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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할 뻔했습니다(20) 그때의 선택

4장: 성실하게 살았는데…

by inseok
인연을 유지하는 조건

2003년 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빠는 경남 통영으로 발령이 났다. 당시는 돈을 버는 사람의 직장이 달라지면 온 집안이 이사를 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다른 선택을 내렸다. 내 고향 친구를 만들어주겠다는 마음으로 혼자 통영으로 갔다. 누나들이 대학교 진학으로 서울로 갔던 터라 여수에 남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아들 한 명 데리고 집을 옮겼으면 여러 계산을 할 필요 없었을 텐데, 아빠는 성인이 되더라도 어울릴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며 홀로 타지 생활을 했다. 덕분에 고향인 여수를 내려갈 때면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꽤 있다.


두 번째 파혼 선언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여자친구를 어떻게 만났나 곱씹었다. 친구가 여자친구 사진을 보내면서 만나보겠냐고 제안했고, 사진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곧바로 ‘오케이’를 외쳤다. 이후 카카오톡에 저장된 사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파투낼까 고민도 했지만, 집이 가까워 한번 만나보자는 마음으로 나갔다. 사진과 다르게 실물이 훨씬 마음에 들어 적극적으로 다가간 끝에 연애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종종 ‘시기에 맞는 인연이 있기 마련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어쩌면 시기적절하게 나에게 맞는 인연이 옆에 있길 바라는 마음이 깔려있었던 것도 같다. 아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겠다는 아빠의 마음, 집이 가까우니 가볍게 만나보자는 마음…. 그때 내린 선택이 지금의 인연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여자친구는 그날 밤에도, 다음 날에도 결혼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만하자’, ‘헤어지자’ 이런 말 들으면 상처받아. 나도 여자야. 씩씩해 보이지만 그런 말에 상처받는다고.”


“알겠어. 나도 그런 말 안 하려고 노력할 테니까 남들하고 비교하지 말고 우리 갈 길만 가자. 비교하면 끝도 없어.”


“나도 비교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런 게 다 보이는 걸 어떡해. 말은 할 수 있잖아. 그럼 날 달래주고 의지할 수 있게 용기 있는 말을 해주면 되지. 한 살 차이지만 나보다 오빠잖아.”


“그래 일단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도 그만두자는 식으로 말 안 할 테니까 서로 말 조심하면서 지내자.”


인연을 유지하려면 날 선 이야기를 삼켜야 한다. 상대가 듣기 싫어할 말은 결국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연애를 할 때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해답에서 종종 벗어난다. 그러다 보면 가까웠던 인연은 멀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말을 꺼내지 말아야 한다. 결혼을 준비할 때 특히 필요한 덕목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다시 파혼을 무르기로 했으니 결혼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일단은 잘 알겠고, 가전 좀 알아볼게. 대략적으로 얼마나 드는지 한 번 확인해 볼게. 어디서 상담받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하니까 나 혼자 갈 수 있는 곳은 혼자 가고, 주말에 백화점이나 쇼핑몰 같이 둘러보고 결정하자.”


내 말에 여자친구는 즉각 답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돈은 있어?”


다시 돈 얘기가 나왔다. 날이 섰지만 차분히 답하려고 애썼다. “가전,가구 전부하면 2000만원 정도 한다는데 그 정도는 있지. 당장 계산할 거도 아니고 가격만 알아보는 거니까 큰돈 들 일도 없지 않겠어?”


“없으면 돈도 같이 얘기해보려고 한 거지. 알아보고 알려줘. 다음 주 주말에 같이 가는 걸로 하자.”


인연을 지키기 위해 삼켜야 했던 말들처럼, 결혼은 결국 마음만으로는 건너갈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도망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았지만 현실적인 이유가 마음을 어렵게 만들었다. 지방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 집값이 서울만큼 부담스럽지 않아 부모님 도움과 대출로 집을 마련하고, 아내가 될 사람이 가전과 가구를 준비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집을 마련하지 못한 시점에서, 적어도 가전과 가구만큼은 감당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돈이 없으면 인연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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