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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eok Feb 02. 2024

파혼할 뻔했습니다(2) 좋자고 시작한 일인데 ‘웃프다’

1장: 프러포즈, 결혼의 시작

좋자고 시작한 일인데 ‘웃프다’


“잠깐 통화할 수 있어?”     

평화로운 토요일 오전 11시쯤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주말에는 늘 ‘방해금지모드’를 설정하고 잠을 자는 터라 ‘부재중 전화’가 세 통이나 걸려온 지도 몰랐다. 눈을 뜨고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의 메시지가 느껴졌다.      


“자다가 이제 일어났는데 무슨 일이야?”     


전화한 이유를 묻자 친구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전날 있었던 사건의 운을 뗐다. “프러포즈 했는데 잘 안 됐네. 지금 연락은 주고 받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거 같은데….”     


한 달 전부터 프러포즈를 고민하던 친구는 1박에 50만원에 달하는 호텔을 예약한 뒤 업체를 불러 방을 꾸몄다. 그 전에 미리 여자친구와 봐뒀던 가방도 준비했다. 촛불과 풍선으로 꾸며진 그럴 듯한 분위기의 호텔 방안에 300만원이 넘는 가방. 여자친구도 프러포즈를 예상한 듯 들뜬 표정으로 방문을 열었지만 이내 풀이 죽었다고 한다. 300만원이 넘는 가방 때문이었다.     


“가방이 원하는 브랜드가 아니래. 프러포즈 받을 때 선물로 받고 싶은 가방을 말하지 않았냐고 하더라. 금액이 부담돼서 비교적 저렴한 가방을 골랐는데…. 내가 산 가방도 전에 예쁘다고 했었거든. 이거 때문에 프러포즈 망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자친구는 500만원이 조금 넘는 한 브랜드 가방을 받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프러포즈를 준비하면서 호텔 숙박비 등 비용이 많이 지출돼 친구는 보다 저렴한 가방을 골랐는데, 그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 호텔 방 안 분위기가 차갑게 식은 것이다. 친구가 구매한 가방도 비싼 브랜드였지만(품질이 좋은지 여부와 관계 없이) 그녀가 상상하던 장면과 거리가 있었던 탓이리라.      


이 친구는 회사 동료가 프러포즈 후 파혼한 사례를 자신에게 이입하며 더 절망에 빠졌다. “너도 알지? 전에 내가 말한 회사 형. 그 형이 살던 집을 신혼집으로 쓰기로 했는데 프러포즈 거기서 했다가 ‘호텔에서 받고 싶었는데 이게 뭐냐’고 난리가 났잖아. 돈 아끼려고 그런 거 아니냐고.”      


친구의 회사 동료는 프러포즈 때 한바탕 언쟁을 벌인 후 서로 서운한 점을 토로하다가 접점을 찾지 못해 파혼했다고 한다. 프러포즈를 기점으로 그간 서로가 담아왔던 불만이 터져나왔고 '이럴 거면 갈라서자'는 결론에 도달한 것. 친구는 자신도 200만원을 아끼려다 파혼하는 사람이 될까봐 노심초사(勞心焦思) 하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 나가보자는 첫 시작이 실로 쉽지 않은 셈이다.     


모든 신혼부부가 프러포즈 선물이나 장소 등 비용 문제로 다투는 것은 아니다. 값비싼 프러포즈 대신 신혼여행이나 주거에 비용을 투입하려는 예비 신혼부부도 많다. 잘 아는 선배는 예비신부가 ‘진심이 담긴 편지’를 결혼 조건으로 달았다고 한다. 기사를 비롯해 블로그에도 글을 많이 쓰던 선배는 평소 실력을 발휘에 마음을 담아 그녀에게 전했고, 예비신부 역시 흡족하게 결혼을 승낙해 사랑스러운 가정을 꾸렸다.     

 

문득 해외가 궁금해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자친구 모르게 반지를 준비해 한쪽 무릎을 꿇고 청혼하는 모습 그 흔한 장면. 이들에겐 프러포즈로 인한 갈등이 없을까.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고 현지에서 결혼한 지인 이야기를 들어보면 프러포즈를 남성이 주도하는 문화는 해외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그럴 듯한 식당을 예약하고 식사가 나오는 과정에서 ‘Will you marry me?’(나와 결혼해줄래?)라는 문구가 새겨진 케이크가 디저트가 등장하면 그때 이벤트가 벌어진다.      


국내와 달리 통상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소박한 프러포즈가 보편화 돼 있는데, 영미권은 결혼 전 동거 중인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남모르게 값비싼 이벤트를 준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같이 등산을 가거나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 무릎을 꿇으면서 반지를 건네는 상황이 많은 편. 여기에 화려한 이벤트에 방점을 찍기보단 서로 간 헌신을 약속한다는 의미에 무게를 둔다. 결혼 이야기가 오갈 정도면 이미 한 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니 프러포즈로 마음 상할 일이 비교적 드문 것이다.      


사랑하는 너와 좋은 가정을 꾸리겠다며 시작한 일인 프러포즈. 한 번뿐인 결혼이라고 한다면 더 많은 의미와 노력, 시간을 투입하는 게 보편·타당한 것 같으면서도 함께 잘 사는 일이 더 중요한 결혼에 관행적인 이벤트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옳은지 지금도 모르겠다. 좋자고 시작한 일에 ‘웃픈’(웃기고 슬픈)일이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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