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가 맛있어

여섯 입 - 두부가 맛없어

by 이훈보

두부가 맛있다.


하얗고 네모난 그것을 가져다 황태 기름이 폭 우러난 북엇국에 넣어도 좋고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있는 김치찌개에 넣고 끓여도 좋고 마음이 정 급하거나 출출할 때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도 좋고 느긋하게 기름에 지져 먹는 것도 너무 좋다. 그래서 두부를 생각할 때면 늘 즐겁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두부장사를 했던 경험 때문에 따뜻하고 맛있는 두부를 많이 먹어 더 그렇겠지만 아마 그런 경험이 없더라도 두부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것이나 참 잘 먹었다.


그런데 요즘 두부가 맛없다.


사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동네 슈퍼에서 판 두부를 슥슥 잘라주던 일이 너무 드물어지고 시간이 흘러 대기업에서 유통하는 잘 포장된 두부가 나오기에 그러려니 했다.


나는 조금 더 단단한 두부를 먹고 싶어서 마트의 두부를 잘 골라봐도 찌개용이나 부침용이나 큰 차이가 없었고 (이걸 차이가 있다고 하는 사람은 진짜 -_-+) 맛은 더 대동소이해서 브랜드와 무관하게 두부의 형태를 띠고 두부의 맛을 지닌 그 무엇 정도라고 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것을 경험할 일이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내 기억 속의 두부가 지나치게 미화된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망원시장을 걷다 할머니가 판에서 자른 두부를 사는 모습을 보고 나도 홀린 듯 한 모 사고 말았다. 검정 봉지 밖으로 느껴지는 두부의 뜨끈함이 마음 한 구석까지 은근히 퍼져갔다. 덤으로 비닐 사이로 올라오는 두부 향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혹시나 쉴까 싶어 걱정이 되었지만 퇴근시간까지 두부는 별 일이 없었고 그날은 아주 맛있는 두부 부침을 먹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두부 맛 때문에 나는 간혹 동네에서 두부를 살 때 우울해지곤 했다.


왜 그럴까?


막연하게 마트의 두부가 맛이 없다고 하기는 쉬워도 이유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조금 생각을 해보았더니 두부를 만드는 방법과 두부를 유통하는 방법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두부는 제조 과정에서 물기를 짜는 게 무척 중요한데 대기업에서 만들어 마트에서 구입하는 두부는 물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팩에 담겨 있다. 이 유통방식은 과거 두부를 사다 물그릇에 담아 쉬지 않게 하는 보관 방법에 기인한 것으로 얼핏 보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그 시절의 두부는 두부가 단단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사다가 물에 넣어두는 두부는 물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단단했다. 그런 두부가 물 안에 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기업의 꾀가 담겨있다. 물을 넣고 두부를 넣는 게 당연하니 이를 하나의 제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에 담겨 유통되려면 두부가 단단해야 한다. 그런데 기업의 두부는 조직이 얼기설기해 두부 안에 물을 잔뜩 머금게 된다. 스펀지와 같다고 해야 할까. 물을 다 따라 내고 두부의 물을 짜면 물이 계속 나온다. 나는 타월로 물기를 닦아내다 문득 이 상품 안에 담긴 콩의 무게(두부)가 몇 그람인지가 진지하게 궁금해졌다.


그 두부 한모에는 과연 콩이 얼마나 들어있는 것일까? 콩 성분이 적은 만큼 맛도 덜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묽은 두부를, 순두부와 모두부 사이의 형태만 닮은 그 무엇이 우리에게 남겨진 이유는 무엇일까. 겨우 이런 미래를 위해 지역의 두부공장들은 모두 사라져야 했을까?


내가 사 먹는 두부들은 비싼 물건이 아니다. 밥상 물가 때문이라고 하기도 그런 게 시장의 두부나 마트의 두부나 모두 천 원으로 동일한 가격에 그 가격대를 유지하려면 분명 둘 다 수입콩을 쓸 것이고 그럼 원재료의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한 냉장 유통비로 인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하지 말자. 요즘 냉장차에 두부만 오는 것도 아닐 것이고 이제 그런 콜드체인에 추가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회도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시장의 두부장수가 구할 대두의 가격보다 수십수백 톤을 구입할 대기업의 대두 원가가 비쌀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같은 가격에 비등한 물건을 만들어낼 여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왜냐면 시장의 두부는 밀도와 크기가 마트의 그것보다 월등했으니 크기가 버거우면 좀 작더라도 제품의 수준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부를 아주 쫌만 더 맛있게 만들어주세요! 와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두부가 너무 맛이 없다 개선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두부라는 음식에 담긴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음식이 탄생하게 된 맛의 지점이 있는데 그것이 아주 퇴색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저 그런 어떤 것으로 남는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맛있는 두부는 깜짝 놀랄 만큼 맛있다. 비단 두부뿐만 아니라 음식 문화로 자리 잡은 많은 음식의 원형이 그렇다. K문화가 세계로 뻗어가면 뭐하겠는가 다음 세대가 경험하는 문화가 백지장처럼 얇아져 가고 있는데...


이런 문제는 비단 두부의 문제만도 아니다. 고추장도 마찬가지다 성분 함량을 살펴보면 한숨만 나온다. 고추장이 한국의 어떤 것이라고 백날 이야기해봐야 시중의 고추장의 함량에는 물엿과 같은 당류나 미묘한 고추 페이스트가 잔뜩 들어가 있는데 거기에서 무슨 한국의 문화와 정신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건 그냥 껍질뿐 아닐까.


사회가 발달하는 데는 속도도 필요하지만 단단한 바닥도 필요하다. 이제 우리가 이만큼 성장했으니 바닥을 한 번쯤 되짚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해서 설움을 털어놓으며 마무리 짓는다.


끝.


PS.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음식평론가가 했어야 한다고 보지만 없어서 내가 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7525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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