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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Feb 21. 2021

Good morning.

dear my granola.

어느 문화권에서든 대체로 아침은 분주한 시간이다.


긴 밤을 지나 새벽을 깨우고 여유롭게 하루를 준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매일 그런 일상이 허락되긴 쉽지 않다. 짧은 준비시간 안에 씻고, 옷을 입고, 늦지 않게 일터에 도착하는 그 복잡한 과정 속에 아침식사까지 구겨 넣자면 아무래도 스텝이 꼬이고 분주해지기 마련. 혼자 사는 아침도 이런데, 가족이 일어나 다 같이 움직이는 아침의 분주함이란 피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침식사는 더 간단하고 가볍게, 그렇지만 적은 양으로도 하루를 시작할 든든한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하게 된다.



우리에게 친숙한 아침상은 기본이 백반이다. 그러니 아침 준비로 모든 가족이 바쁜 와중에도 단연 제일 바쁜 사람은 늘 엄마였다. 밥과 국에 반찬을 차려 아침상을 봐주고, 돌아서서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아침상의 메인은 반찬보다는 국물이었다. 눈 뜨자마자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한 그릇 삼키고, 도시락을 챙겨 든 채로 뛰어나가곤 했었다.


중국에서 경험했던 대학교 기숙사 아침상에는 심심찮게 죽이 나오곤 했다. 쌀죽이나 옥수수죽에 반찬을 하나 곁들여 꽃빵과 함께 말아먹는 것이 익숙한 아침 풍경. 때로는 우리나라 두유에 해당하는 진한 콩물 한 잔도 나쁘지 않았다. 아침에 곡물을 먹는 방식이란 대체로 가볍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편이니깐.



처음 아일랜드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3일째 같은 샌드위치를 먹기 힘들어 샀던 것이 시리얼이었다. 영국권 마트에는 통밀을 뭉쳐서 한 그릇 분량의 시리얼로 만들어 놓은 제품(휘타 빅스 등)들이 있는데, 조금이라도 덜 불리면 종이 씹는 맛이 났다. 이 난해한 아침식사를 개선하기 위해 나름 큰 맘먹고 사기 시작한 것이 그래놀라.


다양한 견과류와 시럽에 구워진 그래놀라는 싼 통밀 시리얼의 몇 배의 가격이었지만, 하루에 한 줌씩 섞어먹는 것만으로도 매일 아침 식탁에 앉는 기쁨을 알게 해 주었다. 주말이라면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잉글리쉬 브렉퍼스트를 즐길 수도 있겠지만, 주중 아침엔 넉넉한 볼에 고급스러운(재료가 다양하게 많이 들어간) 그래놀라를 넣고 우유를 붓는 것만으로도 웃음 나던 기억이 지금껏 생생하다.



그래놀라는 오븐으로 구운 시리얼의 한 종류를 말한다. 주로 재료가 되는 곡물과 견과류, 건과류를 함께 섞고, 시럽과 오일 또는 버터를 코팅하여 오븐에서 한 번 구워내기 때문에 다양한 맛이 나고, 그 맛이 우유에 은근하게 우러나게 된다.



서양에서 대체로 그래놀라의 기본이 되는 곡물은 귀리가 아니면 통밀 정도다. 단 맛을 내는 시럽의 종류에 따라 풍미가 조금씩 달라지고, 함께 섞는 견과류나 건과류의 종류에 따라 맛이 구분되는 경우가 많다. 종류가 워낙 다양하지만 크게 분류하자면 대체로 곡물로 구성된 클래식과 견과류가 많은 버전, 건과류가 많은 버전이 갈리고, 아이들을 위한 초콜릿 맛 정도가 추가되는 편이다. 요즘에는 케토식이나 비건 등 차별화된 재료를 사용한 제품들도 늘어가는 추세. 함께 곁들여 먹는 우유 역시 요즘은 두유부터 다양한 넛츠 밀크까지 선택이 가능해졌다.

 


지난 십수 년간 켈로그나 포스트 같은 국내 대기업의 시리얼에 만족하지 못하고,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현지 그래놀라로 출장 가방을 가득 채워올 정도로 제법 애써 챙겨 먹어 왔다. 나름 헤비 유저의 입장에서 선호하는 취향이 뚜렷한 소비자라고 자신해 왔는데, 막상 시럽 회사의 입장에서 직접 그래놀라를 만들자니 생각이 많아졌다. 가지고 있는 시럽의 종류만큼 만들 수 있는 맛은 다양하지만, 아침 식사로 편하고 친숙하게 먹을 수 있는 맛을 찾자면 어떤 시럽으로 만들어야 할까는 쉽지 않은 질문이다.


계절별로 나오는 제철 과일이 다 다른데 이 모든 맛을 다 그래놀라로 만들어야 할까.

의외로 그래놀라란 스스로에게 익숙해진 한 두 가지의 맛을 습관적으로 먹게 되는데,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킬만한 맛은 어떤 조합일까.



수많은 질문을 넘어 가진 뚜렷한 결론 중 하나는 '지금' 먹고 싶은 그래놀라를 만들자는 것. 날씨가 추운 겨울에 어울리는 '겨울 그래놀라'는 어떤 맛이 좋을까. 그렇게 찾은 첫 번째 답은 바로 <진저 그래놀라> 였다. 찬 바람에 맞서 나가야 하는 서늘한 아침을 위해 몸속부터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생강의 향긋한 기운을 그래놀라에 부담스럽지 않게 담기 위해서.


곧 시작될 봄을 위해서는 또 어떤 그래놀라를 만들게 될까.


우리 모두의 가벼운 아침을 위해서.

Good 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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