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코끝을 스치는 따뜻한 갈색 향기
벌써 따뜻한 한 잔 없이는 여유로운 산책이 어려운 날들이 다가온다. 찬바람에 움츠리고, 외투를 여미지 않고 두 손 자유로이 걸을 수 있는 시한부 계절의 끝에서 코 끝에서 먼저 어리는 향기. 계절이 바뀌기 전에 감각적으로 찾게 되는 향기로운 기억들.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는데. 카푸치노 위에 거의 들이붓다시피 뿌려진 계피가루가 유독 향기롭게 따뜻하게 온 몸에 감돈다.
계절을 따라, 흘러가는 시간의 기운을 따라 분명히 몸으로 기억하는 맛이 있다. 가을도 중반에 접어들면 목 너머 저편에서 따스한 한 잔이 간절해지고, 그 한 잔의 끝엔 늘 시나몬 향기가 나곤 한다. 버석이는 찬 바람을 헤치고 도착한 카페에서 맡는 달콤한 갈색 향기만큼 이 계절에 어울리는 향기가 있을까. 큰 솥에 두 손 가득 시나몬 스틱을 넣고 농원에서 굴러다니는 작은 사과들을 가득 받아다 진하게 끓여야 하는 계절이 왔다.
Apple Cider
애플 시더
애플 시더(Apple Cider)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음료는 범위가 넓다. 제일 널리 쓰이는 천연 사과 발효 식초와 술 역시 동일한 이름을 쓰기 때문에 정작 이렇게 사과를 넣고 끓여 만드는 음료(non alcohol)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맑고 청량한 사과주스와 명확히 대비되는 애플 시더는 본격적인 월동 음료답게 몸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각종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다. 물론 시작은 양동이 하나 가득하게 손질한 흠집 사과부터. 여기에 오렌지 1,2개는 넣어도 혹은 넣지 않아도 좋다. 그때부터 들어가는 향신료 레시피엔 큰 대중이 없다. 좋아하는 만큼 시나몬 스틱을 잔뜩 넣고, 정향(클로브)과 카다멈(소두구)을 적당히 넣고. 넛맥과 통후추를 넣고 취향에 따라 스타 아나이스까지 넣어도 좋다. 그렇게 달큼하고 뜨끈한 맛을 내주는 향신료들이 사과와 함께 밤새 슬로우 쿠커에서 끓는다.
이렇게 밤을 지새워 끓여낸 뚜껑을 열면 과일들은 흐물흐물해서 과육이 풀어질 지경이다. 향신료와 과육을 건져 낸 원액은 병에 담아 냉장 보관하면서 따끈하게 데워 마셔도, 혹은 차게 마셔도 좋다. 적절한 위스키와 섞이면 칵테일로도 사랑받는 편.
Ingredient
사과 5~6개, 오렌지 1개
시나몬 스틱 5~6개
통후추 1 tsp, 정향 10알 이상, 카다멈 10알, 넛맥(홀) 1개 또는 가루 1 tsp, 스타아나이스 2개
(스파이스는 본인의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 가능하다)
흑설탕 또는 유기농 원당 1/4 컵(50g)
물 5컵 (1L)
Method
1. 껍질까지 깨끗이 씻은 사과와 오렌지는 4 등분해서 슬로우 쿠커에 넣는다.
2. 분량의 물과 설탕, 준비한 스파이스를 전부 같이 넣는다.
3. 밤새 또는 한나절(4~6시간) 슬로우쿠커에서 끓여준다.
4. 다 끓으면 건더기를 건져 액만 소독한 유리병에 담아 냉장 보관하며 1주일간 즐긴다.
유독 애플파이란 알 수 없는 맛이었다. 동네 빵집의 사과파이와 후렌치 파이 애플 맛과 영화에서 보는 애플파이 모두 비주얼과 맛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을까.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애플파이가 맛있는 파이인지, 내가 먹은 것이 애플파이가 맞는지. 심지어 튀김같이 나오는 맥도날드의 애플파이를 만났을 땐,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나마 한 가지 정도 기준이 있다면 계피가루가 섞여 있는가 아닌가 정도가 아니었을까. 다행히도 계피가루가 좀 섞이면 왠지 모르게 맛도 부드럽게 느껴지고 좀 더 고급스러운 파이를 먹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파이라고는 '후렌치 파이'밖에 모르던 시절, 미국에서 돌아오신 지 얼마 안 된 엄마 친구 집이었던 것도 같다.
뜨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애플파이가 거의 세숫대야 크기로 테이블에 올라왔다. 그때만 해도 뚜껑이 덮인 파이를 처음 봤으니까, 그 안이 얼마나 뜨거운지 가늠할 길이 없었고. 엄마가 말릴 새도 없이 숟가락으로 욕심껏 크게 한 숟가락을 떠 넣자마자, 입천장이 까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맺힐 정도로 입안은 뜨겁게 아려오고 혓바닥은 마비되는 것 같은 와중에도, 시큼하고 달콤한 사과 덩어리가 큼직하게 씹히고 진한 계피 향이 온 콧 속을 파고들었다. 온 입안에 들러붙어 뱉을 수도 없었던 그 미국식 애플파이의 농도 짙은 맛과 향은 그 온도만큼이나 뜨겁고 진하게 기억 속을 파고들었다.
Apple Gallete
애플 갈레트
사과가 듬뿍 들어간 애플파이를 직접 구워보는 것은 오랜 로망 중 하나였다. 갈레트는 프랑스 농부들이 과일을 쉽게 먹기 좋게 만든 투박한 농원식 파이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타르트로 대표되는 프랑스식 파이가 바탕이 되는 반죽을 만들어 한 번 구워내고, 그 위에 필링을 채워 다시 두 번 구워 완성하는 것이라면, 갈레트는 바탕이 되는 반죽 위에 바로 필링을 올리고 가상사리를 투박하게 접어 한 번 구워내면 끝이다. 갓 구워 따뜻하게 먹어도, 하루 식혀 차갑게 먹어도 맛이 좋다.
Ingredient (2개 분)
갈레트 반죽: 다진 호두 25g, 박력분 80g, 버터 60g, 찬물 25ml, 소금 약간
크럼블 4 Tbsp: 버터 25g, 설탕 25g, 박력분 25g
사과잼 2 Tbsp
시나몬 슈거 2 Tbsp (설탕과 시나몬 가루를 50:1 비율로 섞어 만들어도 된다)
Method
갈레트 반죽 만들기
1. 물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볼에 넣고 버터가 콩알 크기가 될 때까지 스크래퍼로 다진다.
2. 1에 찬물을 넣고 포크로 날가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섞는다.
3.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어 냉장고에서 30분 이상 휴지시킨다.
크럼블 만들기
1 분량의 재료를 모두 섞고 손으로 문질러 작은 콩알 모양으로 뭉친다.
2 굽기 전까지 냉장 보관한다. 남으면 냉동으로 보관한다.
갈레트 만들기
1. 사과는 가운데를 잘라 씨 부분을 빼고 얇게 슬라이스 한다.
2. 준비한 갈레트 반죽을 2 등분한 다음 동그랗게 모양을 만든다.
3. 바닥에 밀가루를 조금 뿌리고 반죽을 올린다.
4. 지름 크기가 25cm가 되게 밀대로 밀어준다.
5. 4에 반죽 가운데 사과잼을 1 tbsp 바른다.
6. 그 위에 사과, 시나몬 슈거를 차례로 올린다.
7. 준비한 필링을 모두 넣으면 사진과 같이 반죽 가장자리를 안쪽으로 접어준다.
8. 마지막으로 가운데 크럼블을 올리고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25분 구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