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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후드 Dec 05. 2020

독서 취향이 치우쳐지면 어쩌죠?

저자를 "덕질"하는 재미와 균형있는 독서 습관

 "책을 '어떤' 기준으로 고르는 게 좋을까요?"


 2년 전 겨울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사실 이건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질문들을 좋아한다. 고민을 해봤다. 기분 좋은 정적이 지나갔다. 내 대답은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나 소재를 따라서 읽으시면 될 것 같은데요." (누가 들어도 무성의한 답이다...) 그러자 상대방이 "그런데 그러면 너무 취향이 치우치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오, 그럴 리 없습니다. 계속 읽으시면, 균형이 맞춰지실 거예요."


 이렇게 단언한 이유는 내 경험 때문이었다. 처음 독서에 취미붙일 때, 그 시작은 "무슨 책을 읽지?"였다. 진정한 초보자는 '나도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상태'다. 그래서 유명한 걸로 시작했다. 그렇게 좋았던 책, 별로인 책들을 골라내다가 우연히 동아시아의 철학에 빠지게 된다. "이게 뭐지? 훈장님 훈화 말씀인 줄 알았는데, 쿨내 나는 이 멘트들은?" 의외의 반전 매력을 알게 된 나는 관련 서적들로 넘어가면서 익숙해진 저자 이름을 기록했다. 그 다음은 저자를 따라서 갔다. 어느 새 나는 덕후가 됐었다. 저자가 자주 쓰는 단어들, 내용을 끌어내는 전개, 비유하는 방식 등에 빠지게 됐다. 그렇게 나는 '문체(Style, 스타일)'를 처음 느끼게 되었다.


 몇 명의 아이돌들을 떠나보낸(휴덕한) 지금도 나는 누군가의 덕후 모드다. 나는 지금 우치다 타츠루(다쓰루)라는 일본의 사상가, 불문학자를 '덕질'하고 있다. 글을 풀어내는 솜씨가 좋아 가독성이 좋다. 그냥 재밌다. 아주 똑똑하고 유쾌한 일본 아저씨의 느낌. 우치다 타츠루의 글 덕분에 레비나스라는 기괴한 철학자도 알게 됐다. 나중에 우치다 타츠루가 아닌 사람이 쓴 레비나스 관련 서적을 읽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레비나스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이 대립될 수 있다. 그 사이에서 독자(나)는 고민한다. "어느 쪽이 더 그럴 듯할까?" 고민하며 나의 생각이 재구성될 때, 균형은 그렇게 맞춰진다. 


  독서의 덕후가 되는 건 의외로 안전하다. 스포해서 미안하지만, 덕후의 끝은 광기가 아니라 의심이다. "울언니가 그럴 리가 없어요!!!" 속 숨겨진 의심이 덕후의 끝이자 새로운 독서의 시작이다. 그러니까 괜찮다, 그렇게 쭉 가도. 버지니아 울프의 덕후든, 알베르 카뮈의 덕후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덕후든 상관없다. 덕후는 언젠가 아이돌의 뒷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덕후는 이내 다른 모습을 얘기해 줄 책을 찾게 된다. 그래서 독서를 '지속적으로' 한다면, 아카이브는 하나의 작가에서 다른 작가들로 확장될 것이다(오히려 애매한 독서가 더 위험할 때가 많았다.).


 애초에 초보자는 '균형있는 독서 습관'을 기를 수 없는 상태다(그래서 초보자가 아니겠는가).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바로 균형감을 찾고자 하는 목표는 너무 무리한 요구다. '균형있는 독서 습관'은 책들의 지도를 조감할 때나 생각할 수 있다(사실 이렇게 쓰는 나도 완벽하게 조감할 수 없다. 문학은 여전히 나에게 미개척지다.). 초보자는 초보자의 길이 있다. 그렇지만 초보자의 길은 독서 습관을 길들인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 할 수 없는 것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시작은 독서에 '재미를 붙이는' 것이다. 그 계기는 덕질이다.


 그러니 덕후의 마음이 불타오를 때, 많이 덕질하시길 바란다. 덕질은 취미붙이기 상대적으로 어려운 독서에 꽤 괜찮은 동력이다. 덕질 대상이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중요하지 않다. 읽기에 재밌을 것! 독서는 취미지, 연구가 아니다. 그런다고 독서에 공들이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아이돌 가수에 덕질하는 시간, 노력 그리고 비용을 생각하면, 취미는 분명히 공을 들여야 하는 활동이다. 독서를 어렵게 만드는 건 독서가 아니라 오히려 취미에 대한 오해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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