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 young in season Apr 29. 2019

연남동은 공사 중

Under construction, but crowded 


7년 전 처음 찾아왔던 연남동은 신기할 만큼 조용한 동네였다.



서울에서도 가장 번화하다는 홍대입구역에서 불과 걸어서 10분 남짓이면 이렇게 고요한 마을이 등장할 줄이야. 당시에 유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여기서 수십 년을 살아온 동네 사람들의 평범한 흔적만 가득했다. 심지어 오랫동안 거주해오신 분들은 주로 노인정에 모여 계셨다. 낮에는 못쓰게 된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동네 길가에 버려진 폐지와 박스를 경쟁하듯 주워가시는 어르신들 덕에 길가는 깨끗한 편이었다. 대체로 일찍 잠자리에 드시다 보니 저녁이 되면 골목 사이엔 불빛도 없이 온통 캄캄했다. 옛날 동네답게 좁은 골목 너머로는 이웃집의 밥 짓는 냄새부터 투닥거리는 대화들이 이웃의 문턱을 쉬이 넘나들었다. 옛날부터 '공원슈퍼'자리였다는 우리 사무실은 그 작은 골목의 중심이 되는 아담한 교차로의 모퉁이에 자리 잡은 덕에 더더욱 온 동네 사람 소리에 노출되었다.


2010년 당시 '공원슈퍼'였던 연남동 사무실의 모습 / 당신 연남동은 조용한 마을이었다.


매일 오후 3시면 사무실 앞에 태권도장 차가 서고 동네 아이들이 주르르 내리는 사거리. 식사 때면 놀이터에 아이들을 부르러 나오는 엄마와 할머니들의 아우성까지. 그래서 매일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연남동주민센터 앞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그 십 분이 좋았다. 우리 동네 골목에 접어드는 순간부터, 긴장했던 몸이 풀리고 바로 무장해제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어릴 때 자랐던 동네의 골목처럼, 연남동이 지금껏 과거의 서울 동네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은 다른 이유였다. 7년 전만 해도 주민센터에서 한 블록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서울 시내지만 가스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동네였다. 그리고 몇 년 전까지도 우리 사무실 너머의 블록까지의 지역은 주거지역으로, 상가가 들어오기 힘든 제한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경의선 철길공원의 공사가 완공되고, 공원 좌우로부터 개발제한 조치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연남동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았다. 부동산 전문가의 말씀을 빌리자면 30년 만에 처음 동네의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매일 폐지를 주워 생활하시던 어르신들의 집값이 2~3년 사이에 평당 거의 1000만 원이 뛰었다. 30년 만에 집값이 올랐는데, 계속 동네에서 살자면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익숙한 동네의 우리 집을 팔고 나가야만 부자가 될 수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했다. 결국 많은 이웃들은 선택의 기로에 떠밀렸다. 부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평생 살아온 동네에서의 이웃과 일상을 유지할 것인가. 다행히 인시즌에게 사무실을 빌려주신 주인집 할머니는 자신의 남은 하루가 더 소중한 분이셨다. 당신이 사시는 날까지는 이대로, 여기 머무시겠다고. 손녀 같은 너희도 가능하면 당신과 같이 오래오래 있으라고 말씀해 주셨다.



연남동이 처음 외부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동진시장'프로젝트 덕분이었던 것도 같다. 서울시내 번화가에서 가까운 전통시장 중 하나였던 동진시장은 옛시장의 모습은 그대로 갖추고 있지만, 규모가 심히 아담했다.

동진시장 내부 플리마켓 모습 / 출처:한국관광공사


당시 처음 붐이 일기 시작했던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시장의 외관에서 느낌은 살리고, 내부는 다시 단장해서 젊은 친구들이 가보고 싶은 곳으로 바꿔냈다. 홍대입구역에서 동진시장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그 주변에 소위 연남동 맛집이라는 몇몇 가게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동진시장 안쪽에는 가면 커피로 유명한 커피리브레가 매장을 유지하고 있고, 일본 카레 바람을 일으킨 히메지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언제나 최소한 웨이팅이 2~30분은 걸리도록 가장 유명했던 곳은 태국 음식 전문점 '툭툭'. 지금은 누들 전문점에, 서울 여러 곳에 지점이 많아졌지만, 이 때는 연남동 동진시장 건물의 지하가 유일했다. 1~2년을 버티던 툭툭은 결국 첫 매장의 한계를 견디지 못하고 연남동 저 안쪽에 4층 건물로 이사를 했다. 처음 툭툭이 우리 사무실에서 바로 한 블록 위쪽 골목에 자리 잡을 때만 해도 여전히 주변은 조용했고, 우리는 웨이팅 없이 툭툭을 갈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홍대입구와 상수, 합정이 포화가 되었을 즈음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부터인가 연남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공항철도의 역사가 연남동 위쪽으로 열리면서, 게스트 하우스들이 들어서고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붐비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경의선 철길 공원에 몰리기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봄가을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삼삼오오 돗자리 들고 잔디밭에 앉아 노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처음 연남 파출소까지 한 블록에만 빽빽이 앉아 즐기던 인파는 해운대 파도처럼 금방 깊숙이 공원길을 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퇴근시간이나 주말엔 공원 주변으로 상가와 카페들 어느 하나 빈자리가 없어졌다. 그렇게 왼쪽에서는 사람들이 공원길을 타고 연남동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면, 오른쪽으로는 툭툭 골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독특하게 생긴 주택과 가건물이 이어져있던 곳을 처음엔 인생 술집 프로그램 세트장으로 사용했고, 결국 그곳은 한국에 들어온 베트남 콩 카페의 1호점이 되었다.


