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성실하게 살았는데…
이동수단 그 이상
어느 날 명절에 만난 친척 형이 내게 “자동차 타본 적 있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엄마 차 타봤지”라고 답했다. 친척 형은 “저런 똥차 말고”라며 웃었다. 운전대를 잡지 않는 아빠를 대신해 엄마는 ‘똥차’를 끌고 여수 시내는 물론 장성, 광주로 우리와 아빠를 실어 날랐다. 1990년대 당시만 해도 여성 운전자가 많지 않아 엄마는 이따금 “여자가 집에서 살림이나 할 것이지”라는 말을 들었지만, 똥차를 보내고 다른 자동차로도 자녀들과 남편의 태웠다. 2008년 무렵에야 처음 새 자동차를 뽑은 엄마는 근무지가 바뀐 아빠, 서울에 있는 자녀를 위해 경남 통영, 강원도 동해, 서울과 여수를 오갔다.
망원시장 근처에서 데이트 겸 결혼 준비를 하던 나와 여자친구는 잠시 카페에서 숨을 돌렸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 모두 표정에 여유가 있었다. 나 역시 하루의 긴장이 풀리고 우리 둘 얼굴에도 이유 없이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한 대의 자동차가 지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여자친구가 컵에서 입을 떼고 말했다.
“우리 회사 상사는 XX 타더라. 그런 차 언제 타보냐. 그 차가 아니더라도 지하철 좀 그만 타고 싶다.”
“이따가 지하철 타고 가기 싫으면 택시 타고 가자.”
“택시 타면 멀미 나서 싫다고 했잖아. 앞 좌석 앉으면 괜찮은데 뒷좌석 앉으면 멀미 나.”
“그러면 여기 근처에 그린카나 소카 있으니까 그거 빌려서 내가 데려다줄게.”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언제까지 20대처럼 걸어 다니고 지하철 타고 그래야 되냐 휴….”
여자친구는 종종 우스갯소리로 ‘자기는 차도 없으면서 구두 신은 여자 좋아하는 건 되게 모순적이야’라고 말했다. 내게 자동차가 없다는 사실은 여자친구의 오랜 불만이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외곽으로 가기도 어렵고, 데이트가 끝난 뒤 편히 데려다주지 못했다. 장롱면허였던 나는 친구에게 운전 연수를 받아 공유 차량을 몰긴 했으나, 탑승 전 차량 상태를 촬영해야 하는 시간이나 매번 다른 실내 환경과 냄새는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결혼하면 중고차라도 한 대 사야지. 지금은 일단 이렇게 다니고…. 발 아파서 그래?”라고 말했다.
“발도 아프고 피곤한데 사람 많은 지하철 누가 타고 싶어. 그리고 지금도 자금 사정 빡빡한데 결혼하면 무슨 돈으로 중고차를 사게?”
“축의금 정산하고 그러면 중고차 정도는 살 수 있을 거 같던데. 수를 내 봐야지.”
“내가 피곤할 때 차로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고, 드라이브하면서 기분 전환시켜 주면 좋겠는데…. 이 나이에 그게 참 어렵네.”
‘네가 사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날 선 대화 대신 침묵을 택했다. 데이트를 이어 나갈 분위기가 아니라 여자친구를 설득해 택시를 타고 함께 여자친구 집으로 향했다. 첫 시작과 달리 무거운 분위기에서 데이트가 끝났다.
서른 살이 이후로 자동차는 ‘필수템’처럼 따라붙었다. 모처럼 서울에서 만난 고향친구가 자신의 여사친을 언급하자 “소개해달라”라고 했지만 친구는 “너는 차 없어서 안 돼”라며 단칼에 거절한 적도 있다. 친구는 “외제차 끄는 남자들만 만났는데 차 없는 너를 만나겠냐?”라고 말했다. 소개팅이나 술집에서 번호를 물어 알게 된 여성들 가운데서도 “자동차가 있느냐”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자동차가 이동을 위한 소비재가 아닌 남성의 재력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라는 사실을 서른 살이 넘어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