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주변> 24화
치매를 앓던 외할머니는 요양원에서 고관절을 다쳐 누워만 계시다 심장마비를 맞았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의사는 언제든 돌아가실 수 있기에 늘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먼저 떠난 둘을 제외한 네 명의 자식들은 면회시간마다 붙잡고 우는 수밖에 없었다.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갔을 때 이모는 의식이 없는 할머니 곁에서 울며 '엄마 다 필요 없어 하나님만 붙잡아.'를 연발하였다. 하도 열심히 이야기를 하여, 나는 어떤 표정도 짓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이모가 할머니에게 붙잡으라는 하나님은 할머니가 60세 무렵부터 함께한 오랜 인연이었다. 누가 권유한 것도 아닌데 할머니는 갑자기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때문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았던 오래전부터의 바람인 것 같았다.
할머니는 시간이나 장소가 맞지 않아 성당에 나가는 일은 드물어도 기도만큼은 성실한 분이셨다. 나는 그 전과 그 후를 통틀어 할머니처럼 열심히 그리고 진심을 다해 기도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조선시대 순교자들이 저렇게 기도했을까?' 싶을 정도로 할머니의 기도는 남달랐다. 내가 본 누구보다 신실하게 기도를 하셨다. 그 믿음이라는 것이 목소리의 청아함이나 자세의 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력이 남달랐다. 간혹 할머니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도 스스로를 반성하게 될 정도로 맑은 기운이 넘쳐흘렀다.
외할머니는 나에게 여러 가지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중에는 종교적 영향도 포함된다. 당시 할머니가 기도 중에 보여주던 모습은 나에게 종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학창 시절 내내 말꼬리를 잡아가며 종교로 논쟁을 벌이던 나는 순수한 믿음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기도 자체로 예술적이었고 완성되어 있었다.
아무튼 그 할머니의 옆에서 이모는 울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90세 즈음, 치매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본인이 종교를 믿었다는 사실 자체도 잊고 말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성모상을 보고도 멀뚱멀뚱하셨고 생명줄처럼 들고 다니던 묵주도 어딘가에 흘리고 다니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할머니가 뒤뜰의 밭에는 꼬박꼬박 나가 풀을 뜯었다.
신심 깊던 할머니. 그러다 믿음도 잊고 숨을 몰아쉬며 눈도 못 뜨는 할머니의 곁에서 하는 이모의 당부는 왠지 모르게 허탈함을 불러왔다. 나는 울다가 그만 웃어버렸다. 입꼬리가 올라가지는 않고 그냥 입에서 바람이 새 나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