 도시 한 복판 서울역 광장 같은 곳에 수많은 외국인들과 함께 우리를 쏟아 놓았고, 바람에 달린 칼날들이 코와 귀를 온통 빨갛게 물들일 때까지 헤메는 수밖에 없었다. 볼빨간 한국 애들 둘이 처음 떨어진 풍경 속에서 여전히 숙소로 가는 방향이 긴가민가 하던 순간, 무조건 카페의 문을 밀었다. 일단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라도 한 잔의 커피와 덤으로 딸려오는 잠깐의 온기는 절실했기에. 낯선 곳일수록 온 몸의 모든 감각이 예민해 지는 것인지, 아니면 익숙한 커피향기에 안심이 되어 더 그 냄새가 도드라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너그럽게 들어 있던 우유 폼 속 진한 커피샷은 이 곳에 내리던 그 순간 바람에 날려간 우리의 방향감각과 판단력을 천천히 돌려주었다.  5분쯤은 앉아 있었을까. 작은 커피잔을 잡아 두 손을 데우면서 바라본 이 날의 하늘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문을 다시 열자마자 들이닥친 칼바람에 바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지만. 




#2. Spectacular London


생각보다 오랜만이다. 거의 6년만에 돌아온 친정집이랄까. 손에 구글맵을 들고도 동서남북조차 가늠이 안되던 헬싱키와는 하늘과 땅차이. 런던과 더블린에서 1년 남짓 보낸 20대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고향집같은 느낌을 받게 해줄 줄은 몰랐다. 삼년이면 동네 하나가 통채로 새로 탈바꿈하고, 조용하던 주택건물을 다 뜯어내고 가게들이 늘어서 버린 연남동이 사무실이라 그런가. 십년 전의 자신이 걸었던 골목과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발견할 때면, 문득 감동이었다. 1800년대의 셜록이 걸었다던 Baker's Street을 오늘도 걸을 수 있고, 앞으로도 당분간 이 거리의 풍경만큼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마음 속에 위안이 된다. 십년이 흘러도 여전히 런던 골목 사이사이에 묻어 있는 지난 20대를 찾아 다시 올 수 있을 테니까. 


변함없는 도시의 그림 속 공기는 제법 달라져 있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분위기부터 거리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말들과 어깨를 부딪쳐도 무례하게 지나가는 이방 사람들까지. 사람들이 달라지니, 이들의 먹는 것과 입는 것 그리고 전형적으로 영국적이라고 생각해 온 많은 컨텐츠들은 쉴새없이 바뀌고 달라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런던 어디에서 고전적인 영국을 찾을 수 있을까. 버킹엄 궁전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었다. 거리의 모든 고전적인 창가에는 수많은 브랜드의 이름으로 매일 달라지는 사람들의 컬러와 향기가 쏟아져 내린다. 여전히 이 곳은 런던이고, 아직까지는 새로운 변화의 중심이니까. 


London. The Sourced Market


런던의 봄은 4월부터라고 생각한다. 3월엔 완전 겨울바람이 불기 때문에. 이 시점에 목도리 없이 거리를 다니는 것은 꽤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나온 게 문제였다. 수년 전 바로 여기 영국에서 목감기가 번져 신종플루까지 의심받았던 기억은 아예 내다버린 모양이다. 마거릿 호웰의 라이프스타일 숍을 찾느라 정신없이 걸었건만, 이대로 한 블록만 더 걸었다간 옴팡 목감기 각이고. 3박4일간의 전시회는 내일부터 시작이건만, 무슨 정신으로 시내 한 복판까지 나와버린 걸까. 춥고 배고프고 정신 없을 때, The Sourced Market이 불쑥 눈 앞에 나타났다. 


이 공간에는 런던에서 유명 바리스타의 체인인 커피숍도, 맛있어 보이는 베이커리도,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라자냐 등의 핫 디쉬까지 각각 유명한 팝업샵들이 큰 카페 안에 함께 열려 있었다. 그 주위에는 티나 과자 등 딱 보기에도 몸에 좋아보이는 유기농 먹거리들도 같이 팔고 있는데, 좀처럼 일반 마트에서 볼 법한 제품들은 아니다. 입점된 제품들의 셀렉을 보자면 대체로 취향은 런던 속 포틀랜드 같기도 하고. 뜨거운 커피 두 잔에 제일 맛나 보이는 라자냐와 팝오버를 매장별로 하나씩 시켜 두고 길가가 내다 보이는 커다란 창가에 앉았다. 멍하니 거리에 시선을 두고 커피를 한 모금 넘긴다. 엄청 진한 커피에 눈이 벌컥 뜨인다. 원두의 맛과 향도 바리스타에게 설명 들은 것처럼 자기 주장만큼은 확실하다. 원래 손 맛이란 만드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던가. 어느 쪽이든 취향은 분명한 것이 좋다. 




