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스트로네. 먹을 것 없을 때 끓이는 이태리 수프
대체로 배고픔을 견디는 음식은 국물 요리가 많은 편. 가난한 시절엔 기본적으로 주식이 되는 곡식이 부족했고, 이 빈자리를 야채나 잡곡들로 채워 넣다보니, 다 넣고 끓여 속을 채워주는 한 그릇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할머니의 경험담으로 전해지는 보릿고개 이야기 역시 수많은 '탕'이나 '죽' 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사골국이나 꼬리곰탕처럼 고기를 바르고 남는 뼈를 고아 만드는 탕국부터 남는 재료를 다 넣고 진하게 끓여내는 부대찌개, 감자탕 역시 지난 가난한 세월의 그늘이 깃들어 있는 것도 같다.
지금은 전 세계적인 다이어트 식품으로 주목받고, 귀하게 인정받는 아일랜드산 오트밀의 시작 역시 대기근이었다. 영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식량 수급이 전부 끊어진 아일랜드섬에서 스스로 농사를 지어먹을 수 있는 두 가지 식자재는 <감자와 귀리>가 전부였으니까. 수도의 더블린을 가로지르는 리피 강가에는 그 당시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시민들을 기리는 동상이 서 있다. 그래서일까. 아일랜드의 감자요리와 오트밀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부분은 다소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가난한 시절의 음식’은 이탈리아에도 존재한다. <미네스트로네>라는 이름의 야채수프가 대표적이다. 이탈리아 육수의 기본인 양파와 당근 샐러리는 기본으로 넣고, 소스 역할을 맡아줄 토마토와 배고픔을 해결해줄 감자, 콩 등이 추가로 들어간다.
푸른 푸성귀로는 시금치가 남아 있으면 몇 포기 넣어 같이 끓여주기도 하는데, 사실 넣는 채소에 큰 제한은 없다. 그나마 냉장고에 남아 있는 야채들을 통통 털어 넣고 뭉근하게 50분가량 끓여내는 우리네 곰탕 같은 야채수프다.
충분히 야채가 물러지도록 끓여낸 미네스트로네의 국물 맛은 맑고 개운하게 달다. 일반적으로 양념으로 치킨 스톡 큐브나 부용을 넣지만, 냉동고를 털어 소고기든 닭고기든 한 조각의 고기라도 발견한다면 넣어보자. 더 근사한 수프가 완성된다. 냉동 미트볼이나 고기 패티도 좋다.
이렇게 끓여낸 국물만으로도 이미 완성도 높은 소울 수프가 탄생하지만, 기호에 따라 토마토소스나 카레 등 다양한 맛을 더해 독특한 스튜를 완성할 수도 있다.
미네스트로네의 진가는 맛이 겹쳐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설탕을 넣지 않고도 야채 속의 단맛을 이렇게까지 끌어낸다는 점도 놀랍고, 이 우아한 단맛은 겹쳐지는 다른 맛을 전혀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메인이 되는 소스의 맛을 살려주며 그 풍미를 부드럽게 만들고, 감칠맛을 진하게 더해준다.
육수로 치면 고급스러운 야채 육수의 역할을 감당하는 셈이기도 하다.
토마토부터 끓여낸 홈메이드 소스가 더해지면 개운함과 담백함이 조화를 이루어 제법 아름다운 맛이 완성된다. 이 수프의 바닥에 마늘 빵이나 파스타, 또는 쌀을 넣어 끓이면, 엄마가 반찬 없이 끓여주는 '김치 국밥'처럼 조촐하지만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다.
지금껏 인생에서 먹어 본 가장 맛있는 버전의 미네스트로네를 꼽으라면, 미트볼과의 조합이다. 갈색 나게 팬에서 굴린 미트볼을 오븐에서 바싹하게 익혀낸 뒤, 토마토소스가 들어간 미네스트로네를 끼얹어주면 끝.
언제라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정확한 그 맛의 조합은, 지금껏 스스로의 인생에 가장 맛있는 토마토 스튜이자, 미트볼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 궁극의 맛이 화면 너머 당신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미네스트로네
Minestrone
Ingredients
(기본 야채 재료) 양파 2개, 당근 1~2개, 감자 2~3개, 시금치 3포기, 큰 토마토 2개 또는 토마토 통조림 1캔, 샐러리 1/2 줄기, 그 외 냉장고에 남는 야채
올리브 오일 약간, 물 2L(또는 닭 육수, 치킨스톡 큐브)
토마토소스 4~5큰술, 생파슬리 약간
* 미트볼을 두어 개 깨어 넣어주면 더욱 감칠맛 나는 수프를 즐길 수 있다.
* 배가 아주 고프다면, 파스타나 쌀을 넣어 끓여준다.
Method
1. 위의 기본 야채 재료들을 깨끗이 씻은 뒤, 한입 크기로 잘 잘라준다.
2. 큰 냄비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썰어 둔 양파를 먼저 볶아준다.
3. 양파가 투명하게 익기 시작하면, 나머지 야채를 넣고 살짝 볶아준다.
4. 위의 냄비에 물 또는 닭 육수 2L를 넣고 끓여준다.
5. 한 번 세게 끓어오르면, 불을 줄인 뒤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50분가량 끓여준다.
6. 야채의 단맛이 제대로 국물에 우러나면, 토마토소스와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남은 미트볼이 있다면, 지금 두어 개 깨어 넣는다)
7. 마지막에 넣은 미트볼이 익으면 불에서 내려 파슬리 가루를 뿌려준 뒤 뜨끈하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