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와 엄마와 나의 나무
외할머니 댁의 은행나무는 내가 어린 시절에도 나이가 500살이 훌쩍 넘어있었다.
이번에 가보니 아마 520살이라고 적은 표지판이 30년 전. 지금은 550살이 넘었다.
외할머니는 지금 외할머니 댁이라고 부르는 집에 열여섯 살에 시집을 왔다. 인근의 어딘가에서 왔다고 하는데 정확히 그 위치를 듣지는 못했다. 어렸을 때에는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워야 했다고 했다.
광복을 맞고 625가 지나고 2018년.
자전거도 귀하던 시대에 태어나 승용차가 흔하고 비행기로 해외를 다니는 시대를 거치는 심정은 어떨까. 종이도 귀하던 시절에 태어나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는 마음은 어떨까. 나는 가끔 외할머니를 생각하다 그런 생각을 한다.
외할머니는 지금 병원에서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고 계신다. 그래도 얼마 전 까지는 눈도 뜨고 계셨고 치매기도 있었지만 요양원이라는 곳에서 아들딸들이나 손자 손녀들이 오면 드문드문 기억을 했다 잊었다 하곤 했는데 그것도 다 지나고 화요일부터 눈을 뜨지 못하고 계신다.
숨만 쌕쌕.
중환자실에서 손을 잡고 입을 앙다물고 있는데, 자꾸 하나님만 찾으라는 이모의 말이 번잡했다.
할머니는 60이 넘어 성당을 다니셨는데 하루도 빠짐 없이 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90이 넘어서는 자신이 종교를 믿었다는 사실도 잊으셨다. 그 후로 집에 덩그렇던 성모상이 얼마나 무색했는지... 그런 외할머니에게 이모는 자꾸 하나님만 붙잡으라고 했다.
이모가 울며 하나님을 찾으라는 통에 나는 할머니 이름도 못부르고 서있다 면회시간을 다 보냈다. 그렇게 손만 잡다가 나와서는 외할머니댁에 들어가 친척들과 밥을 먹었다.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어른들 사이에서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다들 여전히 대화를 나눌 때 걸어 나와 마을 입구의 나무를 보았다.
큰 은행나무. 오래도 살았다. 550년. 그 안에서 또 무슨 싹이 트고 있다.
할머니가 시집 올 당시에도 엄마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내가 외할머니 댁에 놀러 왔을 때에도 우뚝한 은행나무 아마 내가 죽은 다음에도 우뚝할 것이다.
나무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 나무가 외할머니나 엄마의 마음을 서럽게 했을 날보다 위로했을 날이 많지 않겠나. 나도 그렇다. 어린 시절부터 여전히 우뚝하니 서 있는 게 위로가 된다.
1번 트랙을 만들 때도 은행나무 생각을 자주 했었다. 엄마는 이 앞을 지나서 학교에 다녔고 이 앞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기가 싫었다고 했다. 나무가 무슨 잘못이 있겠나. 뿌리내린 마을에 외할머니가 시집을 왔고 엄마가 태어나 살았을 뿐이지.
그냥 다 우연이다. 그런데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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