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성실하게 살았는데…
상승혼, 동질혼, 하락혼
고등학생 시절 아빠가 집에 계시면 나는 거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프로게이머를 준비하기 위해 연습한다는 이유가 컸지만 같이 활동하거나 소통이 많은 부자가 아니라서 함께 있는 시간이 조금은 불편했다. 공부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온종일 컴퓨터만 붙잡고 있는 아들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며칠간 바다를 항해하다 집에 들어온 아빠를 위해 방에 있는 아들을 거실로 끄집어내려고 했다. 엄마의 시도는 번번이 무위에 그쳤다. 아빠에 대한 불편함은 20대 후반으로 접어든 뒤에야 완전히 사라졌다.
결혼 준비 과정에 놓은 데이트는 이따금 불편함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해결되지 않은 신혼집, 타고 다닐 자동차, 가전·가구까지 해결된 게 하나도 없었다. 어느 날은 괜찮았지만, 또 어느 날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평균남’이 내세울 조건은 여자친구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저녁식사를 하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젊은 부부가 우리 눈을 사로 잡으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옆 테이블을 보던 여자친구가 말을 꺼냈다.
“우리는 저렇게 못 살겠지?”
“어떻게?”
“저렇게 말이야. 애 낳고 유모차 태워서 데이트 식사하러 나오는 삶. 저 부부는 되게 여유 있어 보이네.”
“애 한 명 정도는 낳고 충분히 살지. 내 친구들도 다 저렇게 사는데. 두 명은 부담스러울 수 있어도 한 명은 충분히 케어할 수 있지.”
“애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 우린 지금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돈도 없는데 무슨 수로 애를 키워.”
“친구들 보면 다 키운다니까…. 나랑 비슷한 형편인 애들도 다 잘 키우고 사는구만.”
“자기 친구들 얘기 좀 그만해. 자기랑 이야기하다 보면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이야.”
아래로 떨어진다라. 나와의 만남과 결혼이 ‘신분 하락’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쉬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적막이 이어지자 식사를 마친 여자친구가 ‘집이나 가자’고 말했다.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일어났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아래로 떨어진다. 신분 하락’이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많은 사람이 결혼할 때 ‘상승혼’을 목표로 둔다는데, 결국 나와의 만남은 ‘동질혼’도 아닌 ‘하락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생각을 입밖에 꺼냈다는 점도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뭐라고 말 좀 해봐. 입 계속 다물고 있을 거야?” 답답했는지 여자친구가 채근했다.
“그냥 우리 파혼하자. 나는 결혼하면 안 되는 사람인데 주제넘게 결혼 추진하다가 이렇게 된 거 같다. 나는 결혼하면 안 될 거 같아.”
두 번째 파혼 선언. 말을 꺼내니 서러움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오열한 적이 언제였을까. 군대에서 첫사랑과 헤어졌을 때보다 더 목 놓아 울었다. 길에 있는 벤치에 앉아 꺼이꺼이 울어대며 한참 고개를 들지 못했다. 군대에서는 다른 시선 탓에 참으려 애썼지만 이번에는 그 어느 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랑 결혼하는 게 신분 하락 느낌이 들면 그냥 서로 안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자기 말대로 내가 내세울 건 없어도 그렇게 천대받을 정돈 아닌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내가 언제 신분 하락한다고 그랬어. 그냥 계속 자기 친구랑 비교하면서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 거 같으니까 자꾸 기준점을 낮춘다는 뜻으로 말 한거지. 미안해 그만 울어.”
지금 돌이켜봐도 그날은, 어쩌면 과도했던 자기애가 통째로 무너진 날이자 스스로 품고 있던 자존감도 산산이 부서져 내린 순간이었다. 그저 나는 결혼 시장에서 ‘함량 미달’인 사람이었다. 결혼이 순수하게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저울질하고 선별되는 과정이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실감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