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온 메일

거절 그 후

by 이훈보

1987을 보고 돌아와 잠을 잤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쓴 글.


내가 브런치에 처음 쓰고 싶었던 글은 나의 3가지 매거진 중에 첫 번째 매거진 <그늘의 인간> 시리즈였다. 이 시리즈는 책으로 만들 생각이어서 정말 열심히 썼고 진행도 공개되지 않았을 뿐 거의 끝에 다다라 있다. 개인적인 아쉬움(출판에 대한 기대) 때문에 공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하지만 <그늘의 인간> 시리즈는 브런치 심사에도 통과하지 못해서 브런치 작가 조차 되지 못했다. 그래서 살짝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기획해 둔 원고의 3편을 보내 통과를 받고 정작 업데이트는 <그늘의 인간>을 진행했었다. 이게 늘, 조금 창피하다.


<그늘의 인간>을 거의 다 마무리 지었을 즈음 유명 출판사들에 원고를 보내 보았지만 영 통과가 되지 않았다. 나의 글 솜씨가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지인은 내가 너무 크고 유명한 출판사들만 지원하는 게 아니냐고 타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정말 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출판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인지도를 출판사를 통해 채우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나의 개인적 명성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주 거대한 이야기를 뻔뻔하게 지껄이기에 나의 사회적 지위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글의 옳고 그름은 그 다음의 문제인 것 같다.


그래서 여러 공모전에 지원하는 글을 쓰게 되었고 뭐 결과는 줄줄이 낙방.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시나리오를 쓰고 2017년 8월부터 닥치는 대로 공모전에 응모했다. 그 사이 커피 볶는 것도 배우고 때로는 아주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오랜 시간 자전거를 타기도 했었다. 열심히 산다기보다는 버둥거리는, 개인적 기준으로는 혹사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반년을 좌절로 시간을 보냈는데, 어제 갑자기 아주 예전에 보낸 출판사에서 검토 후 거절하게 되었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많이 늦었지만 메일을 보내준 마음이 참 고맙다.


그 메일을 받고 보니 문득 내가 너무 일찍 포기를 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사이 나의 글쓰기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긴 알았다.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형식의 글이 본질에는 가까워질 수 있지만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실제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글을 쓰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좀 더 팔리는 글이란 것은 두루뭉술해도 그런 구석이 있다. 그런데 그런 책은 내가 아니어도 쓸 사람이 많고 그분들의 솜씨는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리고 또 어쩌면 자신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왜 <그늘의 인간>이라는 글을 기획하게 되었을까.


나는 치유가 없는 위로 그것보다는 그다음으로 가고 싶었다. 뻔한 악순환 속에서 대책 없는 위로 만으로 세상을 더디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물론 내 글이 세상을 진일보할 확률은 낮지만 적어도 나는 <그늘의 인간>을 100만 명이 읽는다면 이 나라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황당한 포부 정도는 가져야 인간사의 고민을 한방에 정리한다는 뻔뻔한 시리즈를 근거도 없이 쓸 수 있다.)


나는 문제를 가능한 확실히 해결하고, 각자가 소모적 위로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힘을 축적하고 또 그 여유 안에서 서로를 돕고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그런 단계로 가고 싶다. 개인의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말도 안 되지만 솔직히 그렇다.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도 <그늘의 인간> 후반부에 적어놓긴 했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조금 더 빨리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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