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량 하이킹의 역사
경량 하이킹, 장거리 트레일 종주라는 아웃도어 장르에서 레이 자딘은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이다. 레이 자딘, 그처럼 몸담았던 분야가 너무 많아서 도대체 직업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서 언제나 최고였으며, 항상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0대와 30대에는 요세미티 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클라이머였으며, 그 후로도 시 카약커(Sea Kayaker), 행글라이더 전문가, 항공기 조종사, 스카이 다이버, 그리고 최초의 PCT 가이드북을 집필한 장거리 하이커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보이스카웃 활동과 암벽 등반을 하던 레이 자딘은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후 마틴 매리에타(Martin Marietta)에서 근무했다. 마틴 매리에타는 동네 대장간 같은 회사가 아니다. 1995년 록히드와 합병하여 지금의 그 유명한 록히드마틴이 된 그런 회사다.
레이 자딘에 대해서는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므로 이 짧은 글은 그의 클라이머 후반기 시절과 장거리 하이커로서의 삶, 그러니까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만 살펴보려고 한다. 이 시기는 또한 그에게 가장 논쟁적인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늘날 장거리 트레일에서 또 다른 수많은 ‘레이 자딘’을 만날 수 있다. 수행승의 등짐과 같이 생긴 프레임이 없는 배낭, 전통적인 등산화를 대신한 러닝 운동화, 타프를 변형한 폴대가 없는 쉘터. 장거리 트레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량 하이커들의 이런 기본 장비들은 대부분 레이 자딘이 주창한 장거리 경량 하이킹의 방법론에서 비롯되었다. 그 원형은 게이트 우드 할머니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렇다 할 하이킹 장비가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엠마 게이트우드에서 시작된 장거리 하이킹의 역사는 레이 자딘에 의해서 체계적이며 일관된 방법론이 제시되었고, 오늘날 가장 모험적인 백패킹 장르가 되었다.
엠마 게이트우드(Grandma Gatewood)
게이트우드 할머니라는 애칭을 가진 엠마 게이트우드는 장거리 트레일의 전설입니다. 경량 백패킹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인 1955년 67세의 나이로 3500km의 아팔라치안 트레일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종주하였습니다. 당시 그녀는 스니커즈 운동화 차림으로 군용 담요와 레인코트, 플라스틱(비닐) 샤워 커튼을 자신이 만든 허름한 보따리에 넣고 어깨에 맨 채 종주하였습니다. 그 후 아팔라치안 트레일을 3번 종주하게 되는데, 최초의 여성 종주자, 최초의 3회 종주자, 최고령 종주자(1963년 75세)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장기 트레일에서 9kg 이하로 짐을 제한하였습니다.
레이 자딘은 1970년대 요세미티에서 가장 잘 나가던 클라이머 중 한 명이었다. 1977년에 5.13a 등급에 해당하는 피닉스 루트를 해치워 당시 요세미티 계곡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최초의 5.13급의 클라이머가 되었다. 1979년에는 요세미티 엘캡 서벽을 최초로 자유 등반하였다. 이때 그가 고안한 Spring-loaded camming devices(SLCD, 흔히 프렌드, 혹은 캠이라고 부른다)을 사용하였는데 SLCD는 이후 자유 등반 역사에 큰 획은 긋게 되었다. 레이 자딘은 이본 취나드가 60년 말 바위의 고정 말뚝(피톤)을 사용하지 않는 클린 클라이밍을 주창하는 것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너트보다 회수가 빠르고 보다 안전한 확보가 가능한 장비 개발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전설적인 클라이머이자 요세미티 자유 등반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로열 로빈스는 레이 자딘이 발명한 이 장비로 인해 등반이 너무 쉬워졌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때 이미 그는 '왕따'가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81년 레이 자딘은 거센 논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엘캡의 노즈(Nose)를 최초로 자유 등반하려고 했지만 홀드가 전혀 없는 킹 스윙 펜듈럼 구간에 끌과 망치로 홀드를 만들어 거센 비판에 직면하게 되고 결국 노즈 자유등반을 포기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클라이밍 커뮤니티에서 거센 논쟁에 휘말렸고 그는 이로 인해 크게 상처 받았습니다.
상처 받은 레이 자딘은 요세미티 계곡을 떠나 장거리 트레일로 자신의 열정을 확장한다. 그는 채 정비되기도 전인 1987년에 PCT 종주에 나섰고 4개월 반 만에 종주하였다. 레이 자딘은 최초의 PCT 종주자는 아니지만 소위 ‘Ray-Way’’라는 장거리 경량 하이킹 방법론을 주창하여 오늘날 장거리 경량 하이킹의 교본이 되었다.
