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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최악의 하루>를 봤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이 이야기는 해피 엔드입니다.'

by 도시파도

'거짓말'에 대한 기억

예전 저는 숙제를 자주 미루는 초등학생였습니다(물론 지금도 그럽니다만). 부모님께서 '숙제 다 했냐'고 물어보시면, 숙제를 하기 싫은 마음에 다 했다고 자주 거짓말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숙제 기한은 다가오고 숙제는 여전히 그대로기에 결국 전날 밤에 부모님께 진실을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온갖 질타를 받으며, 손을 빌려 겨우겨우 숙제를 해 갔습니다. 사람들은 셀 수 없는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을 남에게 들켜버려 진실을 말했을 때보다 더 거대한 파도를 만나게 됩니다. 사실 초등학생 때 이야기는 매우 '귀여운' 사례였죠. 영화 <최악의 하루>는 이거보단 덜 귀엽습니다.


거짓말의 2가지 의미: Lie & Fiction

<최악의 하루>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입니다. 이 말은 2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최악의 하루>는 '거짓말(lie)'을 다뤘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최악의 하루> 자체가 '거짓말(fiction)'이라는 뜻입니다. <최악의 하루>의 스토리는 인물들의 '거짓말'로 채워져 있습니다. 정말 거의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 중 대표인물인 '은희(한예리 분)'와 '료헤이(이와세 료 분)'의 거짓말을 얘기하겠습니다.


은희는 복잡한 연애관계 속에 있는 배우지망생입니다. 그녀는 '찌질함'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찌질함의 남자 버전이라면, 이 영화는 찌질함의 여자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찌질함'은 두말 할 것 없이 영화 속 최고의 유머코드입니다. 그러나 '찌질함'은 웃음거리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녀의 '찌질함' 밑에는 사람의 외로움이 있기에 공감의 코드가 되고, '찌질함'은 그녀가 남자들에게 '거짓말'하는 이유로 이야기의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거짓말은 앞서 말했듯이 불행의..(읍읍)


료헤이는 어떨까요? 료헤이는 유명하지 않은 일본의 소설가입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아 계속 '좌절감'에 빠집니다. 그는 좌절감에 벗어나고자 자신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은 오래 가지 못하고 흩어지고 말죠.


그렇다면, 그들은 '찌질함'과 '좌절감'을 그대로 둬야 하는 걸까요? 그렇게 해도 영화는 끝낼 수 있었을 겁니다. 재밌으면서도 약간 씁쓸한 영화로... 하지만, 영화는 인물들을 폭력적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나가는 길을 알려줬습니다. 그 길은 다시 한 번 '거짓말'입니다. 정확히는 거짓말의 두번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건 누군가를 속이는 거짓말이 아닌 의미를 만드는 거짓말입니다. 영어로 하면, Lie가 아닌 Fiction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 Fiction은 다름 아닌 '예술'입니다. 그렇게 보면, 은희가 배우지망생이고 료헤이가 소설가인 게 단지 우연은 아닌 거죠. '예술'이라는 Fiction으로 '그들'은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은희와 료헤이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다른 등장인물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들'이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또 하나의 결론이 나옵니다. 이제 제가 <최악의 하루>가 '거짓말'이라는 말의 2번째 의미를 설명할 때가 됐군요. <최악의 하루>는 예술의 한 장르인 영화로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최악의 하루>는 Lie는 아니죠, Fiction입니다. 위 2가지 의미를 합치면, 이런 말이 됩니다. "<최악의 하루>는 Fiction을 긍정하는 Fiction이다. 즉, Fiction의 '자기긍정'입니다."


그러니까 "걱정마십시오, 이 이야기는 해피 엔드입니다."


에필로그)

본문에선 짧게 썼지만, "찌질함" 코드는 정말 영화의 활력소였습니다. 그걸 가장 잘 표현한 캐릭터는 '은희(한예리 분)'가 아닌 '운철(이희준 분)'이었습니다. 저는 거의 운철이 나온 장면마다 웃었습니다. 특별출연이라고 하는데, 짧아서 보단 '특별'한 출연이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료헤이 역을 맡은 이와세 료는 목소리가 너무 좋더군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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