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동계 산행을 위한 팁
어느새 아침저녁 추위를 느끼는 겨울 문턱이다. 열혈 등산 마니아들은 겨울이라고 등산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겨울은 문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좀 더 큰 각오와 많은 준비가 필요한 계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겨울 산은 상상 밖으로 혹독하다. 안타깝게도 이미 지난 11월초 두 명의 등산객이 설악산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고들이 대부분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듯이 산행 사고도 대부분 사소한 방심에서 비롯된다. 특히 겨울철 산에서의 사고는 곧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안전한 겨울 산행을 위해 몇가지 겨울철 산행 사고 사례와 간단한 겨울 안전 산행 팁을 알아보자.
소백산은 그 높이(1,439m)에 비해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고, 적설량이 많아 겨울철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다. 2005년 겨울 소백산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는 겨울산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산행을 함께 했던 일행들은 산행 경험도 많았으며, 산행 당시 배낭에는 침낭과 보온병, 스토브 등의 장비가 있었음에도 일행 중 한명이 탈진 상태에 빠져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다. 당시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바람이었다.
겨울산에서는 항상 바람을 잘 대비해야 하고, 지치기 전에 열량을 섭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바람이 불지 않은 곳에서 산행 속도를 조절하면서 행동식을 섭취하여 체력을 보충한 후 바람이 강한 능선을 빨리 통과하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필요하다.
두번째 사례는 가족 6명이 포천 국망봉(1,168m) 산행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한 경우이다. 이 사고는 겨울 산행에서 사전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케 하는 사례로서 겨울 산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일행들이 등산을 시작한 것은 오전 11시경이었고, 정상에 다다른 시각은 오후 5시가 일몰이 얼마 남지 않은 오후 5시경이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당황한 나머지 협곡으로 빠지는 길을 정상적인 등산로로 착각한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겨울에는 눈이 내리거나, 쌓였던 눈이 바람에 날려 등산로를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들도 일반 등산로가 아닌 급경사 협곡으로 길을 잘못 들어섰고, 결국 일행 중 일부가 탈진하기에 이르러 자력으로 하산하기 어려워지자 119에 구조를 요청하였다. 이미 해가 저물어 구조는 늦어졌고, 밤새 이루어진 구조 작업 끝에 새벽녘에야 조난자들을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가족 중 4명이 숨지고 말았다.
겨울 산행지로 가장 인기있는 곳을 꼽으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선자령을 들 것이다. 비교적 완만한 경사도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고, 적설량도 많아서 눈꽃 산행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만만한 겨울 산행은 없는 법이다. 2013년 선자령 정상 부근에서 노부부가 갑작스런 강풍과 한파로 숨진 사고를 그 사례로 들 수 있다.
사고 당시 선자령 지역 기온은 영하 3~4도로 비교적 따뜻한 겨울 날씨였으나 정상 부근은 초속 20m의 강풍과 눈보라가 몰아쳐 구조요청을 받은 구조대원조차 사고 현장 접근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특히 선자령과 같은 탁 트인 능선길에서는 강풍을 만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날 사고는 겨울 산행에서 기온보다 더 중요한 정보가 풍속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다음과 같은 풍속에 따른 체감온도 계산법을 알아두면 안전 산행에 도움이 된다. 대체로 풍속이 1m/s씩 빨라질수록 체감온도는 1도~1.5도 정도 낮아진다. 온도계는 영하 10도로 측정되지만 풍속이 10m/s라면 영하 20도 이하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고도나 100m씩 올라갈 수록 기온은 약 0.6도씩 내려간다. 만약 평지에서 영하 10도인 날 해발 1,000m에서는 영하 16도, 여기에 풍속 5m/s 정도의 바람만 불어도 영하 20도 이하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풍속 5m/s는 선풍기의 중간 풍속 수준이며, 겨울산 능선에서는 이보다 강한 바람을 맞는 것은 흔한 일이다.
마지막 사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구사일생한 경우다. 2004년 1월 눈이 내린 가운데 경기도의 한 산을 찾았던 일가족 3명이 눈이 쌓인 산길에서 길을 잃고 조난를 당했다. 조난자는 오후 6시 17분께 구조를 요청하였다 어둠 속에서 구조가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휴대폰 통화가 가능한 지역이어서 조난자들의 위치 파악이 신속하게 이루어져 구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당시 휴대폰으로 구조요청을 한 후 휴대폰은 곧 방전되어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고 하니 천운이 따른 셈이다.
겨울 산행에서 단 하나의 필수장비를 꼽으라면 휴대폰이라고 할 수 있다. 휴대폰은 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통신수단일 뿐 아니라 통신이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해도 GPS 신호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으며, 급한 경우 랜턴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겨울철 휴대폰은 위기사항을 대비하여 항상 따뜻한 곳에 보관하여 방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방풍 보온자켓의 안주머니라던가 핫팩을 가지고 있다면 같이 주머니에 넣어서 보관하면 도움이 된다. 통신이 안되는 지역에서는 배터리 소모가 더 빠르게 소진되므로 GPS 신호 수신을 제외한 네트워크 기능을 꺼서 배터리를 아끼는 게 좋다. 방전되었다고 해도 전원을 껐다가 따뜻한 곳에서 기기의 온도를 높인 후 전원을 켜면 다시 작동하는 경우도 있다.
영하 20도의 추위는 도시 문명 속에서 따뜻한 난방기구 도움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추위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추위로 인해 상황 대처 능력과 합리적인 판단 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고 결국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따뜻한 식수와 보온병을 준비한다.
식수는 뜨거운 물을 수통에 담아 간다. 완벽한 방법은 아니지만 뜨거운 물은 산행 중에 쉽게 얼지 않기 때문이다. 보다 좋은 방법은 보온병에 따뜻한 물이나, 코코아, 꿀물 등 열량이 높은 음료를 준비하는 것이다.
수통은 거꾸로 수납한다.
수통의 물은 위에서부터 얼기 때문에 물을 채운 수통을 거꾸로 수납하는 게 좋다. 수통의 입구가 먼저 얼어버리면 수통을 깨지 않는 한 물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다.
흡연을 자제한다.
산에서는 금연이 원칙이지만 흡연은 체온을 떨어뜨리므로 특히 겨울철 산행에서 금하는 게 좋다.
행동식은 쉽게 꺼낼 수 있는 곳에 둔다.
일부 사고 사례를 보면 배낭에 먹을 게 있었는데도 미처 꺼내 먹지 못한 채 탈진하는 경우가 많다. 겨울철 산행을 열량 소비가 많으므로 탈진하기 전에 열량을 보충하는 게 중요하다. 행동식은 배낭을 벗지 않고도 쉽게 꺼내 먹을 수 있는 자켓 주머니, 배낭 허리벨트 주머니, 또는 크로스 백 등에 보관한다.
겨울산에서는 북서풍을 대비한다.
겨울철 찬바람은 시베리아로부터 불어오는 북서풍의 영향 탓인데 운행 중에도 북서풍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바람이 심하기로 유명한 선자령도 정상부에서 강릉 쪽의 동쪽 사면으로 불과 2-3m만 내려가도 능선이 바람을 막아주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만약 저체온증 환자가 발생하는 등 위급한 상황에서 이같이 북서풍을 막아주는 지리지형을 잘 활용하여 최대한 체온을 유지하며 구조를 기다린다.
기사 원문: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71189