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주변> 26화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는 구덩이 하나씩은 파고 살지 않을까
혼자서 파려고 한 게 아니라 그저 안에 있는 것 하나씩 내주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걸 수도 있고 아니면 또 혼자 미련 맞게 판 것일 수도 있고 그게 뭐가 되었든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는 구덩이 하나씩은 갖고 살지 않을까
크기가 조금씩은 다를 수 있고 또 때로는 도넛처럼 점점 채워져 마치 없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누구나 하나씩은 갖고 있지 싶다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불쑥 내가 튀어나와 버렸으니까. 그 자리가 첫 번째 구덩이가 되고 나는 활화산 원숭이 처렁 '퐁'하고 튀어나와 폭 들어간 심지를 들여다보며 구덩이가 여기 있겠거니 할 수도 있다.
아무튼 들여다보다가도 두고 갈 수 없어서, 등 돌리지 못하고 넣어가는 것 하나씩 있지 싶다.
내 구덩이를 채우기 위해 남의 속을 파 오기도 하고 남의 것을 채우기 위해 내 것을 퍼 주기도 하고, 삶은 그렇게 서로 피가 나지 않을 만큼 주고받으며 휘청거리며 사는 것 아닐까.
가만 보면 겉이 번지르르한 대나무도 속이 텅 비어 있다. 나이를 들어 구덩이의 아래위로 마디가 지고 그걸 가리키며 굳은살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우리도 몇 마디 정도는 안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본질적으로 도넛이기 때문에 안에는 구멍이 있고 그 허한 곳으로 바람이 인다.
'저는 찹쌀 도넛이에요.' 해 봐야 그것은 공기가 가득한 또 하나의 도넛. 잔뜩 설탕을 발라야 달달하다.
도넛과 구덩이를 한아름 안고 겨울의 시장을 걸어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