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여정의 한가운데
기억을 남기는 일
소풍이나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엄마들은 한 손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제 자식을 찍기 바빴다. 필름 한 장을 쉬이 낭비할 수 없었던 까닭에 지금처럼 ‘한 장만 건지자’는 심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아이를 불러 적당한 장소에 세우고, 카메라를 보게 한 뒤 흔들리지 않게 초점을 잡고 ‘찰칵’ 버튼을 눌렀다. 뒤늦게 낳은 아들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던 엄마는 어디서든 사진을 찍기 위해 어딘가에 나를 세웠고, 나는 그게 못 마땅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지금도 옛날 사진을 보면 인상 쓴 사진이 한가득이다.
크고 작은 실랑이는 끊이지 않았지만 결혼이라는 마라톤은 여전히 길 위에 있었다. 우리의 시간을 기록할 웨딩 촬영 당일은 맑고 적당히 선선했다. 의상을 빌리고 메이크업 숍에 가기 위해 이른 아침 차를 빌려 여자친구 집으로 향했다. 예비 장모님은 우리와 사진 촬영과 이를 도와줄 스태프의 간식을 준비해 두 손에 들고 밖에 나와 있었다.
“사진 촬영하는 사람들이랑 다 같이 나눠 먹으라고 많이 담았어. 무겁겠지만 들고 가서 먹으면서 즐겁게 촬영해.”
여자친구도 아침부터 은은한 미소로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웨딩 촬영에 쓸 준비물들을 한가득 들고 나왔다. ‘내가 실을게’라는 말에도 본인이 직접 트렁크에 넣을 만큼 에너지도 충분했다. 평소와는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나오는 그런 기운이었다. 차에 오른 여자친구는 한층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헤어쌤(촬영 과정에서 머리스타일 변경을 도와주는 사람)은 이따가 촬영 현장으로 바로 온대. 우리 샴페인 터뜨릴 거도 다 준비해 놨고…. 뭐 빠진 거 없겠지? 챙길 건 다 챙긴 거 같아.”
이벤트를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겐 웨딩 촬영이 생애 최고 이벤트 중 하나다. 강남에 있는 메이크업 숍에서 원하는 스타일로 꾸미고, 미리 점찍었던 드레스를 입을 수 있는 날. 여자친구는 이를 ‘공주놀이’라며 들떠 있었다.
“남자들은 웨딩 촬영 끝나기만을 바란다고 하는데 어떨 거 같아? 안 힘들 거 같아?”
“나는 괜찮을 거 같은데. 촬영 장소나 콘셉트가 정해져 있으면 좀 재미없을 텐데 우리가 다 정한 거니까. 일단 우리 콘셉트 자체가 역동적이라 재밌을 거 같은데? 사진 잘 나왔으면 좋겠다.”
웨딩 촬영은 실내·외에서 진행됐다. 스튜디오에 마련된 공간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등 파티 분위기를 연출했고, 이날만큼은 거리를 모델처럼 활보했다. 같은 본관(本貫)인 스튜디오 대표 덕에 8시간 정도였던 촬영시간은 약 13시간으로 늘어났다. 야외에서는 샴페인을 터뜨리고, 한강대교 위에서는 자동차 라이트를 조명 삼아 분위기 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헬퍼 일을 10년 넘게 했는데 웨딩 촬영 즐기는 신랑은 처음 봐요. 보통 신랑들은 2시간만 지나도 기진맥진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콘셉트도 두 분이랑 잘 어울리게 짜신 거 같아요. 촬영하는 거 보면 두 분 합이 잘 맞아서 잘 사실 거 같아요.”
헬퍼의 말을 듣고 여자친구는 웃으며 내 쪽을 바라봤다. 하루 종일 이어진 촬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진 몇 장을 더 남겼다. 어린 시절 사진에서처럼 늘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민과 좌절, 열패감이 가득했던 결혼 준비 과정이었지만 이날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