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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Jan 17. 2021

당유자를 기다리며

hello. jeju pomelo 

처음부터 제주의 모든 감귤 열매를 찾아나설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육지에선 아무 것도 수확할 수 없는 겨울에도 푸르게 열린 향기로운 열매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주의 감귤계 열매들을 한 줄로 세워보면 일년 내내 바톤을 이어받으며 자신의 계절을 지켜나간다.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온국민의 감귤철을 사이에 두고 직전엔 영귤이 나오고, 감귤이 지나갈 즈음 유자가 등장한다. 이 유자 수확시기와 몇 주차이로 나오는 열매 중엔 조선시대부터 역사를 자랑하는 제주의 토종 열매 당유자가 숨어 있다. 그리고 바로 이른 봄까지는 싱싱하게 먹기 쉬운 한라봉과 레드향 등이 과일가게 가판대를 가득 채워나간다. 이들이 시들해지는 4월엔 금귤(낑깡)이 등장하고, 곧 오렌지만한 크기의 하귤도 뒤이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청귤이라는 이름으로 감귤을 풋귤 때부터 먹기 시작하는 셈이다.



대체로 과일을 가공하는 경우는 두가지의 이유가 있다. 너무 흔한 과일이라 먹고 남거나, 열매 그대로는 먹기 어려워 가공을 통해 먹는 방법을 찾는 경우다. 습관적으로 겨울마다 유자차는 마셔왔지만, 막상 유자라는 과일의 맛이 얼마나 시큼한 지는 알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가 잘 모르던 열매들을 가공식품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주로 이 두번째다.



생으로 먹기 어려운 만큼 맛과 향이 진하고, 가공하는 수고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상품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런 열매들을 주로 찾아 제품을 만들어 왔다. 이렇게 맨 처음 접했던 제주 과일이 영귤(스다치)이였고, 영귤청을 만들기 시작한 지 삼년쯤 되던 해, 영귤 농원의 어머님께서 우리에게 '이것도 참 맛있는데 제품 좀 만들어 보라.'고 박스를 하나 보내주셨던 것이 바로 이 당유자다.



겨울의 끝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무렵 제주에서 수확하는 당유자는 제주 방언으로 댕유지, 대유지라고도 불린다. 이 열매는 제주도 토종열매로 자몽 크기 정도의 커다란 재래귤이란다. 무려 조선시대 요리책에 당유자로 담그는 술이 제주지역 음식으로 소개될 정도로 작물의 역사가 깊다. 나무에 달리는 꼭지 부분이 둥글게 튀어나와 도련귤이라고도 하는데, 큰 크기와 두꺼운 껍질에 비해 들어찬 과육이 부실하고 씨앗이 많은 것이 유자와 비슷하다. 처음엔 당유자라는 과일 자체를 잘 모르다 보니 결과적으로 어떤 맛이 나야 좋은지 기준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청도 담고, 주스도 짜 보고, 제스트도 긁어 보고. 긴 겨울이 지나 봄이 시작되기 전까지 매년 당유자를 가지고 씨름이 시작되었다.



당유자의 맛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향기는 오렌지에 가까운데 맛은 쌉싸래한 자몽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당유자를 가지고 제일 먼저 만든 제품은 가장 익숙한 당유자청. 그런데 껍질에 배여있는 향기와 맛이 유독 진하다보니, 청을 담궈도 다른 열매들보다 긴 숙성시간이 필요했다. 아린 맛이 잦아들고 제대로 다 익은 당유자청을 먹기 시작하는 타이밍이란 거의 사계절이 한바퀴 돌고난 시점이랄까.



올 해 담그는 당유자청은 내년 양식을 미리 저장하는 셈이 된다. 이렇게 완성된 당유자청엔 따끈한 물을 부어 차로 마시는 전통적인 방법부터 얼음 물에 넣어 시원한 음료로 마시는 것까지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탄산수에 타면, 독특하게도 '환타'의 맛을 쌉쌀한 뒷맛과 함께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 


맛이 어울리는 조합을 발견하는 것만큼은 계산으로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만 생강시럽으로 덖어낸 호두와 애플시나몬 시럽으로 볶아낸 아몬드처럼, 최근 좋아진 피칸에 어울리는 시럽은 없을까라는 질문이 시작된 것 뿐이었다. 하귤의 상큼한 뉘앙스가 묵직한 피칸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점이 좋았지만, 향기가 좀 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귤보다 더 강한 시트러스 향기가  필요하다면, 당유자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당유자청에 피칸을 덖어낸 그 순간 우리가 찾던 맛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유자의 상큼하고 진한 시트러스 향기가 열처리 속에서도 살아남아 피칸 고유의 부드러운 단 맛을 배가 시키면서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아무리 좋아해도 대개 견과류란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테스트를 하는 내내 맛을 본다는 핑계로 계속 집어먹는 자신을 발견했다.


새해의 햇 당유자를 만나기까지 불과 며칠 남았다. 지난 일년을 기다려 개봉한 당유자청은 여전히 진하고 향긋하고, 개운하다. 올해는 이 귀한 청을 가지고 피칸에 덖어 새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귀할수록 혼자 아껴먹기보다, 함께 나눠먹으면 더 좋다 싶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제법 낯설지만 익숙한 향기, 당유자를 만나보시길 권해본다.    




Jeju Pomello Syrup

당유자청 


ingredient

씨를 뺀 당유자 600g

설탕 600g 


method

1. 당유자씻기 : 껍질 채 사용하므로 당유자 표면에 베이킹소다를 문질러 식초물에 넣어준다. 흐르는 물에 잘 헹궈낸 뒤, 물기를 잘 말려 준비한다.

2. 당유자는 껍질과 속을 분리한 뒤, 속에서 씨앗을 전부 제거한다. 껍질의 경우 채를 썰어 준비해 둔다.

3. 볼에 손질한 당유자와 설탕을 넣고 잘 섞여지도록 함께 비벼준다.

4. 당유자청을 숙성시킬 용기에 넣고 여분의 설탕으로 윗면이 공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꼼꼼이 덮어준다.

5. 실온에서  1주일 숙성 뒤, 김치냉장고나 냉장고에 넣어두고 100일가량 숙성한 뒤 꺼내어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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