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의 주변

스테인리스는 영원히

<책의 주변> 25화

by 이훈보

테플론 프라이팬은 얼마나 편한가.

저렴하고 들러붙지 않아서 큰 문제없이 어지간한 요리는 다 할 수 있다. 나는 귀찮을 때는 라면도 이걸로 끓여 먹었다.

오래 사용하면 코팅이 벗겨지고 몸에 아주 해로운 성분들이 나온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런 건 확 와 닿지 않았다. 어떤 해로운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주 작은 흠결을 발견했다고 해서 프라이팬을 버리고 새로 사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사용하고 또 사용하다 보면 아 정말 이제는 안 되겠다 싶은 시점이 있고 그래서 버려야 할 때면 아이러니하게도 코팅면을 제외한 팬의 나머지 부분들은 지나치게 멀쩡하다. 그러니까 내가 즐겨 사용하는 면만 조금 헤졌을 뿐 나머지 기능은 지나치게 멀쩡한 프라이팬을 몸에 해롭다는 추측 (과학적인 이유가 있지만)을 이유로 버려야 한다.

싸서 사고 구하기 쉬워서 사고 또 가벼워서 사고 쓰기에 편해서 사고 그렇게 자취를 10년 했으니 몇 개의 프라이팬이 나의 곁을 거쳐갔을까. 버리고 또 버리다 문득 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스테인리스 팬을 구입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집에도 스텐팬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 기억 속의 팬은 다 타서 닦기 어려운 그 무엇이었다. 붙고 또 붙어 검어지는 것이 스탠팬 아닌가.

그런데 또 유튜브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잘 쓰면 좋다고 하니 나의 죄책감과 맞물려 나는 스탠팬에 도전하기로 했다. 주변 누구도 스팬팬을 사용하지 않아 지식을 전해주는 이가 없어 조금은 무모하다 싶었지만 누군가는 된다고 하니 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유튜브에서 스텐팬 사용법을 두루 보고 따라 해 봐도 솜씨는 순식간에 나아지지 않는다. 다행히도 팬에 물을 담아두면 어지간한 실패도 수습이 된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나는 실패할 수 있는 푹신한 흙 위에서 안도하고 음식을 망칠 수 있었다. 프라이도 부수고 고기도 부순다. 그리고 아주 조금 자신감이 생겼을 즈음 즐겨먹는 두부 부침을 시도했고 완벽하게 부수었다.

두 번 정도 두부의 벽에서 좌절을 겪고 난 다음 생전 하지 않던 두부의 물기를 키친타월로 제가 하고 팬에 충분히 기름을 바르는 등 갖은 노력을 다 해 두부 부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을 때 먹은 그 두부의 맛은.. 거의 치킨 맛에 가까웠다. 전율이 일 정도로 맛있는 두부 부침이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이거 너무 번거로운데...'

긴 예열도 기름의 안정화도 다 알겠는데 막상 두부에서 실패하기도 했고 또 이렇게 긴 시간을 소모한다는 것이 영 그랬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나의 선택보다 먼저 울컥 치고 올라오는 것을 어쩌겠는가. 이럴 때야말로 버티고 다스려야 한다.

다행히 지금은 나만의 해결책을 조금은 찾아 최근에는 두부도 김치전도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이제 스탠팬은 어지간해서는 나와 함께 갈 수 있다. 김치전을 뒤집을 때 팬이 무거워 스윙이 버거운 단점이 있지만 적어도 불필요한 이별은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테플론도 분명 좋은 발명이었지만 스테인리스는 얼마나 좋은 발명인가. 요즘은 더 예쁘고 좋은 것들을 선호하지만 스테인리스의 그 한결같음은 아름답다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다. 할머니 댁에는 내가 다섯 살 때 쓰던 스텐 양재기가 여전히 존재하고 아마 올해 설에도 우리는 그 그릇에 귤과 밤을 담아 먹을 것이다.

우리는 과연 그 흔한 스테인리스보다 나을 수 있을까?


있다면 그건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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