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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Jan 16. 2019

way of living, in season

지금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하여

낯선 나라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들어선 식당에서 저녁을 먹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식당은 메뉴판이 없는 곳이었다. 셰프는 우리를 위해 레스토랑 안뜰에서 지금 막 피어 오른 재료들을 가지고 그 날의 요리를 차례차례 테이블에 내주었다. 예쁜 정원인 줄 알았던 곳에 빨갛게 익은 채로 달려있던 토마토 하나가 샐러드 접시 위에 그대로 올라오다니. 입 안에서 터지는 제철 토마토의 향과 충분한 단맛이 설탕 없이도 샐러드의 달콤함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코스 별로 이어지는 재료 하나하나가 전부 지금 이 계절을 말해주는 요리였다. 이 놀라운 테이블을 만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들였던 것은 아니었다. 긴 여행 끝에 지쳐있던 우리에게 우연히 만난 선물 같은 테이블처럼, 인시즌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어떤 일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오늘과 내일의 몫이 눈 앞에 있을 뿐이다. 매일의 삶은 그렇게 작은 점과 같아서, 기억날 만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금 하고 있는 오늘 하루의 작업의 무게가 인생을 결정지을 만큼 무겁지도 못하다. 오늘의 어떤 일들이 어떻게 다음으로 연결되는지 그 교차점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대체로 수년이 지난 후에 돌아보면서 그 날의 일들이 후에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그 점들의 궤적을 추측해 볼 뿐이다. 그렇고 그런 일들을 날마다 감당하면서 지나는 작은 하루들은 부지불식간에 방향성을 따라 부드러운 선을 이루고, 면을 만들며 시간이 쌓이다 보면 그 안에 깊이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처음엔 몰랐다. 인시즌이라는 이름이 삶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문자적인 의미로 제철의 과일들을 활용한다는 뜻에서 발견한 이름이었다. 자연의 질서에 따라 순응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 선상에서 모든 일에는 적합한 때가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스스로의 타이밍은 자신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시즌 역시 지금이 창업에 적합한 때인지를 다 따져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2011년 11월 15일, 법인 설립등기를 마치던 그 날 역시 우리가 밟아야 하는 하루라는 작은 점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의 작은 점은 지금껏 7년째에 들어서는 우리의 일의 첫 시작점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유독 연말연시가 되면 자신의 삶의 목표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주변과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하고, 삶의 목적을 다시금 찾으려 애써 보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행복은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시작된다.

우리의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의 절대 다수는 일하는 시간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시간의 행복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기로 약속했다. 작은 업체의 대표는 근로기준법에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약속은 하루에 12시간을 넘게 일하지는 말자는 약속인 셈이다. 매일의 파편적인 작업 자체가 매 순간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우리의 일이 행복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이 일이 매일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제품만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회사지만, 처음 일을 시작한 그 날부터 바로 오늘까지 우리의 일은 매일 달라지고 보이지 않게 성장해 왔다. 매일 같은 자리에 점을 찍고 있는 것만 같았는데, 지나 보니 아주 조금씩 선을 그리고 있었다.


일을 시작하던 무렵, 지도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었다. 사업에 있어서 물리적인 목표는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니까, 그걸 바라보고 갈 수는 없다고. 다만, 어떻게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이 말이 가슴에 와 닿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실제로 우리가 시작점에서 꿈꾸었던 많은 목표들은 이미 경험했거나, 이루었거나 지나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막상 꿈꾸었던 막연한 목표들을 현실에서 마주하면, 얼마나 오해가 깊었는지 절감하게 되는 것도 현실이다. 일례로 인시즌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열고 싶다는 소박했던 목표는 이미 연희동에서의 2년여 카페 생활을 통해 지나간 일이 되었다. 마냥 꿈꾸던 시절엔 카페를 경영하면서 떠안게 되는 건물주와의 갈등 같은 것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겪어보면서 어른이 되는 것처럼, 사업 역시 경험을 쌓아가면서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새해가 다시 시작되고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설레는 것은 올 해에 새로 시작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주변에서 받아온 질문 중에 제일 대답하기 어려운 것은 "무슨 일을 주로 하세요?" 같은 것이다. 매번 그때마다 하는 일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 마디로 답해줄 수가 없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도 하고, 그 제품의 사진을 찍고, 설명을 쓰다가 패키지를 디자인하고. 이렇게 직접 작업해 온 콘텐츠를 모아 책을 출간하는 것은 올해 새로 벌어질 일이다. 4번을 고쳐 쓰고 3년 만에 드디어 완고가 넘어갔다. 구정이 다가오면, 명절 선물세트도 만들어야 하고 철이 지나면 계절에 따라 클래스도 열어야 한다. 심심하면 주변의 솜씨 좋은 언니들과 함께 콜라보 작업도 하고, 외부 사진 작업도 기다리고 있다. 짬 나는 대로 해외 카페 투어도 다녀와야 하고, 전시회도 다녀와야 한다. 마음먹는 대로 너무 바쁘고, 마음먹기 따라 정말 행복하다. 지금에 맞춰 사는 것, 그렇게 팔딱거리는 오늘을 사는 것은 조금 버겁고 많이 기쁜 일이다.


그렇게 매일 찍어온 우리의 점들이 지금 인시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길이 되어 왔다는 것을 

칠 년이 다 되어서야 겨우 눈치채기 시작했다. 너무 성급히 평생을 말하기 전에, 다시 설레는 내일의 하루를 꿈꾼다. 올 해에도 모두에게, 해피뉴이어. 당신에게도 내일이 행복한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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