PCT(Pacific Crest Trail)
멕시코와 캐나다 국경까지 2,653마일에 이르는 미국의 대표적인 장거리 트레일. 기존의 워싱턴, 오레곤, 캘리포니아에 있던 트레일을 연결하여 1993년 공식적으로 완성되었다. PCT가 완성되기 전인 1952년 Martin Papendick은 워싱턴, 오레곤, 캘리포니아 3개 주의 트레일을 모두 걸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공식적인 PCT 최초 종주자는 18세의 학생이었던 Eric Ryback이다. 1970년 10 16일 종주를 마친 그는 PCTA(Pacific Crest Trail Association)에 의해 첫 번째 종주 하이커로 인정받았다. Ryback의 첫 번째 종주는 미국 산림청의 PCT 운영 계획에 많은 참조가 되었다. 그러나 일부 도로 구간을 자동차로 이동했다는 논쟁이 있기도 하다.
1991년 최초로 프린트 버전의 ‘PCT Hiker’s Handbook’을 펴냈으며, 1996년에는 오늘날에도 고전의 하나로 꼽히는 ‘Pacific Crest Trail Hikers Handbook’을 출판하여 장거리 경량 하이킹의 구루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장거리 하이킹을 위한 체계적인 이론이나 정보가 없던 시절 그의 급진적인 방법론은 전통적인 등산 방법론에 익숙한 주류 비평가들에게서 강한 비판을 받았고 클라이밍 커뮤니티에서처럼 거센 논쟁에 휩싸였다. 그러나 비주류였던 레이 자딘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의 방법론에 따라 장거리 트레일을 종주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논쟁은 시들해졌고 오늘날에는 장거리 종주 하이킹의 가장 영향력 있는 방법론으로 정착되었다.
그는 텐트 대신 폴대 없이 타프를 변형환 쉘터를 사용하였고, 무거운 프레임 배낭 대신 스님의 바랑같이 생긴 경량 배낭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무거운 침낭 대신 가벼운 블랑켓-퀼트 침낭으로 대체하였다.
또한 수개월에 이르는 장거리 트레일 종주에서 구간별 우체국을 이용하여 자력 보급하면서 종주하는 방법 등을 제안하였다. 이는 장거리 트레일 종주 하이커들에게 일반적인 방법이 되었다. 레이 자딘은 경량 하이킹을 위해 직접 장비를 만들거나 변형하여 사용하였는데 이를 총체적으로 Ray-Way라고 부른다. 그의 이런 제안은 많은 하이커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으며, 오늘날 경량 하이커들에게 인기 있는 독립 브랜드들을 탄생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사실 아웃도어 비즈니스의 주류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제안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자사 제품의 마케팅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Ray-Way는 ‘짐을 줄이고 더 빨리, 더 멀리 가자’는 것인데 당시의 주류 비평가들에게는 지나치게 급진적이며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어쨌거나 그는 자신의 방법론에 충실했으며, 첫 번째 PCT 종주에서 25파운드였던 그의 배낭은 세 번째 PCT 종주에서 9 파운드 미만이었다.
Ultralight backpacking의 정의
울트라 라이트 백패킹은 최소한의 간단한 장비를 가지고 주어진 여행을 안전하게 즐기는 백패킹 스타일이다. 1박 이상의 백패킹에서 필수적인 기본 장비의 무게(Base weight)를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5파운드(2.3kg) 이하 - Super ultralight backpacking(SUL)
10파운드(4.5kg) 이하 - Ultralight backpacking(UL)
20파운드(9.1kg) 이하 - Light backpacking(BPL)
레이 자딘은 세 번째 PCT 종주를 3개월 만에 끝내기도 했지만 속도는 중요하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심지어 그는 소위 ‘파워 하이킹’을 혐오했으며, ‘RPM 올리기’ (get the RPMs up)는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야생에서 수개월간 연속적으로 지내는 것, 트레일에서 즐기는 삶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SUKA’는 1982년 레이 자딘과 그의 아내가 3년간 세계를 일주했던 41피트짜리 범선의 이름이다. ‘Seeking UnKnown Adventures’의 약자인 SUKA,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끝없는 탐험’이야말로 단 하나 그를 정의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걷잡을 수 없는 문제적 인물 레이 자딘은 2006년에 그의 아내 Jenny와 함께 남극 스키 탐험을 떠난다. 그들은 모든 장비와 식량을 넣은 썰매에 끌고 57일 동안 스키로 750마일을 이동하여 2007 년 1 월 8 일에 남극에 도달하였다.
평생을 격렬한 논쟁의 한 복판에 서 있었던 노년의 레이 자딘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이 내 아이디어에 왜 그토록 화를 내는지 하는 것이다.”
앙시앙 레짐의 대체는 언제나 격렬한 논쟁과 반동을 불러일으킨다. 대체 프레임의 철학과 체계가 견고하지 못하면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며 소모적인 논쟁에 그칠 뿐이다. 레이 자딘, 그는 상처 받았지만 경량 하이킹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것은 분명하다. 오늘도 또 다른 수많은 레이 자딘이 장거리 트레일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Ray Jardine 공식 웹사이트: http://www.rayjardine.com/
BEYOND BACKPACKING, BY RAY JARDINE (BOOK REVIEW): https://backpackinglight.com/00060-2/
Ultralight: The Ray Jardine Way: https://www.backpacker.com/skills/ultralight-the-ray-jardine-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