#3. Here Berlin. 


정말 뜻밖이다. 심지어 처음 온 건데. 현실적인 여건을 떠나 가정하자면, 그저 얼마 간은 머물러도 좋겠다 싶었던 여기는 베를린이다. 이 곳에 도착하기까지 삼십 몇 년 간을 지내면서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얼마나 많은 편견들을 학습해 왔는지 모른다. 어릴 적 유럽의 환상을 처음 심어 주었던 이원복 교수님의 '먼나라 이웃나라'부터 제법 자랐을 적 뉴스를 통해 구경했던 무너진 베를린 장벽까지. 세계사 시간의 사건들과 이념과 철학과 또... 형이상학적인 것들로만 가득해 그저 어렵게만 보이던 독일인의 사랑까지. 정작 실체를 보기까지 참 오랜 과정을 겪었다 싶기도 하다. 그래서 첫 날은 더 당황했었다. 머릿 속으로 그려왔던 어렵고 장엄하고 사색적일 것만 같은 독일인은 간 데 없고, 세상에서 제일 솔직한 베를리너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는 식처럼, 어디에 가면 그 현지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들의 룰에 맞추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자신의 모습이 처음으로 어색한 장소를 만났다. 무뚝뚝하고 큰 배려없음이 더 편안한 공기를 만들어 내는 것도 신기해서. 누구든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베를린의 공기는 시선에 대한 의식을 벗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서울보다도 편안하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조금도 무엇이든 강요하지 않고, 어설프게 배려하지 않고. 어쩐지 우리의 현재성에 가장 닿아 있는 도시를 발견한다면, 여기라고 주저없이 답할 생각이다. 아마도 첫눈에 반했나 보다. 이렇게 불친절한 그들과 함께임에도 불구하고.


Berlin. HALLMANN UND KLEE.


두 명의 친구가 이름을 걸고 함께 만들어 운영하는 탁월한 브런치 카페. 이런 식이라면 인시즌은 아마도 '현정과 소영'으로 지었어야 할 것이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된 베를린 블로그에서 건져 낸 월척같은 곳이다. 물론 가는 길이 너무 험난했지만. 일단 도심에서 전철을 두 번 갈아타야 했다. 그리고도 족히 15분 이상을 걸었을 거다. 브런치 카페를 찾아가는 길에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있을 거란 기대는 애초에 접어두는 편이 좋았을 것을. 이 동네엔 정말 구경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역과 현지인들의 조금은 가난해 보이는 주거지구를 한참 지나 거리의 모퉁이 끝에 도착하니 그렇게 조용히 열려 있었다. 질질 다리를 끌고 간신히 들어갔는데, 모두 저녁 예약석이라며 그대로 쫓겨날 판. 1시간 안에 일어나기로 약속을 하고서야 파이 한 쪽 커피 두잔을 시킬 수 있었다.  


블로그에서 구경했던 엄청 근사한 브런치 메뉴는 조식 한정이었음이 뒤늦게 밝혀진 비극은 뒤로 하고, 다소 소박해 보이는 애플 크럼블 파이에 포크를 올렸다. 이게 뭐지? 한 입 더. 아씨. 너무 맛있다. 이게 뭐지...

예쁜사람에게 예쁘다고 말해주지만 구체적인 이유를 들기 어려운 것처럼, 이 애플크럼블 파이는 그냥 이유를 모르겠고, 너무 맛있었다. 여기에 다다르기까지 겪은 모든 과정이 이 순간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세 보이는 두 언니들은 도대체 얘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온거야라는 표정이었지만, 이들이 우리에게 내어준 파이는 완벽했다. 독일식 진한 커피는 적절했고, 우리의 이 날 오후 4:30은 더할 나위 없었다. 다시 베를린에 왜 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다음에는 반드시 이 곳의 조식을 먹기 위해서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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