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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후드 Dec 17. 2020

문과인 내가 과학책을 읽는 이유

과학을 모르는 채 믿는 우리가 과학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고등학생 때 나는 수학을 배우기 싫어서 문과를 선택했다. 무언가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것이 싫어서 선택했다. 의외로 '피하는' 선택은 고등학생 이후에도 꽤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야기'를 좋아했었다. 문학에 흥미는 별로 없었지만, 세계관을 다루는 철학과 선악이 흐려지는 역사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대학생이 되고 나서 몇 년이 지나, 나는 과학책을 읽고 있었다. 왜였지... 원초적으로는 '아인슈타인이 왜 그렇게 대단한 건데?'라는 의뭉스러운 질문이다. '피카소가 왜 그렇게 대단한 건데?'와 완전히 같은 이유였다.


 대단하다는데 그 이유는 '상대성이론'이나 '광전효과'를 발견해서라고 한다. 근데 그게 뭐? 흠...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럼 파야 겠다. 도서관에서 헤매고, 그 중에서 4~5권을 차례로 읽었다. 대충은 알았다. '고전역학'의 마지막 남은 퍼즐인 '빛'을 설명하던 도중, 마지막 퍼즐 조각이 전체 퍼즐과 전혀 다른 그림임을 알렸다. 그러니까 뉴턴이 공들인 '고전역학'에 찬물을 끼얹은 업적으로 아인슈타인은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만든 발명품은 모두가 안다. '원자폭탄'이다. 정확히는 아인슈타인이 만들지 않았다.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 중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있었다. 그는 원자폭탄을 만들었을 당시 인도의 고대 서사시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하며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도다."는 말을 남겼다. 이 와중에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때,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국민투표를 했었나?"


 아시다시피 "맨해튼 프로젝트"는 극비 프로그램이었다. 국민들은 알 리가 없었다. 그런데 대량 살상이 가능한 신무기를 쓰는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국민투표' 혹은 '고지'도 안 했다는 게 맞는 걸까? 이런 옛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1세기의 과학기술의 수준은 감이 안 올 정도로 발전했다. 이제 '문화지체' 현상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하다. 그런데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투표도 안 했던 세상이 과연 미래 과학기술의 정점인 '알고리즘'에 대한 투표를 할까? 나는 긍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우린 어디선가 "사적인 것은 정치적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는 멘트를 들었을 것이다. 맞다. 이 세상에 정치의 거미줄 안에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그 거미줄 속에 '과학기술'도 들어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과학은 절대 객관적인 과정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과학은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학 법칙이 객관적이지 않고 틀릴 수 있다는 말과는 다르다. 과학은 단지 '과학자 공동체'들이 만드는 결과물이다. 또한 정치와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돈이 되는 기술에는 연구자들이 몰려들고, 연구 결과가 더욱 풍부해진다. 이는 돈을 잘 버는 성형외과, 피부과로 의대생들이 진학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또 다른 '문화'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비전문가와 전문가는 교류해야 한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의 좋거나 나쁜 결과는 '모든 인간' 몫이기 때문이다. 과학자 공동체의 폐쇄성도 문제지만 과학을 외면하는 비전문가 우리의 문제를 짚고 싶다. '객관성'을 '전지전능'이라 믿으면서, 과학기술이라는 현대 종교를 믿는 게 아닐까? 마침 성형외과의 비유를 들었으니, 이어 가고자 한다. 1980년대부터 유전공학은 급격히 발전했다. 지금의 유전공학 기술은 '크리스퍼(CRISPR)'라는 유전자 가위로 인간의 DNA를 편집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크리스퍼는 가장 섬세한 세포인 수정란도 편집할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자궁에 착상하기 전에 수정란을 꺼내 현미경으로 유전자를 편집해서 강화된 인간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유전자 편집으로 강화된 인간은 성형수술을 받은 인간이라 볼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 태어난 건 아니지만, 태어난 이후에 손을 대진 않았으니 성형이라 말하긴 힘들다.


 크리스퍼(유전자 가위)의 도입은 아마 선천적인 유전질환에 대한 대처방법으로 등장할 것이다(상상력을 동원하자면). 인간의 중증 질병의 70% 정도는 유전 질환이다. 유전 질환의 치료만을 신경쓰면 모르겠지만, 크리스퍼를 이용하면 키를 크게, 몸을 아름답게, 건강하게, 똑똑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는 인류가 그 유혹을 참기는 힘들다고 본다(자주 유튜브 속 매력적인 아이돌 영상을 보며 감탄하는 나부터 그렇다). 크리스퍼를 구매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서 인간들 사이의 유전적 차별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상상까지 나아간다. 나의 상상은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나 영화 <가타카(GATTACA)>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20세기 "게르만 민족이 세상에서 제일 우수한 민족이다."는 우생학이 22세기에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크리스퍼로 만든 강화 인간과 그렇지 못한 평범한 인간 사이의 불평등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현재다. 그러나 그것을 막고 있는 것은 법적, 정치적 논의다. 과학기술에도 통제가 필요하다. 과학은 진실을 추구할 때 빛나는 학문이지, 독단이 된 과학은 추악할 뿐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폭주를 막기 위해 법적, 정치적 논의를 해야 한다. 과학에 대한 법적, 정치적 논의를 위해서는 과학을 조금이나마 알아야 한다.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한다면, 우리의 주인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다면, 우리는 사회 문제에 대해 귀기울여야 한다. 놀랍게도 그 사회문제에는 과학이 끼어들고 있다. 과학이 그저 머나먼 이야기라면, 왜 지금 우리가 낙태죄에 대해서 열심히 논의하고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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