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사전을 읽기 시작했다.

허황된 이야기의 시작,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아요!

by 이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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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년 전쯤, 홍대에서 연남동으로 넘어가는 3거리 근처에 중고책 서점이 있었다. 지금은 공원이 되었고 그 전에는 두리반이 있었던, 시위로 사람들이 모이기도 했던 홍대 철길 근처에 있던 중고책 서점에서 고른 초등 새 국어사전 (컬러판). 98년에 나온 9800원짜리.


인조 가죽 질감에 파란 컬러 판이라고 적힌 세 글자가 얼마나 책을 만만하게 보이게 했는지 읽어보겠다고 덜컥 집어 든 것이다. 가격은 3천 원.


지금은 내가 갖고 있지만 그 전에는 어느 이씨 형제가 물림을 해서 썼었는지 사인펜으로 쓴 성륜과 채륜이라는 이름이 책 아래에 적혀있다. 현재는 나의 소유지만 나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은 내 물건.


그 사이 몇 번 펼쳐 본 일은 있었다.


그냥 책장을 정리하다가 눈에 보이면 '이걸 다 읽겠다고 샀었지..' 하고 곱씹다가 다시 처박아두는 그런 용도의 사전. 글을 쓴다는 욕망의 유치함이 응축된 형태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그래서 올해는 이것을 읽어보자고 집어 들었다.


내년에는 정말로 읽어보지도 못하고 글도 쓰지 않을지 모르니 절박함의 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보면 두꺼워서 못 읽을 것 같지만 2년 전에는 그렇게 성경을 읽었으니 이것도 올해에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혼자서 묵묵히 사전을 읽어보자고 마음먹고 몇 장을 읽었는데, 채 열 장을 읽기도 전에 나는 샛길로 빠져버렸다. 몇 단어를 읽다가 다른 생각에 빠져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무시하고 읽으면 될 줄 알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채 두 장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단어를 또 만나고 보니 사전을 읽는 여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의 아리랑에 대한 연구처럼 생각을 적어두지 않으면 자주 하게 될 생각들이 다 증발해 버릴 것 같아서 눈에 걸리는 단어를 상상하는 순서와 방향을 적어두어야겠다는 생각에 대뜸 매거진을 개설해 버렸다. 그러니까 사전의 순서를 따라가면서 특정 표현이 왜 눈에 거슬리는지 어떻게 그 단어를 보고 생각을 이어가는지를 주욱 기록해 둘 셈이다. 아주 짧은 시리즈가 될지도 모르고 아주 긴 시리즈가 될지도 모르지만 읽기에는 분명 심심한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쓰는 나는 죽어나지 싶다.


돈 안 되는 일을 사서 하는 재주는 대체 누가 나에게 준 것인가... 쩝.


1화 예고. '가라-'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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