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대한 최근의 생각

월간이리 4월호 <핑퐁>

by 이훈보

황정운님과 글을 주고받는 <핑퐁> 의 4월호 주제

http://postyri.blogspot.com/2018/04/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모전에도 응모하고 또 외할머니의 장례도 치르고 하면서 괜히 정신이 없었습니다. 인문학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는 코너에서 실었던 글입니다.




이달의 주제 ‘요리’는 조금 어려운 듯도 하고 쉬운 듯도 합니다.


생존의 측면에서 본다면 의식주 가운데 ‘식’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니 아무래도 무게감이 있지만, 한편으로 ‘식’이라는 것이 일상의 요소라 별 것 아닌 것도 같고 그렇습니다.


이달의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얼마 전 저희 할머니와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합니다.


저는 최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시골에 자주 가는데, 그 이유는 할머니의 운전연습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10년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이후에 걷는 것도 불편하시고 말씀도 전 같지 않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허리도 굽으셔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자칫하면 할머니가 사회적으로 고립될 염려가 있어 자식들이 바퀴 4개짜리 전동 스쿠터를 사드렸습니다. 제가 그 스쿠터의 운전 선생님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 이유로 시골에 벌써 3주 정도 연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 주의 일입니다. 전날 저녁 할머니가 냉장고에서 소고기를 꺼내 놓으면서 내일 국을 끓여 먹는다는 이야기에 그러려니 하고 말았는데 아침에 미역국을 끓이셨더라고요. 도시의 늦은 기상시간에 익숙했던 저는 할머니의 호출에 잠에서 깨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미리 끓여두신 미역국을 한 술 떴습니다. 기분 좋은 아침 미역국의 맛은 누구나 알만큼 익숙하죠.


국을 끓이는 방식에 조개를 넣거나 감자를 넣거나 고기를 넣거나 혹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미역만으로 푹 우리거나 조리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 먹는 맛을 경험했습니다. 그 맛의 강렬함은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아 같은 식탁에 앉아있던 삼촌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쉽게 추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신듯 하면서도 달콤하고 설명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맛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설탕을 넣었나 보다 했지만 할머니를 가운데 두고 저와 삼촌이 한참 동안 추궁한 끝에 얻은 답은 바로 ‘매실청’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셨습니까 매실청을 넣은 미역국? 그 맛은 정말 세상 누구도 모른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음식 경험이 많다고 생각하고 어지간한 음식을 먹고 놀라는 일이 없는데 그 미역국의 맛만큼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경험이었습니다. 뭐 삼촌이나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죠. 미역국에 매실청을 넣은 할머니는

부끄러움에 머리만 긁적거릴 뿐이었습니다. 결국 소금을 넣어서 먹을 만 해지기는 했지만 놀라운 맛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매실청을 넣은 미역국의 맛은 소금 간을 하고 나니 마치 태국 어느 집의 비밀 수프 같이 달고 시고 짭짤하면서 미역과 소고기가 들어간 기이한 맛을 내는 국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국물 맛을 볼 당시의 저는 이달의 주제가 이미 ‘요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지점에서 이 ‘요리’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이 요리는 무엇인가? 왜 나는 이 요리를 먹어야 하고 왜 할머니는 이 요리를 완성했을까? 기묘한 지점입니다. 맛이 없을 것을 맛이 없을 줄 모르고 만드는 요리라는 것은 요리가 갖는 기본적인 사랑과 희망을 망가트리는 기이한 측면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존재 (나 혹은 타인)에게 맛있게 먹이기 위해서? 도 성립하지 않고 이것이 노력을 한 끝에 맛이 있는 그러니까 행복감을 느낄만한 결과물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기이하죠.


물론 할머니는 위에 적힌 모든 것을 성립시키기 위해 국을 끓였다는 것을 알기에 삼촌과 저 그리고 할머니는 모두 한 그릇을 비워 냈습니다. 하지만 그 국은 누구도 요리라는 이름으로 기억하지 않겠지요. 식당에서 팔 수도 없고 일상적으로 재현되지도 않을 음식입니다. 궁핍해서 먹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풍족하다고 만들 요리도 아닌 묘한 지점의 완성작입니다. 이상한 일이죠. 그 미역국이 요리에 가까워지려고 무수히 앞으로 달려갔다는 사실 말입니다. 도착한 곳은 요리에서 가장 먼 곳이었지만요.


맛있다는 것은 뭘까요? 나에게 행복을 느끼는 지점 혹은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을 재현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요리에서 우리는 맛이 아니라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 걸까요 아주 낮은 단계의 행복. 그러니까 생존이라는 단계? 혹은 그다음의 찾아오는 조금은 맛있는 음식을 맛보았다는 여유로움? 혹은 왕의 조리장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인지의 폭을 넓히는 놀라운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것일까요? 그것이 어느 쪽이든 요리라는 것은 보통 앞의 1.2.3을 차례로 관통하곤 합니다. 그 요리의 곁에서 우리는 그 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요리는 저에게 기이한 맛의 무엇으로 기억되지만 저는 할머니의 요리로 그 미역국을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마음만큼은 확실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많이 경했으면 좋겠습니다. 20년 전에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배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참 즐겁습니다. 스파게티도 아직 못 드셔 보셨다고 합니다. 지금 스파게티를 맛보신다고 해서 경험한 맛을 재현할 수 없게 체력도 떨어지고 몸도 불편해졌지만 의식주라는 굴레 안에서도 웃으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요리가 아니어도 먹는 행위를 통해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의 할머니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생존을 넘어 행복으로 가는 길에 정치가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인문에서 요리는 그런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나와 모두가 즐겁게 먹는 방법으로 가는 제도, 우리는 당장은 아니라고 해도 장기적으로 그런 미래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상급식이라는 말도 과거보다 익숙해졌고 그 사회적 무게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너머의 세계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결국 도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할머니의 미역국으로 시작해 무상급식으로 마무리되어 이상하게 끝을 맺는 것 같지만 인문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제가 요리로 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달에도 재미있는 주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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