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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할 뻔했습니다(19) 인간관계의 끝

4장: 성실하게 살았는데…

by inseok
바다 위를 떠도는 인연

A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그를 자주 봤다. 다부지고 날렵했으며 때론 거칠었다. 공을 차다 투닥거리기도 했다. 그 불편함 탓일까. 소풍을 갔을 때 집합시간이 지나고도 A가 나타나지 않자 ‘선생님한테 크게 혼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자친구는 파혼 선언 후 서럽게 우는 나를 달랬다. 미안하다며 내 결정에 우리 관계의 끝을 맡기겠다는 말에 단호히 이별을 고하지 못했다. 스쳐 갔던 많은 인간관계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연애 때와 마찬가지로 파혼 끝에 서 있을 당시에도 행복과 괴로움의 비율은 55:45 정도. 이 아슬아슬한 경계가 이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나는 한 번 결정한 걸 번복하고 싶진 않아. 자기 뜻에 따를게.”


“나도 모르겠다. 네가 싫다기 보단 그냥 내가 결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결혼하면 안 되는 사람인데 주제넘게 추진하다가 이렇게 된 거 같고. 내 생각엔 우리가 일주일 정도 시간을 가지면 좋을 거 같아.”


“시간을 갖는 건 없어. 지금 결정해. 시간 갖자는 건 헤어지는 거랑 같은 말인데 뭘 시간을 가져.”


여자친구는 중요한 순간 여장부 같았다. 타인과 비교하며 칭얼거릴 때랑은 다른 모습. 차라리 헤어지자고 말했으면 고민이 덜 했을 텐데, 사건을 촉발시킨 당사자는 또 끝까지 가보겠노라 다짐하고 있었다. 심약해진 마음으로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울음으로 뒤엉킨 숨이 천천히 가라앉았고,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헤어지는 게 더 후회가 남는 선택인 건 맞아. 근데 또 이런 일이 반복될 거 같아서 그게 괴로워. 결혼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 돈으로 압박받는 기분이야. 이걸 당장 해결할 수도 없는데….”


“나도 답답하니까 그렇지. 그렇다고 매번 그만두자는 태도도 틀린 거 같아. 결혼하기로 했으면 싸우더라도 끝까지 가야지. 이럴 거면 프러포즈는 왜 했어? 살다 보면 더 힘든 날도 올 텐데 그럼 그때마다 이혼하자고 그럴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정이 겹겹이 쌓인 순간에는 그 단순한 이치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 괜히 또 파혼 얘기 꺼내서 미안하네. 이런 말 안 꺼내도록 노력할게. 날 만나서 신분 하락한다는 거처럼 말하니까 나는 결혼하면 안 될 사람같이 느껴졌어.”


“그런 뜻은 아니야. 미안해, 나도 말 좀 가려서 할게. 일단 늦었으니까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씻고 좀 쉬어. 오늘은 안 데려다줘도 돼. 바로 집으로 가.”


긴장관계를 유지하던 A와 6학년 때 같은 반이 됐다. 그렇게 1년을 어울려 다녔다. 서로 다른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교류가 끊기지 않았다. 2022년 세무사 부실 채점, 공무원 특혜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세무사를 준비하던 A의 도움을 받아 몇 차례 기사도 썼다. 첫 시작이 그리 좋지 않은 나와 A였지만, 지금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간관계는 우주처럼 어디가 끝인지, 그 끝을 단정 지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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