<콩카페 내부 / 출처:http://www.fashionbiz.co.kr/RT/?cate=2&recom=2&idx=168412>

베트남 코코넛 커피의 매력은 거의 전 영업시간의 웨이팅을 불렀고, 사람들이 그 골목에 모이는 이유의 시작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불과 3~4개월 안에 콩 카페, 장진우 사단의 stamp coffee, 연남동 빈티지 카페의 강자 high west의 새로운 카페 Layered, 그리고 해외에서 들여온 특이한 도넛 카페 fluffy까지. 


레이어드 카페 내부 / 출처:레이어드카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fe_layered/>


불과 100미터 안에 인스타 그램에 올릴만한 유명 장소가 4~5군데가 몰려있는 셈이 되고 말았다. 이제 연남동을 처음 찾아오는 아이들이 택시로 툭툭 골목 앞에 내려 주말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들이 신기한 카페 구경에 지치면 결국 찾는 곳은 공원이 되었다. 공원에 산책하던 이들은 유명한 카페를 찾아 골목에 들어섰다. 인시즌 사무실 앞의 아담한 사거리는 공원에서 카페골목으로 이어지는 그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벌어진 현실이었다. 사무실 앞 쇼룸 공간에 청소라도 해 놓은 날엔 어김없이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물었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냐고.


우리 앞집은 원래 벽돌담이 높고, 좁은 마당에 오랫동안 키우신 매화나무가 근사한 양옥이었다. 연남동의 벚꽃길이 시작되기 전에 가장 먼저 하얗게 꽃을 피워내는 것이 바로 앞집의 매화였다. 사무실에서 정면에 서 있던 매화나무의 꽃잎이 떨어질 무렵, 도로의 중간 화단을 가득 채운 벚나무들의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앞은 못 보고 머리 위만 보고 걸어 다녔다. 황홀하게 하얀 그늘이 머리 위로 가득 흐드러 졌다.



불과 2년 전 까지도 이 기억은 동일했었다. 그 앞집이 상가건물로 개조되는 건 그 건물에 들어오는 세입자를 구하는 것보다 더 빨리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1층, 2층, 3층 각각 들어왔던 첫 번째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지금은 새로운 반미 집이 다음 주 오픈을 위해 공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거리의 유동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머무는 사람과 공간의 성격이 순식간에 갈려나가는 것처럼, 골목의 성격이 본격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사무실부터 위쪽 툭툭 골목까지 한 블록 안에 카페만 15개 들어섰다고 했던가. 조용해서 이곳에서 일하기 좋겠다며 들어왔던 연남동인데, 우리 동네가 모두의 거리가 되는 것 또한 순식간이었다.


[연남동 사무실 앞] 2012년 양옥집상태  / 2017년 상가건물로 개조시작 / 2018년 첫번째 리뉴얼 후


모든 일에는 적합한 타이밍이 있다. 의도한 바 없이 연남동 사무실은 주말엔 사무실로 사용되기에 너무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자리하는 셈이 되었다. 우리만의 동네로 자리매김하기엔 공기가 많이 달라졌다. 거리를 채운 인파 중에 외지인의 비율이 이렇게 많아졌다면, 이미 거리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인시즌 역시 이 사무실을 우리만 쓸 수 있는 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문을 열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메시지와 이미지를 그리고 새로 나온 책과 제품을 전달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내 공간에서 우리의 공간으로, 원래 '공원슈퍼'처럼 이곳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내놓아야 하는 시간이 왔다. 한편으로는 굳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Someone's Recipe
인시즌의 제품과 책 속의 레시피를 맛보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매달의 테마로 원물부터 제품, 그리고 레시피를 소개하고 클래스가 진행됩니다.
5월 4일 오픈 예정 /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240-54 1층
매거진의 이전글 Walking down the librarie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