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로-스팅

실패랍니다.

by 이훈보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날이 늘 맑을 리도 없고 비가 와도 공기가 좋으면 산책이란 것은 슬쩍슬쩍하기 마련이건만 공기가 나쁘면 산책의 묘라는 것이 영 찾을 수 없게 된다.


먼 곳이 뿌옇고 가까운 호흡이 가쁘다.


분명 어제까지는 오늘 바쁠 예정이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무척 한가롭다. 오래전 발매된 베스 기븐스의 솔로 앨범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약속이 하나 있었는데, 연락이 없고 또 먼지가 너무 많아서 약속을 확인하는 것도 애매한 것 같아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잠시 로스팅을 하러 다녀왔다.


지인이 생두를 사준다는 말에 신이나 덜컥 시작해버렸다. 이걸로 맛을 내라는데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소심하면서도 무모한 것이 장점이니 또 뻔뻔하게 어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그런 마음으로 수업이 끝난 학원에서 살짝 눈치를 보면서 다섯 배치를 돌리고 왔다. 아마 상대방은 내가 눈치를 보는지 모를 것이다. 태연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로스팅을 하지만 노트에 적는 글자는 평소보다 더 꼬불꼬불 하다.


중간에 맛을 보니 영 쓸만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가스 때문일 것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켜본다.

한 이 삼일 두고 망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면 될 듯하다. 그런데 망했을 것 같다.


다시봐도 창 밖이 뿌옇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모두 존경한다. 마주치는 서로를 치켜세워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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