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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Jan 25. 2023

일시 정지

인생의 스케줄

요 근래 든 생각이다. '일시 정지' 따위는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매일 15분 간격으로 계획을 세우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 6:00 기상, 6:30까지 운동복 입고 헬스장에 도착, 8:00까지 운동... 그렇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24시간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이 패턴을 깨고 싶었다. 더 이상 '효율적인 인간'이 되기 싫었다. 나는 기계가 아니니까, 인풋 대비 아웃풋 외에도 더 인생에서 고려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몇 년째 가져왔던 패턴은 습관처럼 남아, 계획을 세우지 않으려고 해도 마음속에서 초시계가 흘러가는 것 같았다. '너 지금 15분 낭비했어, 너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20분째야.'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내 모습이 얼굴을 바꿔 나에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내 안에 있는 '패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작게는, 내가 6시에 기상해서 운동을 가는 것부터 크게는 내가 대학에 와서, 면허를 취득하고, 수련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 하루가 짜인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이 내 인생에도 '스케줄표'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루를 살듯이 나는 내 인생을 살게 될 것 같았다. 24시간을 15분 단위로 쪼갠 내 계획이 숨 막혔듯이, 이 인생의 '스케줄'도 숨 막히기 시작했다. 내가 100프로 주체적으로 짠 계획도 아닌 것 같았다. 이 패턴을 벗어나면 정말 크게 잘못되려나? 아니, 이 패턴을 따라가면 뭐가 좋지? 20대 후반~30대 중반 안에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노처녀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 같고, 전문의 수련을 졸업하자마자 하지 않고 나중에 하면 남들보다 뒤처질 것 같고... 내가 두려워하는 과연 그 '큰 일'이 뭘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남들의 시선? 그게 그렇게 무섭나?

사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나는 20대 후반까지 남들이 말하는 그 '패턴'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남들이 기대하던, 내가 예상했던 내 인생의 스토리에서 가장 크게 벗어났던 경험은 '재수'정도였을지도. 친척들에게 나는 미래가 걱정되는 아이라기보다는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만큼 새롭고 신선한 일도 없다는 뜻 아닐까? 그래서 왠지 내 미래가 기대되지 않았다.


어느 월요일, 패턴을 깨려는 내 나름의 노력을 했다. 가방을 챙겨서 자습실로 진작 출발해야 했을 시간에, 집에서 일기를 썼고,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라도 주체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나 자신이, 또는 남들이 짜놓은 숨 막히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일기를 쓰는 아침은 무엇일까? 그런 아침이 오기는 할까?

이 패턴을 나는 지독히도 싫어하면서 놓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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