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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혜옹주>를 봤습니다.

'이별'하는 덕혜옹주의 삶

by 도시파도

티켓쿠폰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시간이 되는 영화를 찾다가, 이제서야 <덕혜옹주>를 보게 됐습니다. 개봉이 3주가 지났지만, <덕혜옹주>를 보기 미루게 된 건 2가지 이유였습니다. 하나는 '일제강점기'가 시대적 배경인 영화는 이미 많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런 영화를 허진호 감독이 맡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영화는 이미 많이 있습니다. 최근만 해도 올해 초에 나온 이준익 감독의 '동주'라든가, 작년에는 최동훈 감독의 '암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자칫 잘못 만들면, 거의 비슷한 패턴의 영화, 뻔한 영화가 되기 십상입니다. 이 영화도 뻔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하 '역사 영화')를 '허진호' 감독이 맡았다는 것에서 저는 경계하면서도 한편 기대했습니다. 허진호 감독은 한국에선 멜로 영화를 가장 잘 만들고, 가장 성공시킨 감독입니다. 그의 대표작은 멜로 영화 장르에선 손꼽히는 수작들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행복> 등이 그것들이죠. '감정을 잘 만지는 멜로 영화를 만드는 허진호 감독이 역사 영화를 어떻게 연출할까?' 장르가 다르기 때문에 뻔한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아니면 그걸 뛰어넘어 색다른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2가지 감정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결론을 말하면 허진호 감독의 승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장점으로, 역사 영화의 단점을 파훼하고 승화시켜 <덕혜옹주>를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덕혜옹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놓인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덕혜옹주의 삶을 얘기하기 위해 일반 관객(저를 포함한)에게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는 건 불가피합니다. 대부분의 역사 영화는 이 부연 설명에 영화의 러닝타임을 꽤 쏟아야 합니다. 그래서 원치 않게 시간을 써버려 나중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거나 줄여야 하는 불상사가 생깁니다. 그러나, 허진호 감독은 덕혜옹주의 역사적 상황을 관객에게 보편적 상황으로 설명합니다. 그건 "이별"입니다. 덕혜옹주는 계속 소중한 누군가와 이별하게 됩니다. 덕혜옹주의 삶은 '이별'의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별의 계기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인 것이죠. 감독은 영리하게 관객들을 이야기로 끌어들입니다. 그 다음 자신의 장점으로 이별에서 피어난 감정을 잘 어루만져 관객에게 덕혜옹주의 처지를 알립니다. 거기에 일제강점기의 특수한 상황을 알게 된 관객에게 덕혜옹주의 '이별'은 더욱 더 생생하고도 사무친 감정을 전달합니다.


<덕혜옹주>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특수적인 역사 상황을 설명하고, 특수적인 역사 상황은 보편적인 감정을 심화시키는 선순환을 구성으로 한 영화입니다. 여기서 저는 허진호 감독의 관록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덕혜옹주>는 역사 영화임에도, 다른 역사 영화와는 색다르면서도 보편적인 휴먼 드라마로 남겨졌습니다.


에필로그)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덕혜옹주의 부모님인 '고종(백윤식 분)'과 '양귀인(박주미 분)'이었습니다. 특히 백윤식 씨의 연기는 적은 분량이었지만, 그 임팩트는 매우 강력했습니다. 양귀인과 덕혜옹주(김소현 분)의 장면은 영화 속 가장 애틋한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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