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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훈보 Feb 04. 2022

당신과의 커피 한잔

추락하는 별에서 7화

살아서 애틋했던 날보다 다투던 날이 많았던 부부관계가 할아버지의 심장마비로 마무리되었을 때. 우리가 앞으로 꽤나 정성스러운 제사를 지내게 될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제사를 준비하는 풍경의 이야기이다.


누가 먹는지도 누가 만드는 지도 궁금한 제사용 과자를 제기에 담던 호산은 손가락에 뭍은 설탕을 털며 말했다.


"옥춘까지는 그래도 참겠는데 이 수박 젤리랑 무지개 젤리는 정말 안 사도 될 거 같아요. 곰젤리 같은 거도 있잖아요. 저건 할아버지 살아생전에도 잘 안 드셨는데 다음에는 웨하스나 초코파이를 올리는 건 어때요?"


하지만 그것도 벌써  년째 하는 이야기였다. 재료를 준비하는 사람과 투덜대는 사람이 다르고 각자 준비의 기준이 다르니  나누는 대화다. 그렇게 적당히 소란스러우면서도 크게 시끄럽지 않은 상차림의 순간은 평소와 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동그랗게  깎은 과일과 머리가 띵하도록 부쳐놓은  그리고 정성스레 끓인 떡국 들을 대충 인터넷에서 찾은 제사상의 이미지와 비슷하게 배열한다. 그래서일까 상차림을  때마다 조금씩 배치가 달라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두는  자리가 어떤 격식을 위해서라기보다 할머니가 지니고 있는 선을 지키면서도 즐거운 한때로 남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얼추 정리가  것을 확인한 호산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꿈에는 나와요?"

"안 나와."


할머니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식으로 퉁명스레 답했다. 멀리서 넥타이를 매던 둘째 삼촌이 끼어든다.


"나는 나왔어. 할아버지가 저기 꽃이 가득한 다리를 건너가는 꿈을 꿨지."

"그건 삼촌이 살아서 효도를 못해서 미안해서 그래요."

"맞아 맞아."


식탁에 앉아 있던 작은 엄마가 맞장구를 쳤다.


"가만 보면 덩치에 비해 은근 마음이 여리시다니까."

"요즘은 드라마 보면서 눈물도 흘려."


작은 엄마는 나물을 옮겨 담던 손을 멈추고 또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할머니 왜 이렇게 열심히 차리는 거예요?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그렇게 많이 싸웠잖아."

"..."


할머니는 말없이 제사상을 한번 둘러본다.


"계란! 계란이 빠졌다."


첫째 아들이자 짓궂기로 유명한 호산의 아버지가 계란을 내려놓으며 할머니에게 또 말을 건다.


"그나저나 엄마. 너무 일찍 돌아가시면 안 돼. 요번에는 다행히 별 탈 없이 퇴원하셨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건강하게 몇 해 더 사시다가 가야지. 너무 빨리 가면 안 된다고! 알았지?"

"..."

"왜?"

"으이구 빨리 죽어야지."


할머니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한껏 투덜대는 투로 말했다.


"엄마. 왜 그런 생각을 해?"


뇌졸중을 앓은 이후로 말이 조금 더뎌진 할머니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엄마 왜 그런 생각을 해."

"할머니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호산이 할머니의 굳은 손을 주무르며 물었다.


"오래됐지!"


죽을 생각을 하는 이의 말투치고는 꽤나 힘이 넘쳤다.


"언제부터? 엄마 몸이 불편한 다음부터?"

"그랴."

"그래도 오래 사셔야죠."

"..."

"그리고 맞다 엄마. 나중에 돌아가시면 아버지 옆에 묻어드릴까? 합장으로 해 드려?"

"아니. 나는 저기 아무 데나 뿌려줘."

"강 같은데?"

"응. 훨훨 날아가게 아무 데나."

"그런데 그러면 나중에 자식들이 찾아기가 힘들데."

"찾아와서 뭐해?"


제사만 치르면 얼른 성묘를 가라고 재촉하는 할머니 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그래도 애들이랑 동생들이랑 엄마 보고 싶으면 갈 데는 있어야지."

"그냥. 아무 데나 뿌려."

"그런데 할머니. 저기 강 같이 넓은 데다 뿌려 놓으면 막상 자식들이 가서 보면 휑해서 또 그렇데."

"... 그래도 시원한데 갖다 뿌려 훨훨 날아가게."

"할머니 사는 게 답답했어?"

"어."


몇십 년을 흙과 함께 한 마을에서 산 할머니의 마음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진작에 요양원에 간 옆집 할머니 정도나 이해할까 말까 할 일이다.


"그럼 할머니 들고 다니면서 속초에도 조금 뿌리고 태국에도 조금 뿌리고 제주도에도 조금 뿌리고 할까?"


호산의 이야기에 친척들은 웃음을 터트린다.


"아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많잖아."

"그런가? 그럼 할머니 몰래 합장해요."

"그나저나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요."


멀리서 물을 마시던 작은 엄마가 또 조그맣게 말했다. 아무래도 시어머니의 일이라 큰소리로 말하기는 어려운 듯했다. 가족들이 모두 한바탕 웃는다. 제사를 마치고 식사 준비를 위해 상위의 음식을 접시에 옮겨 담던 호산이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 참 열심히야. 할아버지 살아 계실 적에는 우리가 큰 집이 아니어서 제사 한 번을 안 지냈는데 이렇게 정성스럽게 차릴 줄 몰랐네."

"이렇게 열심히 해야 나중에 네가 보고 배우지. 나중에 아버지도 이렇게 든든하게 차려줘야 한다. 알았지?"

"아니 아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꿈에도 안 나오신다는데?"

"그래도 와서 드실 테니 잘 차려드려야지."

"아빠 내가 미리 장담하는데. 아버지 돌아가시면 첫 해에는 커피 한 잔을 올릴 거야. 방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한 다음에 정성스럽게 핸드드립으로 내려서 커피 한 잔 딱 올려놓고 절할 거야."

"야! 그러면 아빠 배고파서 안돼."

"그러니까 커피 한 잔 드시고 배고프면 그날 오셔서 아들아 배가 너무 고프다 하시면 내가 정말 잘 챙겨드릴게."


호산은 그렇게 말했지만 만약 아버지가 정말로 꿈에 나온다면 매 끼니 저녁을 차려줄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중에 돌아가시고 나서 집 주소 까먹지 말고 꼭 들러서 이야기하셔요."

"아니 이놈이 벌써부터 아버지 굶길 생각만 하고."

"아니라니까 꼭 오셔서 이야기하세요. 그러면 내가 저기 음식들보다 더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서 명절이든 아니든 계속 챙겨드릴게."

"아냐. 그럴 필요 없어 남들처럼 중간만 해."

"아냐 아빠. 나는 더 잘해주고 싶어서 그래."

"그나저나 아까 절할 때도 빌었는데 할아버지는 저기 하늘나라 게시판에서 로또번호 같은 것 좀 보시면 알려주러 오시지 영 안 오시네."

"할아버지가 로또가 뭔지는 아실지나 모르겠다. 게시판에 뭔 숫자가 막 써있고 남들은 막 적어가는데 그냥 휙보고 지나치실지도 몰라."

"그건 또 그러네."


호산은 무리한 소원을 빌었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어여 밥 먹자."


어느새 할머니는 밥상 앞에 앉아 계셨다.


"엄마. 배고프신가 보다. 다들 밥 먹읍시다."

"그랴 다들 얼른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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