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두 잔, 동네 한 바퀴

망원동의 어느 곳

by 이훈보
3.jpg 수요일의 첫 커피

화요일 까지만 해도 수요일에는 지하철 거리로 세 정거장이 넘는 곳으로 멀리멀리 도망갈 줄 알았지만


나는 수요일 오전에 그 어느 때보다 멍청하고 한가롭게 밥을 챙겨 먹고 있었다.


그리고 또 멀지 않은 망원동으로 길을 나섰다. 대신 처음 가보는 카페에 갔다.


그곳은 망원 시장 인근의 카페로 밖에서 보면 회색이 도드라지는 카페다. 가게의 간판을 본 것 같아서 좀 더 정확하게 묘사를 하기 위해 사진을 확인해 보니 가게는 입구부터 하얀색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하하 이런.. 나는 왜 그곳을 회색으로 기억하고 있었을까?


나는 이곳을 과거 두 번 정도 들렀었는데, 그때마다 시간이 맞지 않아 실제 유리문 안으로 들어간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지하로 향하는 네 개인가 다섯 개의 계단을 내려가 어색하게 커피를 주문했다.


원두는 복잡하지 않게 한 종류 사장님으로 보이는 남자는 꽤 젊고 싹싹한 얼굴을 처음부터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갈 때는 처음 보는 나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도 건넸다. 그런 싹싹함으로 응대를 한다면 잘 되지 않을 수 없는 카페 이지 싶다.


처음 방문했고 나 이외에도 손님이 있어서 2인용 테이블이 있다면 한쪽 구석에 앉고 싶었지만 8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고 말았다. 카페에서 오래 있는 편은 아니지만 노트북을 들고 간 탓에 꼭 높이가 있는 테이블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노트북을 펼칠 수 있을 만한 높이의 테이블이 한가운데의 8인 테이블 밖에 없었다.


내가 편하게 물건을 풀어놓을 자리가 스무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카페에 한 곳 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다고 할까 슬프다고 할까. 그래도 가능하면 손님이 앉을 수 있게 8인 테이블의 끝 모퉁이에 앉아보려 했으나 제일 끝자리는 오른 다리가 기둥에 닿아 앉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8인 테이블의 한쪽 모서리 의자 두 개를 차지하고 말았다.


커피를 받아 마신다. 그 카페는 처음이었지만 그 카페의 커피 맛은 이미 알고 있어서 놀라지 않고 천천히 해야 할 이들을 생각하면서 마셨다. 오늘은 새로운 글을 써보려던 참이어서 들고 간 컴퓨터가 기대하는 만큼 빠르게 작동하기를 바랐다. 이렇게 글을 열심히 쓸 줄 알았으면 좀 더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골랐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가끔은 최소한의 속도가 부족하다.


'내가 알던 그 커피가 매장에서는 이렇게 나오는구나.'


알고 있는 커피맛이었지만 또 다른 의미로 생각하게 만든다. 이 컵이 베스트 인가? 하는 생각은 아주 잠깐 했다.


가게에서 직접 만든 디저트를 팔고 있어서 단내가 났지만 거북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케이크이나 빵을 즐겨 먹는다면 하나쯤 주문해 보고 싶은 기분 좋은 냄새였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노트북과 사전을 펼치고 앞으로 이어질 허황된 시리즈의 뼈대를 잡아간다.


사전을 읽고 멋대로 핑계를 대며 아무런 권위도 없이 시끄럽게 떠들 것을 생각하니 내가 봐도 무모한 시리즈가 될 것 같다. 그래도 뭐 수요일이니까 나는 산책을 하러 나왔으니까 이렇게 다소 허황된 기획도 웃고 넘어갈 일이다.


글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망원으로 나와야 했던 다른 일을 처리하고 돌아가는 길에는 지난번에 들렀던 7:3의 카페에 들러 커피를 다시 마셨다. 첫인상보다는 선명함이 덜해 아쉬웠지만 내가 왜 이곳에 다시 오려고 했는지는 곱씹어 볼 만했다.


홍대와 합정 사이.


아마도 한때 불고기 브라더스였던 건물에 철거 과정에서 불이나 검은 연기가 여의도까지 보였다고 한다. 나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런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아주 가까운 불행과 불안도 모른 채 나는 걸어간다.


마지막 그 카페에서는 라떼를 마셨어야 했을까?


어쩌면 마지막으로 라떼를 마시기 위해 한번 더 들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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